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NATION

[2010 JVRF] 이곳이 바로 ‘지산낙원!’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 2010

음악실

사람들은 그곳을 ‘지산낙원’이라고 부른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 따위는 그곳에서 잠시 잊어도 좋기 때문이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드넓은 자연, 그 속에서 3일 동안 40여 밴드들이 펼치는 한여름의 음악 축제. 모든 사람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 바로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이다.

지난해 처음 열린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은 해외 록페스티벌이 부럽지 않은 라인업, 그리고 쾌적한 공연 환경으로 국내 음악 팬들의 열렬한 환영과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오아시스, 위저, 스타세일러, 폴 아웃 보이 등 해외 뮤지션과 크라잉 넛,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김창완 밴드 등 국내 뮤지션이 한데 모인 라인업은 지금껏 국내에서 열린 록페스티벌 중 가장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여기에 잔디밭과 숲으로 가득한 지산리조트라는 공연 장소는 휴식과 여유를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지난해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 2010은 매시브 어택, 펫 샵 보이즈, 뮤즈, 벨 앤 세바스찬, 코린 베일리 래 등 해외 뮤지션들을 대거 초청해 지난해에 버금가는 음악 축제를 마련했다.

지난 3월 첫 번째 라인업 공개와 동시에 진행된 3일권 조기예매가 순식간에 매진으로 이어지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던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 2010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7만여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성황리에 치러졌다. 특히 올해는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러 찾아온 록 음악 팬들 뿐만 아니라 축제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일반 관객까지 가세해 지산리조트는 유례없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족, 친구, 연인들과 함께 일상에서 벗어나 축제를 즐기기 위해 지산에 모여든 관객들이야말로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무대 앞 펜스를 잡고 음악에 취하고,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춤을 추고, 무대 뒤편에 돗자리를 깔고 음악과 함께 한여름의 여유를 즐기며 7만여 명의 관객들은 3일 동안의 축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물론 록페스티벌의 진정한 재미는 역시 공연이었다. 올해에도 영미 지역과 일본, 그리고 국내 뮤지션으로 이뤄진 40여개 밴드를 초대해 지난해의 명성을 이어가는데 손색이 없는 라인업을 선보였다. 올해 라인업의 특징이라면 영국 출신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인 트립합 밴드 매시브 어택을 비롯해 80년대 신스 팝으로 시작해 일렉트로닉 음악에 한 획을 그은 펫 샵 보이즈, 영국 글래스고우 출신의 인디밴드로 국내에서도 마니아적인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벨 앤 세바스찬, 그리고 지금 가장 잘 나가는 밴드인 뮤즈가 바로 그들이었다. 처음 라인업이 공개됐을 때 지나치게 영국 취향의 밴드들이 집중돼 지난해보다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정작 두 눈으로 직접 본 이들의 공연은 기대 이상의 놀라움이었다. 몽환적이면서 묵중한 일렉트로닉의 세계를 선사한 매시브 어택, 더없이 화려한 비주얼과 안무로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했던 펫 샵 보이즈, 그리고 세 번째 내한임에도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마지막 날을 장식한 뮤즈는 헤드라이너다운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또한 벨 앤 세바스찬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음악을 하는 밴드답게 관객들과 함께 하는 공연으로 오랫동안 이들을 보고 싶어 했던 팬들의 기다림에 보답했다.

