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NATION

'영화관/영화제'에 해당되는 글 42건

  1. [PIFF 2010] 드디어 아오이 유우를 만나다! - <번개나무> 무대인사 (2010.10.8) (6)
  2. [JIFF 2010]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영화를 온전히 즐길 것, 2010년의 전주영화제 감상기 (2)
  3. [JIFF 2010] 뒤늦게 올리는 사진 몇 장 (1)
  4. [JIFF 2010] 신작을 빨리 만들라는 자극으로 받아들이겠다! - 김동원 감독 회고전 씨네토크 (2010.5.1)
  5. [JIFF 2010] 지금 전주는... (6)
  6. [PIFF 2009] 아쉬움 남는, 그러나 절반의 성공을 이룬 PIFF 2009 관람기 (6)
  7. [PIFF 2009]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 (4)
  8. [PIFF 2009]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 관객과의 대화 (10)
  9. [PIFF 2009]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2)
  10. [PIFF 2009] 개막작 <굿모닝 프레지던트> 기자회견
  11. [JIFF 2009] 9일 동안의 영화 축제, 전주국제영화제 풍경들 (4)
  12. [JIFF 2009] 낯설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2)
  13. [JIFF 2009] <필사 in JIFF> 같은 영화, 두 가지 시선: 브릴란테 멘도자 <마사지사> (2)
  14. [JIFF 2009] <필사 in JIFF>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방문>에 관한 이인이색
  15. [JIFF 2009] <필사 in JIFF> 필사 ‘장병호’가 본 <버려진 땅>
  16. [PIFF 2008] 이번에도 뒤늦게 정리하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5)
  17. [PIFF 2008] 그밖의 사진들
  18. [PIFF 2008] 아주담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10월4일 토요일) (1)
  19. [PIFF 2008] <스탈린의 선물> 무대인사 (10월3일 금요일)
  20. [PIFF 2008] 올해 최고의 게스트 우에노 주리 (1)
  21. [PIFF 2008] 나 홀로 해운대에서
  22. [PIFF 2008] 스탈린의 선물: 그때 카자흐스탄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23. [PIFF 2008]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풍경
  24. [CHIFFS 2008] 뜻밖의 즐거움,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25. [CinDi 2008] 두 편의 단편영화와 함께 만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4)

[PIFF 2010] 드디어 아오이 유우를 만나다! - <번개나무> 무대인사 (2010.10.8)

영화관/영화제



오전 8시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오전 9시 김해공항 착륙, 해운대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전 10시. 미리 도착한 회사 선배와 밥 먹고 피프 빌리지를 어슬렁거리며 에너지워터를 겟. 오후 12시 <아저씨> 무대인사를 봤다. 일본 아줌마들로 바글바글. 그리고 오후 12시 30분. 취재를 위해서, 라지만 사실은 팬심으로 기다린 <번개나무> 무대인사 시작. <바이브레이터>의 히로키 류이치 감독, 그리고 주연배우 아오이 유우, 오카다 마사키가 무대에 올랐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오이 유우. 그녀는, 그냥 예뻤다. 환하게 웃는 저 미소가 그 증거.

그러나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산영화제에 대한 아오이 유우의 애정이 담긴 바로 이 한 마디였다. "부산영화제는 배우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해준, 내게는 정말 뜻깊은 영화제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오이 유우는 <하나와 앨리스>와 <훌라 걸스>라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두 편의 작품으로 부산을 찾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도 이번 부산 방문은 남다른 의미일 것이다. 배우 생활 10년을 맞이한 그녀는 이제 겨우 25살. 눈부실 정도로 해맑은 그녀의 미소가 더욱 기분 좋게 느껴지는 건,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미래가 그 속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ps. 오카다 마사키는 영화 속에서 보던 것처럼 훤칠한 키에 멋진 배우였다. 일본에서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츠마부키 사토시를 넘어섰다"고 하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듯.


[JIFF 2010]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영화를 온전히 즐길 것, 2010년의 전주영화제 감상기

