DAYDREAM NATION

시간을 달리는 소녀 (時をかける少女 / 타니구치 마사아키 감독, 2010)

영화관/짧은 영화글


츠츠이 야츠타카의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첫사랑과 성장이라는 테마를 타임리프라는 SF적인 설정으로 풀어내며 애잔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2010년 새롭게 제작된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원작의 주인공 카즈코의 딸 아카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과는 상관없는 또 하나의 속편이다. 애니메이션이 원작의 설정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원작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였다면, 2010년 극장판은 과거의 향수에 초점을 맞춘 원작의 후일담에 가깝다. 원작에서 안타깝게 이별해 궁금증을 낳게 했던 카즈코와 카즈오의 뒷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점이 2010년 극장판의 재미 중 하나다. 다만 원작과 애니메이션이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 로맨스로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면, 2010년 극장판의 로맨스는 우연에 가까운 사랑을 그리고 있어 큰 감흥이 전해지지 않는다. 1970년대의 디테일한 재현에 쏟은 노력만큼 새로운 주인공인 아카리와 료타의 감정 표현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GOOD: 나카 리이사, 묘하게 마코토를 닮았네?

BAD: 1983년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너무 평범한 연출.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 츠츠이 야츠타카의 SF 단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그동안 5편의 드라마와 2편의 영화, 1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83년 영화, 원작의 주인공 카즈코의 조카 마코토의 이야기를 그린 2006년 애니메이션에 이어 2010년 새로 제작된 영화는 카즈코의 딸 아카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했다. 타키타 요지로, 시노하라 테츠오, 하시구치 료스케 감독의 작품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타니구치 마사아키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애니메이션에서 마코토 목소리를 연기한 나카 리이사가 주연을 맡았다. 1983년 영화에서 주연배우 하라다 토모요가 불러 일본에서 히트했던 주제가는 이번 영화에서 3인조 팝 밴드 이키모노가카리가 새롭게 편곡해 불렀다. 극중 주요 배경인 벚꽃나무 길은 후쿠시마 현에 있는 카이세이산 공원에서 촬영됐다.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후일담',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음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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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미치도록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언니네 이발관의 4년만의 새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에 붙어 있는 조그만 스티커에 쓰여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음반은 한 마디로, 더 이상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이의 뒤늦은 노래들, 혹은 ‘후일담’들이다. 그래서 이 음반은 자꾸만 <후일담>을 떠올리게 만든다.

설마 이런 음악이 담겨 있을 줄은 꿈에도 미처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음반 <순간을 믿어요>부터 나는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버렸었다. 그 음반은 언니네 이발관답지 않게 너무 ‘밝은’ 음반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 동안 언니네 이발관과 동고동락해온 이상문의 죽음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라고 노래 부를 때 나는 그런 긍정적인 태도가 왠지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느꼈다. 내가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했던 것은 그들의 음악에서 어떤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처럼 나도 슬프고 힘들어’라고 말하듯이. 하지만 <순간을 믿어요>를 듣고 난 뒤, 나는 이들이 더 이상 <후일담>처럼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할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멜로디 좋은 노래들은 만들겠지만 말이다.