올 해페스티벌의 또 다른 특징은 록이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메인 공연이 펼쳐지는 빅 탑 스테이지가 록 본연에 충실한 뮤지션들을 한데 모았다면, 서브 무대인 그린 스테이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매일 펼쳐졌다. 특히 둘째 날에는 아폴로18, 피아, 크래쉬, 그리고 미국에서 온 뮤트매스 등이 무대에 올라 록페스티벌다운 헤비함을 원하는 관객들을 위한 시간을 선사했고, 셋째 날에는 네온스, 타루, 재주소년 등 흥겨우면서도 부드러운 음악을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하는 센스를 보여줬다. 특히 셋째 날 그린 스테이지에 오른 일본 밴드 토는 신들린 연주와 함께 즉흥 연주가 빚어내는 놀라운 순간을 선사했고, 영국 출신의 소울 뮤지션 코린 베일리 래는 지산의 마지막 날 밤을 장식하기에 딱 어울리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국 뉴욕 출신의 밴드 뱀파이어 위크엔드는 꽉 찬 사운드에서 뿜어 나오는 놀라운 에너지로 관객들을 열정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또한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장기하와 얼굴들은 록페스티벌에 걸맞은 무대 매너와 퍼포먼스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언니네 이발관은 모든 관객들의 ‘떼창’을 유도하며 국내를 대표하는 록밴드로서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한편, 마지막 날에는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공연장을 기습 방문해 깜짝 콘서트를 여는 의외의 무대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축제가 마냥 즐거울 수는 없는 법. 올해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에서도 관객들의 편의를 생각하지 못한 배려의 부족함이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공연장에 음식물과 주류 반입이 금지된 것은 관객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공연장 내에 마련된 여러 부스에서 다양한 음식물과 주류가 판매되고 있지만 실제 가격보다 턱없이 비싼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공연장 입장과 관련해서도 관객과 안전요원 사이에 실랑이가 오가는 등 록페스티벌의 고질적인 문제가 어김없이 눈에 띄었다. 빅탑 스테이지와 그린 스테이지 사이의 이동 시간이 지난해보다 더 길어진 것도 관객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지난해보다 더 많아진 관객을 수용하기에 지산리조트라는 공간이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무대 앞까지 돗자리를 깔고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쾌적한 공연을 보기 힘든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보다 더 관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공연에서는 숙소와 교통편을 확보하기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1년 뒤에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또 다시 지산을 찾을 것이다. 무더위에 온몸이 땀에 젖더라도, 음악에 온몸을 내던지고 일상을 잊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불편함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3일 간의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그동안 쌓인 피로가 동시에 몰려오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3일 동안 누렸던 행복했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그 꿈같은 시간을 잊을 수 없다. 한번 빠져든 이상 그 달콤한 순간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은 ‘지산낙원’이라고.

서울전자음악단

벨 앤 세바스찬

벨 앤 세바스찬

언니네 이발관

문샤이너스

코린 베일리 래

무한도전


*사진_장병호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2010 JVRF] DAY-2: 장기하와 얼굴들 + 언니네 이발관

음악실

장기하와 얼굴들

언니네 이발관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CinDi 2009 기자회견에 참석한 두 감독

영화관/영화 소식

오늘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시네마디지털서울 2009(이하 CinDi 2009) 기자회견에 참석한 두 명의 감독들. 왼쪽부터 정성일 감독, 이석원 감독. 사진은 이석원 감독의 첫 번째 연출작 <시네마디지털서울 2009 공식 트레일러>의 월드 프리미어 뒤 이어진 GV에서 촬영.

뭐 알만한 사람은 다 알 듯 싶다. 왼쪽은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님이고, 오른쪽은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오늘 이 기자회견에서만큼은 두 사람은 올해 입봉하게 된 감독이었다. 그 말은 곧 정성일 선생님의 첫 번째 연출작이 완성됐다는 뜻. 과연 극장에서도 상영될 날이 올련지!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일하면서 처음으로 갔던 영화제 기자회견이 바로 CinDi였다. 작년에도 씨네큐브 2관에서 오붓한 분위기로 열렸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일이라니. 그 세월의 변화에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였다.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아무튼.

올해 CinDi 2009는 지난해와 비슷한 분위기다. 왕빙 감독의 <원유> 같은 무시무시한 러닝타임의 영화는 없지만, 상영작들은 여전히 대부분이 생소한 영화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CinDi는 아시아 지역의 신인 감독들의 디지털영화를 소개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개막작은 로우 예 감독의 <스프링 피버>. 이번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에는 지아장커와 장률을 압구정에서 만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는데, 올해는 그 자리를 로우 예가 대신하게 될 것 같다.

영화제는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압구정 CGV에서 열린다. 언제 가도 참 낯설은 압구정이지만, 영화제 기간 만큼은 꾸준히 출석해주려고 한다. 지난해에는 생각보다 많은 영화를 못 봤는데 올해는 욕심을 좀 내봐야겠다. 안 그래도 부천도, 제천도 영화제를 못 가게 됐으니 CinDi에라도 매진할 생각. 아참, 올해 트레일러가 참 좋다. 이석원이 연출하고 차승우가 주연인데 개인적으로는 1회의 소설가 김영하가 연출한 트레일러나 2회의 이상은이 연출한 트레일러보다 더 세련된 느낌이다. 이석원은 노래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영화에도 재능이 있나보다. 샘이 나지 않을 수 없다.

ps. 이석원이 만든 트레일러가 CinDi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여기를 클릭!