영화관/영화제

영화제를 본격적으로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군대를 갓 제대한 2004년부터였다. 그해 여름, 지하철로 대략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부천까지 4일을 왔다 갔다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해, 2005년에는 처음으로 전주를 찾았고, 부산에서는 주말 이틀 동안 홀로 8편의 영화를 보는 기염을 토해내며(?) 영화제에 점점 매료돼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영화제는 보고 싶은 영화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무섭게 매진되는 인기작의 표를 구하기 위해 1교시 수업도 제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예매에 성공했을 때의 그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화제에서 어렵게 예매해 본 영화들이 하나 둘씩 개봉하는 상황을 목격하게 됐다. 그 무렵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몇몇 지인들은 굳이 개봉할 영화를 영화제에서 볼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고 있었고, 나도 자연스레 영화제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에 관객평론가로 참석한 것은 영화제를 즐기는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이었다. 처음으로 손에 쥐게 된 아이디카드는 무한한 영화의 바다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길어 올릴 수 있는 만능의 낚싯대였다. 그해 벨라 타르의 영화를 보며 숨겨진 거장의 놀라운 걸작이 지닌 영화의 힘에 한껏 취할 수 있었고, 알렉산더 클루게를 만나 실험영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으며, 상업영화에서는 불가능한 실험과 도전을 하고 있는 10여 편의 한국장편영화를 통해 영화에 대한 시각도 한층 넓힐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영화제는 보고 싶은 영화를 먼저 만나는 창구가 아닌, 여태껏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신세계로 다가왔다.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인기작, 기대작으로 거론되는 영화는 무조건 배제할 것. 개봉할 것이 분명한 영화는 가능하면 보지 말 것. 특별전, 회고전이 이름으로 묶인 영화들을 주로 볼 것. 절대 남들이 안 볼 영화들만 골라서 볼 것. 겉멋이라고 하면 겉멋이겠지만, 새로운 영화와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이전까지의 영화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발견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음을, 강박에 빠져 건성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하루에 4편씩 보는 것도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가능한 영화를 많이 보는 것보다는, 좋은 영화 한편이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솔직히 올해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프로그램의 문제인지, 내가 고른 작품들의 문제인지, 혹은 영화를 보는 내 태도의 문제였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아마도 이 세 가지가 다 결합된 결과였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전주영화제에 대한 애정은 오히려 깊어졌다. 여전히 영화제는 포근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처음 가본 가맥집과 1년에 한 번 먹어도 언제나 맛있는 갖가지 음식들은 전주를 매년 찾을 수밖에 없음을 다시 증명했다. 올해는 영화보다는 영화 외적인 것이 더 기억에 남았다. 내년에는 좀 더 확실하게 전주영화제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올해 <숏숏숏>의 테마는 ‘공포와 판타지’였다. <숏숏숏 2010: 환상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세 편의 단편 <허기>(이규만 감독), <소고기를 좋아하세요?>(한지혜 감독), <1000만>(김태곤 감독)을 모았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억을 먹으며 살아가는 비극적인 인물의 이야기와 함께 귀신을 다룬 연극이 교차되는 <허기>는 조금은 난해한 감이 없었고, 정육점 아들이지만 채식주의자인 10대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소고기를 좋아하세요?>는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종잡을 수 없는 영화였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김태곤 감독의 <1000만>이었다. <독>으로 이미 가능성을 비춰보였던 김태곤 감독은 <1000만>에서 흥행 앞에 고민해야 하는 영화감독의 고뇌를 코믹하면서도 공포스럽게 담아냈다. 통쾌하면서도 슬픈 이야기. 김태우의 동생으로 <약탈자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김태훈의 연기도 만족스러웠다. <낮술>의 노영석 감독이 음악에 참여한 것도 <1000만>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영화는 아마도 올 가을쯤 정식으로 개봉할 듯 싶다.

영화제에서는 가이드북에 나온 작품소개를 잘 읽어야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카프카의 ‘변신’을 새로운 디지털 미학으로 표현한 작품. 1인칭 시점으로 촬영된 거친 영상과 내레이션 자막이, 주인공의 절대적인 절망과 고독감을 옆에서 함께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장편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삼칠 감독의 <변신>을 본 것은 순전히 카프카의 ‘변신’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화는 놀랍게도, 가이드북의 설명처럼, 94분 동안 대부분의 장면을 시점 숏으로 촬영해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심리를 고스란히 체감하게 만든다. 특히 초반 20분에 달하는 롱 테이크는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과 동선, 심리묘사를 선보이며 관객을 놀랍게 만든다. 그러나 이 지독한 실험에 박수를 보낼 수는 있을지언정, 완성된 영화에 대해서는 지지하고 싶지 않았다. 올해 본 가장 독특하고 오래 기억에 남았으면서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영화.

아무런 기대 없이 본 다큐멘터리 <피유피루>는 의외로 가슴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영화였다. 물론 이것은 다큐멘터리의 중심에 선 일본의 행위예술가 피유피루의 드라마틱한 삶 때문이었다. 영화는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마음은 여자와 다를 게 하나 없는 피유피루가 그저 유별난 한 사람에서 진정한 예술가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한편,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상처를 받아도 이를 예술로 승화시켜 나가는 모습을 통해 예술가의 진솔한 삶을 담아나간다.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자신이 ‘남자’라는 이유로 단 한 번의 키스나 섹스도 하지 못한 채 버림 받아야 했던 슬픔과 아픔을 예술적으로 표현해내는 후반부의 퍼포먼스는 성 정체성을 뛰어 넘어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게 만드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피유피루를 여전히 한 가족으로 생각하는 부모님과 피유피루의 형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벌써부터 속편이 기대된다.

<질주>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로 대신한다. 전주영화제 온라인 데일리인 ‘온感 데일리’에 송고했으나 올라가지는 않은 글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남자는 달리기 시작한다. 교도소 안 교정에서도 달리고, 자신의 수감실에 돌아와서도 러닝머신 위에서 남자는 달리고 달린다. 두 번의 탈옥 전과를 지닌 남자는 형을 마치고 출소하지만, 그에게는 흔히 출소한 죄수들이 그렇듯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꿈도,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이루겠다는 목적도 없다. 세상에 나온 뒤에도 남자는 달리고 또 달린다. 때때로 은행 강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달리기만으로도 스릴과 쾌감을 느끼지 못할 때 남자가 행하는, 마치 섹스와도 같은 은밀한 놀이일 뿐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고독한 남자. <질주>는 제목 그대로 질주만이 오직 삶의 전부였던 한 남자의 짧은 한 순간을 세밀하게 담아낸 영화다. 세계 마라톤 대회에 나가 1등을 해 사람들을 놀래게 만들고, 한때 연인이었던(것처럼 보이는) 여인과 잠깐 동안 로맨스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달리기를 멈추지 못한다. 왜 이 남자는 이렇게 달리고 또 달려야만 하는가. 영화는 이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녹아들지 못하는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만으로 그 이유를 넌지시 드러내 보인다. 달리기의 속도감과 고독이 불러오는 적막감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정교하게 계산된 카메라 워킹으로 정적인 분위기와 동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낸다. 크레인과 트래킹, 핸드 헬드 등 다양한 연출 스타일은 쉴 새 없이 달리는 남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새겨 넣는다. 그저 달리는 것만이 삶의 전부이자 목적이었던 남자. 사람들은 남자가 달리기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만 생각할 뿐, 왜 그가 달리는지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갖지 않는다. 마라톤 대회에서 1등도 했으니 안정된 삶을 살라고 충고할 뿐이다. 아무도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는 달리고 또 달리지만, 그럴수록 고독만이 깊어질 뿐이다. 달리기는 남자의 삶을 조심스럽게 옥죄어온다. 이 남자의 달리기는 언제 멈출 것인가. 그렇게 <질주>는 한 인간의 고독을 그려내고 있다.