취소한다. 그때 지레짐작했던 모든 것들을. <가장 보통의 존재>는 정확히 <후일담>의 정서를 재현한다. 첫 곡 ‘가장 보통의 존재’부터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요동치게 한다. 다음 곡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는 요동치는 마음에 긴장감을 불러 넣더니, 결국 세 번째 곡 ‘아름다운 것’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꼭꼭 숨겨놓은 감정들을 건드리고야 만다. “사랑했었나요 살아있나요 잊어버릴까 얼마 만에 / 넌 말이 없는 나에게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후일담>이 첫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라면, <가장 보통의 존재>는 숱한 사랑을 겪으며 상처에도 익숙해진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이야기다. <후일담>의 ‘실락원’ ‘청승고백’처럼 긴 여운의 노래보다는, 짧지만 강한 여운을 가진 노래들이 <가장 보통의 존재>에 더 많은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가 음악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일담>이 내 인생의 음반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엔 그 무렵에 겪었던 여러 일들 때문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인생은 금물’이 가장 좋았다(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것’이 더 좋다. 물론 이 목록은 계속 바뀔 것이다).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준다 했나요”라는 가사가 왠지 ‘인생의 별’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음반에서도 가장 밝은 편에 속하는 노래인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음반을 듣고 있다. 나오기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한 것도 오랜만이고, 씨디가 도착하자마자 정성스레 북클릿을 읽으며 가사를 음미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고 말이다. 음반 재킷도 참 좋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나는 새 한 마리.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런 존재. 그리고 사운드도 정말 맘에 든다. <순간을 믿어요>의 사운드는 언니네 이발관에 어울리지 않게 좀 ‘포장’이 많이 된 듯했는데, 이번엔 최소한의 악기만을 사용해 담백한 사운드를 선보이다. 특히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베이스 소리가 좋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당분간 <후일담>과 함께 내 인생의 음반에 자리할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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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85540&section=section4


꿈에서 만난 언니네 이발관

음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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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공연장에 서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나 빼고는 대부분 끼리끼리 온 관객들이었다. 그리고 여성들의 비율이 너무 많았다. 혼자라서 너무 뻘쭘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는 순간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들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언니네 이발관입니다.” 수수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이석원이 인사를 했다. “첫 곡은 저희 새 앨범에 있는 노래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흘러나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어느 새 나는 혼자 공연에 왔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공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첫 곡이 끝날 무렵,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언니네 이발관은 델리 스파이스와 미선이(루시드 폴)와 함께 감수성 한참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했던 인디 뮤지션 중 하나다.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델리 스파이스와 루시드 폴에 대한 애정은 예전에 비해 많이 식어버렸음에도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다. 언니네 이발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데뷔 음반이었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이었지만, 빠져들게 된 것은 그 다음 음반인 <후일담>부터였다. 자켓과 부클릿의 데이트리퍼의 그림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어쩐지 외로움이 묻어나는 음반이었다. 소통과 관계의 문제에 대한 이석원의 가사들도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매력이 있어 좋았다. 언니네 이발관의 <후일담>은, 만약 누군가 내게 무인도에 가야 한다면 가져갈 음반이 뭔지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대답할, 추억 이상의 소중함을 간직한 음반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새 음반이 ‘드디어’ 나온단다. 지난 해 말부터 나온다고 했는데 이제 나오는 걸 보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년 쌈싸페 공연에서 새 음반의 티저 영상을 통해 새 노래를 잠깐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팬시’한 느낌이 들어 걱정스러웠다. 델리 스파이스와 루시드 폴에 대한 애정이 식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음악들이 예전에 비해 너무 세련되게 변했기 때문이다. 언니네 이발관도 <꿈의 팝송>부터는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럼에도 그들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히 그들의 음악 속에는 <후일담>의 정서가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올 다섯 번째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가 어떤 음악들을 담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궁금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꿈에서까지 언니네 이발관이 나오는 걸 보면 어지간히 이번 음반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발매된 서태지의 음반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레코드 가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고 한다. 내게는 지금 언니네 이발관의 음반을 기다리는 기분이 딱 그렇다. 그러고 보니 <후일담>을 만나게 된 지 어느 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새로운 음악을 들고 다시 찾아온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덧] 이미 눈치 챌 사람은 눈치 챘겠지만 ‘인생의별’이란 닉네임은 바로 <후일담>의 수록곡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그대 나의 친구라고 말하네 / 인생의 별이 우리에게 있다며 / 이제 우리 친구라고 말하네 / 외로운 동안 둘이 함께 있어요” (언니네 이발관의 ‘인생의 별’ 중에서)



언니네 이발관 - 어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