[GMF 2008] 3일간의 피크닉,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08

음악실

간만에 음악으로 기분전환하고 왔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08에 갔다 왔다. 작년엔 부산국제영화제랑 스케줄이 겹치기도 했고, 라인업도 끌리지 않았다. 근데 올해는 욜 라 텡고와 미선이 때문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스탭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를 닦달해서(?) 조금 싼 가격으로 공연을 봤다. (잠시 이 자리를 빌려 후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좁디 좁은 인간관계를 지닌 내게 이런 후배가 있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ㅠ)

익히 얘기는 들었지만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은 여느 록페스티벌과 다르게 휴식과 여유가 넘쳐나는, 말 그대로 피크닉과도 같은 페스티벌이었다. 무대 앞에서 열심히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누워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과격한 슬램도 ‘거의’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여자가 남자보다 많았다. 무언가 생경한 광경이었다. 솔직히 조금 심심한 감도 없지 않았다. 놀아야 할 음악이 나오는데도 가만히 서서 공연을 지켜보는 느낌도 들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나 자신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공연 보며 노는 것도 힘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사진은 많이 못 찍었다. 사실 사진을 별로 찍고 싶지 않았다. 공연을 보러 온 것이고, 음악을 들으러 온 이상 음악과 공연에 집중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때는 공연 보면서 열심히 사진도 찍곤 했는데, 막상 사진 찍는 동안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음악은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고 즐기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사진과 영상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올리니까 나는 공연에 대한 감상후기로 대신하련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공연에서 얻은 감정적인 경험들일 테니까.

아무래도 올해 최고의 공연은 욜 라 텡고였다. 개인적으로 욜 라 텡고의 공연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해 봄에 뉴욕에서 그들의 공연을 봤었다. 그때는 그들의 음악을 잘 몰랐던 때였고, 당연히 공연에서도 모르는 노래들만 듣고 나왔다. 다만 한 가지, 아이러 캐플런의 기타 연주에 완전 반했었다. 연주라기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까운, 현란하게 기타를 다루는 그의 솜씨(?)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10여분이 넘는 실험적인 곡을 연주하다가도 어느 샌가 3분짜리 말랑말랑한 팝송을 부르고 있는, 그것이 욜 라 텡고의 매력이었다. 그때의 충격을 서울에서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연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들은 최고의 공연을 보여줬다. 대부분 최근앨범인 <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 수록곡을 들려줬지만, 국내 팬들을 배려했는지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의 대표곡들도 연주해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다만 몇 차례 음향 사고가 이어진 것은 조금 아쉬웠다. 공연을 마치고 들어가기 전 욜 라 텡고는 곧 다시 보자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이 빈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욜 라 텡고만큼이나 미선이의 공연 역시 이번 그랜드민트페스티벌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나 싶다. 솔직히 이건 정말 대단한 공연이다. 90년대 후반 홍대 인디씬에서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마이 앤트 메리와 함께 모던 록 바람을 일으켰던,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선이가 원래 멤버 그대로 무대 위에 오른 것이니까 말이다. 미선이의 CD를 기스가 날 정도로 듣고 또 들었던 내게, 그들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00년이었나? 그 무렵 클럽 마스터플랜에서 공연을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8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들의 하나뿐인 앨범 <Drifting>의 수록곡 대부분을 연주했던 이날 공연은 예전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치질’을 따라 부를 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미선이의 노래를 모르는 것 같았고, 관객들도 미선이보다는 루시드 폴을 더 많이 보러 온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이날만큼은 루시드 폴도 미선이의 조윤석일 뿐이었다). ‘송시’보다는 ‘Sam’에 더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을 보니 ― ‘Sam’은 루시드 폴이 라이브에서도 자주 연주하는 노래다 ― 루시드 폴보다 미선이를 더 아꼈던 나로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그리고 오랜만의 공연이라 그런지 몇 번 연주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긴 했다. 뭐, 그 정도야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거니까. 무엇보다도 이날 미선이의 공연은 다시는 못 볼 공연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거야말로 역사적인 공연인 것이다.

투 톤 슈도 죽여줬다. ‘이것이 바로 그루브다!’를 몸소 실천하는 밴드다. 음악 실력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이건 뭐,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그루브한 한국 밴드가 있었으니 바로 세렝게티다. 그룹 이름처럼 정말이지 아프리카에서 뛰쳐나온 듯한 세 사람이 이국적인 정서로 관객들을 몰아넣었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과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밴드, 그러니까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음악과 함께 공연장은 어느 새 세렝게티 초원이 되어버리고, 모두들 온갖 근심과 걱정을 날려버리는 듯 몸을 흔든다.