지난해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앵커리지>는 ‘은둔’이라는 제목 그대로 외딴 오두막에서 홀로 살아가는 한 여인의 고요한 삶이 불안으로 잠식돼 가는 과정을 묵묵히 그려 보이는 영화다. 다큐멘터리라고 믿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주인공 여인의 일상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영화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극적인 갈등을 펼칠 기미가 없다. 오로지 마지막 10여 분의 작지만 넓게 퍼져나가는 감정적인 동요를 위해 나머지 시간을 오롯이 할애하는 영화. 롱 테이크의 미학으로 담아낸 스웨덴 발트 해의 자연 풍경과 함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전해지는 아주 작은 울림만으로 충분히 기억에 남는 영화다.

끝으로 김동원 감독 회고전. <또 하나의 세상: 행당동 사람들 2> <한사람> <철권가족> 등 세 편을 봤는데, 아마도 이번 회고전에서 그나마 밝은 분위기의 작품들이 모인 섹션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세상: 행당동 사람들 2>는 1993년부터 3년 간 철거투쟁을 벌인 끝에 임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행당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 운동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10여 년 전의 풍경이지만, 여전히 재개발의 광풍이 불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던 미국인 서 로베르토 신부의 삶을 기록한 <한사람>은 인간적인 태도로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김동원 감독만의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고, 10만원 영화제를 위해 만든 <철권가족>은 김동원 감독 가족의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잠시나마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도 좋았지만,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김동원 감독과의 씨네토크가 더욱 뜻 깊었던 시간.

(그밖에도 <나는 고양이스토커> <포르투갈 수녀> <고추잠자리>를 봤으나 영화를 본 시간보다 수면을 취한 시간이 더 많았던 관계로 감상은 생략한다.)


[JIFF 2010] 뒤늦게 올리는 사진 몇 장

영화관/영화제

전주 풍남문 근처에 자리한 남부시장에서 먹은 순대국밥.


시와의 거리 공연. 너무 더워서 공연은 제대로 못봤다. 대신 씨디를 사서 사인을 받았다는...ㅋ


옥상달빛 공연 중.



[JIFF 2010] 신작을 빨리 만들라는 자극으로 받아들이겠다! - 김동원 감독 회고전 씨네토크 (2010.5.1)

영화관/영화제

김동원 감독이 벌써 회고전을 한다고? 어떤 이는 반가움을, 어떤 이는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상계동 올림픽> <송환> 등 다큐멘터리는 물론 한국영화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놓인 작품들을 발표하며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를 이끌어 온 김동원 감독의 전작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우선 반갑지만,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동원 감독의 작품을 ‘회고’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건 너무 이른 감이 있기 때문이다. 1일 메가박스 전주 5관에서 있었던, 10여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세 편의 영화 <또 하나의 세상: 행당동 사람들 2> <한 사람> <철권가족>의 상영 뒤 열린 씨네토크에서 김동원 감독은 회고전에 대해 “신작을 빨리 만들라는 자극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웃음으로 답했다. 늦은 시간까지 열기가 식을 줄 몰랐던 현장을 소개한다.

<또 하나의 세상: 행당동 사람들 2>는 감독님 작품들 중 공동체 정신이 가장 달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상계동에서의 공동체 운동은 6월 항쟁처럼 절반은 성공했지만 절반은 실패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보금자리를 얻는 건 성공했지만 공동체를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행당동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방법으로 오순도순 떳떳하게 살아가는 공동체 운동을 실험했고, 거의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상계동에서 보았던 것이 신기루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서 스스로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됐다. 물론 행당동도 극심한 내부분열과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강한 공동체가 영위되고 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가난은 무엇인가?

내가 가난에 대해서 뭘 얘기한다는 게 사실은 온당치 못하다. 지금 천주교 도시빈민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데, 그곳에서는 자발적으로 가난을 받아들인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강요된 가난은 빈곤이기에 고쳐야 하는 것이지만, 자발적 가난은 중산층이라고 해도 불편을 감수하며 가난을 실천하는 것이다.

내레이션을 사용하는데 어떤 원칙이 있나?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은 필요악이라고 한다. 화면만으로 의미를 전달해 관객 스스로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내레이션으로 의미를 규정하는 건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레이션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쓰면 바보지만, 필요한데 안 쓰면 더 바보라는 말도 있다. 내레이션의 유무보다는 작품의 설명적인 태도의 작품인지 아닌지가 내레이션 사용에 더 중요한 것 같다.

공동체 운동에 대한 다른 작품 계획은?

뼈아픈 질문이다. <상계동 올림픽> 2편을 준비하고 있다. 실패한 공동체의 기억을 주민들이 어떻게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 공동체의 의욕이 있는지 물어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작업하면서 생각보다 주민들은 물론 나 스스로도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엷어졌다는 걸 느꼈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고민하게 됐고, 그래서 예상보다 어려운 작품이 돼 진도가 늦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 화두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 수 있는지라는 문제다.


<철권가족>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지금은 없어진 10만원 영화제에서 제안이 왔다. 제작비 10만원으로 작품을 만들어달라기에 아들이 ‘철권’ 게임에 빠진 게 떠올랐다. 가장 단기간에 적은 예산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가장 맘에 드는 작품 중 하나다.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는 인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의 문제는 대상과의 문제다. 내가 저 사람을 찍을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다. 카메라로 어떤 대상을 찍는 게 불편하다면 스스로가 내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지향을, 태도를, 뿌리를 어떻게 갖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자신이 없으면 불편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사명감이 남다를 것 같다.

1980년대에는 멋도 모르고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다. 그게 습관이 됐고, 지금은 다큐멘터리 밖에 할 게 없다. 의지가 강하고, 사명감에 불타고, 헌신적이라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건 아닌 것 같다. 좋아서 했을 뿐이다. 또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주위 사람들과 다큐멘터리의 대상으로 삼게 된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힘이 바로 내 원동력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온感데일리에 올라간 글입니다.


[JIFF 2010] 지금 전주는...

영화관/영화제










대략 이렇습니다.

어제 아침에 도착해서 영화보고 왱이집에서 콩나물국밥 먹고 남일슈퍼에서 가맥 먹고 영화 보다 쳐자고 아무튼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날씨도 어제까지는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는데 오늘은 많이 따뜻하네요. 지금까지 본 영화는 <숏숏숏> <변신> <나는 고양이 스토커> <피유피루> <질주>. 아직까지는 만족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숙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잠깐 짬내서 프레스센터에 와 사진만 살짝 올리고 갑니다. 후기는 다음 기회에!


[PIFF 2009] 아쉬움 남는, 그러나 절반의 성공을 이룬 PIFF 2009 관람기

영화관/영화제

고작 8편을 봤다. 영화제 개막식을 제외하고도 3일이나 있었음에도 8편 밖에 못 봤다면 이건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물론 게으른 탓도 있었다. 아이디카드가 생긴 뒤로는 티켓 예매에 목숨을 걸지도, 시간표를 철저하게 짜지도 않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고 싶은 영화들이 정작 주말 시간에는 상영이 없었다. 그나마 상영되더라도 중간 중간 취재 때문에 시간이 안 맞았다. 결국 그렇게 <하얀 리본> <공기인형> <님프> <얼굴> <우리 의사 선생님> 등을 놓쳤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쉽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사람들을 만났고,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가장 보고 싶었던 두 편의 영화 <카페 느와르>와 <경>을 보았기 때문에 적어도 최초의 목적만큼은 달성한, 절반의 성공을 거둔 부산영화제였다.

카페 느와르 (Café Noir)|정성일 감독, 2009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왜 <카페 느와르>였을까.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보도자료로 상영작 목록을 받았을 때,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차이밍 량도, 펜엑 라타나루앙도, 미카엘 하네케도 아닌 정성일의 영화였다. 그때부터 <카페 느와르>는 부산영화제 관람 목록 1순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 부산에 내려간 것도 일 때문 보다는 <카페 느와르> 때문이 더 컸다. 8편만 봤음에도 아쉬움이 덜한 것은 <카페 느와르>를 기어코 보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성일은 이 영화를 ‘교양으로 보는 영화’라고 칭한다. 그래서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제목 대신 ‘세계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라는 자막을 타이틀로 내세운다. <카페 느와르>는 모든 신들이 그 신을 구성하는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표면적으로는 홍상수와 박찬욱, 봉준호가 언급되고, <디워> 논란과 진중권의 이야기가 삽입되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가 인용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다른 영화들, 가령 허우 샤오시엔처럼 정성일이 존경을 마다하지 않았던 감독들의 스타일이 남 몰래 감춰져 있다. 또한 <카페 느와르>는 지독한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이면서, 동시에 바로 지금의 서울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광화문과 청계천, 남산, 남대문, 동대문, 서울역, 한강 등 익숙한 서울의 풍경들을 통해 정성일은 영화와 현실의 접점을 찾고자 한다. 영화가 관객과 감독이 스크린을 통해 나누는 대화라고 한다면 <카페 느와르>는 바로 그런 상호교류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영화다. 대단한 영화가 아닌 놀라운 영화. 자만심보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영화. 그렇게 정성일은 영화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에 동참할 것인지는 순전히 관객들의 선택일 것이다. '2시간 77분'의 러닝타임을 견뎌낼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경 (Viewfinder)|김정 감독, 2009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경> 또한 올해 주목해야 할 한국영화들 중 하나다. 다른 게 아니라 영화를 연출한 김정 감독은 바로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한예종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두 평론가가 만든 <카페 느와르>와 <경>은 그 동안 글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차이를 영화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카페 느와르>에 비해 한결 가벼운 95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경>은 남해 고속도로 남강 휴게소를 배경으로 그곳을 스쳐지나가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출한 여동생을 찾아 나선 누나, 직장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애니메이터, 돈을 모아 아무도 없는 오지로 떠날 계획을 가진 아르바이트생, 아르바이트생을 인터뷰하는 기자,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뒤 고속도로를 전전하고 있는 여동생까지 각기 다른 삶의 목적을 가진 인물들을 이야기는 그물처럼 얽히고설키며 조금씩 확장된다. 그 속에 김정 감독은 한국 사회가 지닌 다양한 알레고리들을 촘촘히 새겨 넣는다. 네트워크로 치환될 수 있는 고속도로와 그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인물들, 여성성에 대한 담론과 불법체류자 문제, 상상력을 억압당하는 남성들의 이야기까지, <경>은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빼곡하게 들어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영화다. 그러면서도 <경>은 <카페 느와르>처럼 스스로를 과시하기 보다는 겸손하면서도 유유자적한 태도를 드러내 보인다. 무엇보다도 <경>에서는 김정 감독만의 스타일이 느껴진다. <카페 느와르>를 보는 동안 분명 기대만큼의 전율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부산에서 본 최고의 작품을 고른다면 <경>을 선택할 것이다.