세렝게티의 공연이 펼쳐진 러빙 포레스트 가든. 무대 뒤에 펼쳐진 연못과 분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와는 정반대인 정적인 방법(?)으로 관객과 하나 되는 밴드가 있었으니 바로 루싸이트 토끼다. 이번 공연 최고의 멘트는 이들의 것이었다. “혹시 커플들 많이 오셨나요? 많이 안 오셨다니 다행이네요. 저희도 커플들 보며 공연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렇다. 이토록 수줍은 감성의 노래들은 커플들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쓸쓸한 이들을 위한 노래다. 음반을 통해 그녀들의 소녀적인 감수성은 충분히 맛보았지만, 역시 음악은 공연을 통해 느껴야 하는 법. 공연에서도 그런 감성이 묻어있어 좋았다. 아, 남자가 이런 감성에 수긍하다니 좀 이상한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

마지막 날 사람들이 기대한 뮤지션은 아마도 언니네 이발관과 토이였겠지만, 나는 전자양을 택했다. 그와 함께 골방에 갇힌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자양의 공연이 이토록 방방 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수줍은 소년이었다. 공연도 무대 가운데가 아닌 구석에서 노래를 부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숲> 음반을 들으면서 멜로디가 빈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막상 공연을 통해 들으니 오히려 멜로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었다. 노래 사이사이마다 밖에서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가 들려오자, 언니네 이발관 공연 보고 싶은데 공연을 해야 한다며 투덜대는(?) 전자양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깜찍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영상도 멋있었고 말이다.

리허설 중인 전자양. 무대 왼쪽에서 통기타 들고 세팅 중.


페퍼톤스도 좋았다. 하지만 은 별로였다. 그냥 취향의 문제 같다. 뎁의 음악이 페퍼톤스처럼 팝적인 건 아니니까 말이다. 요조는 듣던대로 인기가 대단했다. ‘인디계의 원더걸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남성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다만 상큼한 요조의 노래를 남자들이 따라 부르는 게 조금 어색했다고나 할까. 하긴, 좋아하는데 그런 걸 따질 게 뭐 있겠냐만은 말이다. 마이 앤트 메리는 마지막 노래만 겨우 봤는데, 정순용이 선글래스 끼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보니 이들도 변하긴 변했구나 싶었다(나쁜 의미는 아니다). 언니네 이발관은 이날 공연을 자신들의 새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 수록곡으로 채웠다. 중간중간 이석원이 노래 설명도 하는, 마치 DVD 코멘터리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의 공연이었다. 다행히도 이날은 이석원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모든 노래를 성의껏 불렀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정말 물이 올랐다. 언니네 이발관을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나지만 단 한 번도 이석원이 노래를 잘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 고운 미성을 듣고 있으면 정말 놀랍다. 그게 음반과도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게 더욱 놀랍다. 로로스의 공연도 좋았다. 음악에 모든 걸 내던진 듯한 멤버들의 연주가 만들어내는 꽉 찬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이토록 서정적이면서 격정적인 음악, 요즘 부쩍 좋아지는 것 같다.

올림픽공원이 좀 더 가까웠더라면 더 많은 공연을 보고 더 많이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쉽다. 하지만 덕분에 3일 동안 소풍 기분으로 상쾌한 기분이 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크고 작은 탈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두 번째 행사에 이 정도면 앞으로를 계속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후배와 계속 친하게 지낼 것이다.)

ps. 아, 맞다. 자우림이랑 델리 스파이스도 봤다. 어땠냐고? ps에 언급한 걸로 마무리하겠다. 자우림은 원래 안 좋아했지만, 델리 스파이스는 세월이 갈수록 애정도가 떨어져 아쉽긴 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듣는 ‘사수자리’는 정말 좋더라. 언제 1집 노래만 쭉 하는 공연 한 번 해주면 좋겠다. (단, ‘챠우챠우’는 원래 편곡 그대로 해서!)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후일담',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음악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앨범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미치도록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언니네 이발관의 4년만의 새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에 붙어 있는 조그만 스티커에 쓰여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음반은 한 마디로, 더 이상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이의 뒤늦은 노래들, 혹은 ‘후일담’들이다. 그래서 이 음반은 자꾸만 <후일담>을 떠올리게 만든다.

설마 이런 음악이 담겨 있을 줄은 꿈에도 미처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음반 <순간을 믿어요>부터 나는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버렸었다. 그 음반은 언니네 이발관답지 않게 너무 ‘밝은’ 음반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 동안 언니네 이발관과 동고동락해온 이상문의 죽음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라고 노래 부를 때 나는 그런 긍정적인 태도가 왠지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느꼈다. 내가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했던 것은 그들의 음악에서 어떤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처럼 나도 슬프고 힘들어’라고 말하듯이. 하지만 <순간을 믿어요>를 듣고 난 뒤, 나는 이들이 더 이상 <후일담>처럼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할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멜로디 좋은 노래들은 만들겠지만 말이다.