지알로 (Giallo)|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2008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 걸작선


조쉬 하트넷이 일반 관객들을 열광케 한 게스트였다면,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은 영화 애호가들을 열광케 한 게스트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의 팬이 아니었다. 그의 팬들이 걸작 <수정 깃털의 새>와 <딥 레드>를 선택했을 때, 내가 그의 최신작인 <지알로>를 선택한 것은 그의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알려진 대로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에서 스토리의 허점을 따지는 것은 고다르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행위다. <지알로> 역시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허술하기 그지없는 영화다.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난 듯한 허술한 플롯이지만, 그럼에도 <지알로>가 관객들을 긴장케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변함없는 다리오 아르젠토만의 폭력과 기괴함으로 점철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스토리 대신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할지에 좀 더 초점을 둔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엄마의 살해 장면을 비롯해 교차 편집되는 여성들의 살해 장면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게다가 허술한 스토리와 묘한 충돌을 일으키는 주연을 맡은 애드리언 브로디의 깊이 있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결국 <지알로>는 강박에 사로잡힌 남성들의 이야기로 끝맺는다. 뒤돌아 걷는 애드리언 브로디의 쓸쓸한 얼굴이야말로 <지알로>의 진정한 공포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Good Morning President)|장진 감독, 2009
개막작

개막작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생각보다 밋밋한 영화다. 퇴임을 앞둔 나이 많은 대통령과 패기 넘치는 최연소 대통령,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까지 세 명의 대통령을 다룬다는 설정의 신선함, 그리고 장진 감독에 대한 기대와 함께 지금껏 실망스러웠던 한국 정치영화와의 차별점에 대한 궁금증이 영화 보기 전에 한껏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세 명의 대통령이라는 설정은 헐거운 옴니버스 형식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도 빛을 발하지 못하며, 정치영화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감이 없지 않다. 그나마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유일한 미덕이 있다면 영화가 그리는 이상적인 대통령을 바라보며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엔딩에서 드러나는 현실에 대한 영화의 애매한 태도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메시지는 영화가 애초에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의심케 한다. 영화 속 대통령들이 아무리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현실의 대통령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청두, 사랑해 (Chengdu, I Love You)|프루트 챈, 최건 감독, 2009
갈라 프레젠테이션

<사랑해, 파리>를 시작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여러 프로젝트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청두, 사랑해> 역시 그 맥을 같이 하는 영화로 보인다. 그러나 <청두, 사랑해>의 청두는 다른 도시들과는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청두, 사랑해>는 지난해 쓰촨성 대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청두를 위해 바치는 위로와도 같은 영화다. 애초에는 허진호 감독이 참여해 프루트 챈, 최건과 함께 각각 현재, 과거, 미래에 해당하는 단편들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 장편 <호우시절>로 변경되면서 자연스럽게 <청두, 사랑해>는 과거와 미래에 해당하는 두 작품이 채워졌다. 영화의 시작을 여는 것은 최건 감독의 작품으로, 2029년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쓰촨성 지진이 남긴 상처를 이야기한다. 록 뮤지션 출신답게 감각적인 음악이 인상적인 영화다. 프루트 챈 감독은 1976년을 배경으로 어느 찻집에 나타난 어딘가 이상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비교적 주제가 확실한 최건의 작품과 달리 프루트 챈 감독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친숙하지 못한 느낌인데, 아무래도 70년대 중국의 사회, 문화적 분위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호우시절>이 이들 작품 사이에 포함됐다면 <청두, 사랑해>는 더 이질적인 느낌을 지녔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허진호의 선택은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음을 <청두, 사랑해>가 증명하고 있다.

주류판매점 캑터스 (Liquor Store Cactus)|유진 김 감독, 2009
월드 시네마

언젠가부터 영화제에 갈 때마다 미국에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영화들을 보게 된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반쪽의 삶>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익스플로딩 걸>에 이어 같은 이유로 부산에서 선택한 영화는 바로 <주류판매점 캑터스>다. 한국계 미국인 유진 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 <주류판매점 캑터스>는 캘리포니아에서 살아 온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든 영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친구들과 대마초를 피우며 제 멋대로 살고 있는 콜이 우연히 한국계 미국인 동급생 사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비교적 진부한 설정임에도 군데군데 묻어나는 신인감독다운 신선함이 더해져 의외의 귀여움을 선사한다. 또한 과감 없이 그려지는 재미교포들의 현실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에 빠진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남녀 주인공의 풋풋한 사랑은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한국어 대사가 마냥 웃기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미드와 할리우드영화가 이야기하지 않는 미국 청소년들의 또 다른 진실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류판매점 캑터스>는 나름의 존재감을 남긴다.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 (Criminal of Barrio Concepcion)|라브 디아즈 감독, 1998
필리핀 독립영화의 계보학

전주에 이어 부산에서도 그를 만날 줄이야.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는 올해 전주에 <멜랑콜리아>를 들고 찾아온 필리핀 출신 라브 디아즈 감독이 1998년에 발표한 데뷔작이다. 최근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인 132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는 의외로 장르적인 설정에 충실한 영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납치사건의 범인이라는 한 남자와 여기자의 대화를 중심으로 액자형 구성을 취해 스릴러로서의 성격을 지닌 영화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참혹하게 끝나고 만 납치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비교적 장르적인 스토리텔링에 여느 영화와 다름없는 호흡을 지니고 있음에도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가 <멜랑콜리아>만큼이나 견디기 힘들다면 그건 순전히 조악한 화질과 음향, 그리고 투박함이 묻어나는 연출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단지 라브 디아즈 감독의 이름만을 보고 선택한 영화로서는 그리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영화 주변에 희미하게 새겨놓은 필리핀 정치,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에서 라브 디아즈의 주제의식이 묻어난다. 놀라운 감독의 아직은 풋풋함이 느껴지는 데뷔작이다.