취소한다. 그때 지레짐작했던 모든 것들을. <가장 보통의 존재>는 정확히 <후일담>의 정서를 재현한다. 첫 곡 ‘가장 보통의 존재’부터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요동치게 한다. 다음 곡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는 요동치는 마음에 긴장감을 불러 넣더니, 결국 세 번째 곡 ‘아름다운 것’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꼭꼭 숨겨놓은 감정들을 건드리고야 만다. “사랑했었나요 살아있나요 잊어버릴까 얼마 만에 / 넌 말이 없는 나에게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후일담>이 첫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라면, <가장 보통의 존재>는 숱한 사랑을 겪으며 상처에도 익숙해진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이야기다. <후일담>의 ‘실락원’ ‘청승고백’처럼 긴 여운의 노래보다는, 짧지만 강한 여운을 가진 노래들이 <가장 보통의 존재>에 더 많은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가 음악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일담>이 내 인생의 음반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엔 그 무렵에 겪었던 여러 일들 때문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인생은 금물’이 가장 좋았다(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것’이 더 좋다. 물론 이 목록은 계속 바뀔 것이다).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준다 했나요”라는 가사가 왠지 ‘인생의 별’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음반에서도 가장 밝은 편에 속하는 노래인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음반을 듣고 있다. 나오기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한 것도 오랜만이고, 씨디가 도착하자마자 정성스레 북클릿을 읽으며 가사를 음미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고 말이다. 음반 재킷도 참 좋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나는 새 한 마리.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런 존재. 그리고 사운드도 정말 맘에 든다. <순간을 믿어요>의 사운드는 언니네 이발관에 어울리지 않게 좀 ‘포장’이 많이 된 듯했는데, 이번엔 최소한의 악기만을 사용해 담백한 사운드를 선보이다. 특히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베이스 소리가 좋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당분간 <후일담>과 함께 내 인생의 음반에 자리할 음반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85540&section=section4


꿈에서 만난 언니네 이발관

음악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공연장에 서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나 빼고는 대부분 끼리끼리 온 관객들이었다. 그리고 여성들의 비율이 너무 많았다. 혼자라서 너무 뻘쭘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는 순간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들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언니네 이발관입니다.” 수수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이석원이 인사를 했다. “첫 곡은 저희 새 앨범에 있는 노래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흘러나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어느 새 나는 혼자 공연에 왔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공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첫 곡이 끝날 무렵,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언니네 이발관은 델리 스파이스와 미선이(루시드 폴)와 함께 감수성 한참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했던 인디 뮤지션 중 하나다.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델리 스파이스와 루시드 폴에 대한 애정은 예전에 비해 많이 식어버렸음에도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다. 언니네 이발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데뷔 음반이었던 <비둘기는 하늘의 쥐>이었지만, 빠져들게 된 것은 그 다음 음반인 <후일담>부터였다. 자켓과 부클릿의 데이트리퍼의 그림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어쩐지 외로움이 묻어나는 음반이었다. 소통과 관계의 문제에 대한 이석원의 가사들도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매력이 있어 좋았다. 언니네 이발관의 <후일담>은, 만약 누군가 내게 무인도에 가야 한다면 가져갈 음반이 뭔지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대답할, 추억 이상의 소중함을 간직한 음반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새 음반이 ‘드디어’ 나온단다. 지난 해 말부터 나온다고 했는데 이제 나오는 걸 보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년 쌈싸페 공연에서 새 음반의 티저 영상을 통해 새 노래를 잠깐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팬시’한 느낌이 들어 걱정스러웠다. 델리 스파이스와 루시드 폴에 대한 애정이 식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음악들이 예전에 비해 너무 세련되게 변했기 때문이다. 언니네 이발관도 <꿈의 팝송>부터는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럼에도 그들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히 그들의 음악 속에는 <후일담>의 정서가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올 다섯 번째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가 어떤 음악들을 담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궁금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꿈에서까지 언니네 이발관이 나오는 걸 보면 어지간히 이번 음반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발매된 서태지의 음반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레코드 가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고 한다. 내게는 지금 언니네 이발관의 음반을 기다리는 기분이 딱 그렇다. 그러고 보니 <후일담>을 만나게 된 지 어느 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새로운 음악을 들고 다시 찾아온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덧] 이미 눈치 챌 사람은 눈치 챘겠지만 ‘인생의별’이란 닉네임은 바로 <후일담>의 수록곡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그대 나의 친구라고 말하네 / 인생의 별이 우리에게 있다며 / 이제 우리 친구라고 말하네 / 외로운 동안 둘이 함께 있어요” (언니네 이발관의 ‘인생의 별’ 중에서)



언니네 이발관 - 어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