-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 스틸컷이 없어서 라브 디아즈 감독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 올해 영화제에서 새롭게 느낀 게 있다면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 영화제를 갈 때는 무조건 기대작으로 관람목록을 채웠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들이 한 편, 두 편 정식으로 개봉을 하는 것을 보고는 가능한 개봉 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은 제외하고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고르게 됐다. 그런 영화들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기를 바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몇 해 째 영화제를 다니면서 자꾸만 기대작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영화들만 보다 보니 정작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함을 올해 깨달았다. 새로운 발견도 쉽지는 않았다. 다시 결론내린 것은, 어떻게든 보고 싶은 영화는 무조건 보는 게 최고라는 사실이었다. 내년에는 기대작과 새로운 발견에서 균형 잡힌 관람목록을 세우기로 굳게 다짐했다. 빨리 15회 영화제가 왔으면 좋겠구나!

- 그리고 상영작 편수 좀 이제 줄여줬으면 좋겠다. 영화가 너무 많으니까 보고 싶은 영화 고르기도 지친다. 자연스레 시간표 짜기도 힘들다. 줄이는 게 뭐하다면 지금 이 수준만 유지해줬으면 좋겠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정말 이럴 때 써야 하는 말이다.

- 영화제가 워낙 유명해져서인지 관람 문화가 점점 나빠지는 느낌이다. 최악은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였다. 그냥 아무런 정보 없이 극장에 왔다 무심결에 영화를 본 관객이 꽤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중간에 다 나가버리면서 상영 환경이 엉망이 되버렸다. 게다가 데이트 온 커플들이 그냥 평범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더 산만해졌다. 다른 상영작들도 중간중간 음식을 먹는 관객들도 있고 아무튼 조금 산만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른 영화제들에 비하면 부산이 전반적으로 깔끔한 편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늘어난 규모로 인해 자만심에 빠지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해본다.

- 영화제 내내 술 마시느라 오전 영화는 거의 못 봤다. 내년에는 체력 좀 길러서 가야겠다ㅠ


[PIFF 2009]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

영화관/영화제


일시: 10월 9일 금요일 오후 8시 30분
장소: 센텀시티 신세계 문화홀
진행: 이수원 프로그래머
참석: 트란 안 홍 감독, 배우 조쉬 하트넷,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 트란 누 옌케

(다음은 기자회견 내용 요약입니다.)

각국을 대표하는 세 명의 배우 첫 만남 당시는 어땠는지 첫 인상이 어땠는지?
조쉬 하트넷: 이병헌이 레이디 퍼스트라며 먼저 대답하라고 나를 가리켰다(웃음). 두 배우는 세트장에서 만났다. 기무라 타쿠야를 가장 먼저 만났는데, 내가 필리핀에 도착한 첫 날이었다. 그때 막 그가 웅덩이에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중이었다. 게다가 방금 감독님이 눈에다가 애벌레를 넣은 상태다. 13시간 연속으로 진흙에 뒤덮인 상태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상한 사람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웃음). 그 프로다운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병헌은 처음 만나기 전에 그의 매니저인 찰스가 세트에 왔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더니 운동복을 입고 있더라. 근육이 울퉁불퉁한 몸으로 운동복을 입은 그를 만나 위압감을 느꼈다.
이병헌: 조쉬 하트넷을 그렇게 만난 건 그 당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촬영을 동시에 진행해서 편한 복작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웃음). 처음 만났을 때 조쉬가 나를 굉장히 반갑게 반겨줬다. 알고 봤더니 그때 막 그가 트레일러 안에서 <달콤한 인생>을 보던 중이었다. 영화로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나서 반가웠던 것이었다. 첫 인상은 굉장히 친근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줄 줄 아는 캐주얼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기무라 타쿠야는 <히어로>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처음 만났다. TV로 볼 때는 굉장히 재밌고 웃기는, 남들을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여성에게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자신만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무게감이 있었다. TV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어서 양면적인 매력이 있는 친구라 생각했다.
기무라 타쿠야: <히어로> 찍을 때 이병헌을 처음 만났는데, 영화를 같이 찍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는데도 현장에 이병헌이 나타났을 때는 "아, 이병헌이다!"라는 느낌이었다(웃음). 너무 반가웠다. 일본과 한국은 가까운 나라다. 친구들도 한국 드라마, 영화를 많이 봐 이병헌의 존재감을 알고 있었다. 이병헌은 주변 사람에게는 배려심도 많고 친절하지만 본인에게는 엄한 사람인 것 같다. 강한 신념,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쉬는 필리핀 산 속에서 만났는데 역시 "아, 조쉬 하트넷이다!"라는 인상이었다. 처음 만나서 당구를 쳤는데 나를 '타쿠야'나 '기무라'가 아닌 극 중 캐릭터 이름 '시타오'라고 불러줘서 이 사람은 마음이 넓고 참 좋은 사람이겠다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할리우드 배우와 아시아를 대표하는 톱 스타들을 캐스팅했다. 놀라운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캐스팅했고,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가?
트란 안 홍 감독: 캐스팅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완성되는 거라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영화를 시작할 때는 누구를 캐스팅할지 생각이 되고 그러면서 생각이 정리돼 캐스팅을 완성한다. 배우로부터 우러나오는 휴머니티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배우를 캐스팅한다. 촬영은 굉장히 어려운 촬영이었다. 제작 여건 문제 때문에 힘들었다. 그럼에도 배우들 때문에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영화에 제공해주는 부분들이 기쁘고 놀랍다. 그런 게 여기 배우들을 포함해서 모든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아닌가 싶다. 이 배우들 덕분에 제작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세 배우와 연기한 소감은?
트란 누 옌케: 다른 배우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했다. 세 사람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놀랐을 것이고, 몰랐던 게 이 영화를 위해 더 나았던 것 같다.

- 대화 내용을 최대한 충실하게 담고자 했으나 중간중간 잘못 적은 부분이나 구어체를 문어체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의미가 달라진 부분이 있을 수 있음.

- 아직 영화는 못 봤는데, 본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영화가 어렵다는 의견이 많은 듯. 기대는 안 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고 할까. 곧 개봉 예정이니 그때 기회가 되면 볼 예정.

- 기자회견장이 너무 좁았다. 입장 시 기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우왕좌왕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군중들 속에 끼여서 들어온 일본 아주머니들이 결국 입장을 저지당해 울상을 짓는 표정을 봤다. 대단하다는 말밖에는...-_-;;

- 세 배우 다 참 친절했다. 하지만 같이 참석한 트란 누 옌케에게는 질문이 별로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나름 <씨클로>와 <그린 파파야 향기>에 출연한 배우인데 말이다. 그리고 조쉬 하트넷, 기무라 타쿠야에 대한 질문도 영화에 관한 것보다는 한국에 대한 질문(좋아하는 한국 여배우가 누구냐 같은)이 대부분이라 기자회견 내용 자체는 그냥 그랬다.


[PIFF 2009]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 관객과의 대화

영화관/영화제

일시: 10월 9일 금요일 오전 10시
장소: 해운대 메가박스 6관
진행: 허문영
참석: 정성일 감독, 신하균, 정유미, 문정희, 김혜나, 요조

허문영: 한국영화를 좋아했다면 이 사람에게 영감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50년의 세월을 살고 첫 영화로 이 자리에 섰다.
정성일: 여러분이 제 첫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부산영화제에 올 때마다 허문영 씨가 제 영화의 GV를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작은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진심으로 여러분을 환영한다. 2시간 70분 동안 영화 보느라 수고 많았다. 부족한 제 옆에서 조언을 하면서 함께 연기를 해준 주인공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요조: 첫 영화다.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김혜나: 영수를 사랑하는 미연 역을 맡았다. 아침이라 배도 고프실텐니 영화 중간에 다 가셨을 줄 알고 가벼운 맘으로 들어왔는데 관객석이 꽉 차있어서 놀랐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감독님도 돈 벌어야 되는데 말이다(웃음). 작년부터 올해까지 감독님, 배우들과 너무 행복하게 찍었다. 그래서 영화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고 많이 봤으면 좋겠다. 주위 분들에게 좋은 얘기, 독특하니까 한 번 보라고 꼭 전해줬으면 좋겠다.
문정희: 영수가 사랑하는 미연 역을 맡았다. 우리끼리는 ‘미연 1’이라 불렀다. 영화를 서울에서 처음 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에 쥐는 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의미, 왜 사는지와 같은 자아에 대한 의문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충격적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서 반갑고 의견이 궁금하다.
정유미: 선화 역을 맡았다. 작업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완성된 영화를 무척 보고 싶었다. 또 어떤 때는 미웠던 적도 있다. 다양한 감정 상태를 경험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자리에 서니 너무 떨린다.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신하균: 감독님 첫 영화라 의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한 영화에서 많은 여배우랑 같이 연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웃음). 언제 또 이런 연기를 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행복한 경험이었다.


허문영: 처음에 제목이 나올 줄 알았는데 ‘소년소녀교양세계문학전집’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영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 등을 차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소년소녀’의 의미는 무엇인가?
정성일: 단순하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 영화를 교양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것이다. 어떤 영화는 직관으로 봐야 되고, 어떤 영화는 믿음으로 봐야 되며, 어떤 영화는 아이디어나 감각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한국영화에도 교양으로 보는 영화가 한 편 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작하고 싶다는 뜻이 있었다. 세상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소년, 소녀들을 통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세상이 살기 힘들지 않나. 그렇다면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작은 소망이다.

관객: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영화 속에 계속 나오는 빨간 풍선, 상자의 상징적 의미가 궁금하다. 또 햄버거나 콜라를 끝까지 먹는 신을 넣은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배우들이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어렵고 딱딱한 말을 쓰는 이유가 뭔지도 궁금하다.
정성일: 마이크를 잡으면 DVD 서플을 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웃음). 상자의 의미는 거기에 뭐가 들어있냐는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신하균에게 물어봤는데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하균 씨에게 물어보고 있다(웃음). 풍선은 단순하게는 영화 <빨간 풍선>에 존경을 바치는 의미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풍선은 하여튼 간에 붙잡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어떤 것인지 거꾸로 질문하고 싶었다. 누구나 무언가 붙잡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풍선의 의미에 대해서는 관객들 마음대로 스스로가 붙잡고 싶은 것을 봐도 되고, 백보 양보해서 극 중 캐릭터들이 붙잡고 싶어 한 게 뭐였을까 궁금해 해도 상관없다. 맥주 먹는 신 같은 경우는 정유미에게 끊어 마셔도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연기했다. 또한 마지막에 나오는 소녀들은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두 소녀인데, 햄버거를 먹는 신에서 “힘겹게 먹어줬으면 좋겠다”니까 “알겠습니다”라면서 다 먹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영화가 어떻게 육신과 만나는지 보고 싶었다. 전적으로 이 다섯 배우들에게 의지하고 간 요인이기도 했다. 원 숏도 그랬지만 대사도 어떻게 버티는지 보고 싶었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자기가 체험하고 말로 꺼내드는지 궁금했다. 사실 말하는 것만큼 육신이 힘겹게 버티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걸 영화로 담는 게 내가 하는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주인공 배우들의 몫이었다.


허문영: 영화를 드디어 만든다고 하실 때 배우를 어떻게 꼬셨을지 궁금했다(웃음).
요조: 감독님이 내가 영화에 출연해야 되는 몇 가지 이유를 준비해오셨다. 하지만 내가 나가면 이 영화에 누가 될 것이라고 재차 말씀드렸고,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사실 감독님이 무슨 말씀을 하신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독님이 나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감독님만 믿겠다고 하고 영화를 같이 하게 됐다.
김혜나: 요조 씨 캐스팅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저에게 말씀하셨다. 요조 씨가 무대에서 두 시간 동안 관객들과 얘기하는데 너무 멋지게 버티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싶다고 했다(웃음). 사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긴장해서 기억이 안 나고, 두 번째까지도 긴장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한 끼도 못 먹고 감독님과의 저녁 식사에 갔는데 감독님과 계속 술을 마셨다. 감독님이랑 3시가 넘게 대화를 했다는데 기억이 안난다(웃음). 요조처럼 감독님으로부터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감독님께 연기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오히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문정희: 감독님의 힘이 아닐까 싶다. 모 호텔 커피숍에 있는데 꽃을 받았다. 황당했다. 그리고 감독님으로부터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전부터 책과 잡지로 만난 정성일이라는 사람이 느껴지더라. 예전부터 감독님 팬이었다. 그래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대본을 읽는데 순식간에 문학소설 읽듯 봤다. 감독님이 독후감을 듣고 싶다고 하셨는데 자발적으로 쓰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오는 분량은 많지 않지만 하고 싶다고 했다.
허문영: 정유미 씨는 다섯 배우들 중 제일 먼저 캐스팅됐다. 그러다 중간에 촬영 취소가 되면서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영화에 출연하게 됐는데.
정유미: 죄송하다. 말을 막 하고 싶은데 잘 못하겠다.
신하균: 시나리오를 먼저 받았고 보면서 상당히 힘들었고 어려웠다. 지금 영화를 봐도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있다. 여러 번 봐야지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작품을 할 때 표현에 있어서는 모든 걸 열어두는 편인데,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보면서는 이런 대사를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을지 상당히 고민됐다. 그런데 감독님 시나리오의 말투처럼 말하는 걸 안 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출연을 결심했다.
허문영: 그러니까 영화 속 배우들의 말투는 문어체가 아니라 정성일 감독의 구어체인가(웃음).

관객: 주인공의 심정을 글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내레이션이 나온다.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장면들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성일: 자막과 내레이션은 신하균과 김혜나가 보고 읽은 게 아니라 외워서 촬영 당일마다 녹음한 거다. 연기보다 더 힘들어했다. 신하균도 내레이션에 NG가 많았다. 여러분도 동의할 거라 생각하는데, 말과 마음이 항상 일치하지 않지 않은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조차도 그 말하는 순간의 마음이 말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진심조차도 어떻게 절대적으로 똑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관객들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레이션과 자막 둘 중 어느 것을 쫓아가도 상관없다. 어느 것이 진심인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남산이 계속 나오는 건 내가 서울에서 살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극장전>에도 그런 대사가 나온다. “저건 아무데서나 보이네?”라고.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데서나 보이는 산, 그 산을 보고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고 싶었다. 그리고 장소의 의미에 대해서는, 2009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 청계천의 의미를 어떻게 모를 수 있겠냐고 묻고 싶다.

관객: 영화가 컷을 길게 끊어서 가다. 한 번에 감정선을 유지하는 부분이 많은데, 카페에서 장문의 대사를 어떻게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정유미: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핑계 같고 변명 같을 것 같다. 못하지 않았나? 죄송하다. 자세히 이야기를 못하겠다.
허문영: 그 장면은 몇 번 만에 촬영을 마쳤나?
정유미: 세 번 테이크를 갔는데 세 번째 테이크를 썼다고 알고 있다. 그 장면 찍기 며칠 전에 이미 촬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한 마디도 말이 안 나와서 촬영을 못했다. 감독님과 스탭들에게 미안했지만, 결국 촬영을 접고 며칠 뒤 다시 촬영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아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난 뒤, 이 작품을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은 사실 이 영화가 이렇게 인사하게 된 게 너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기분이라 말이 잘 안 나온다.
정성일: 한 가지만 말하자면 내가 연기자를 만난다고 해서 그 연기자를 내가 선택했기 보다는 다섯 분이 저를 간택해준 것이다. 정유미를 만나기 전에 대사를 먼저 썼는데 처음에는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여러분이 본 버전이고, 그것 말고도 숏을 다 끊어서 찍는, 영수와 선화가 대화를 주고받는 버전이 있었고, 또 완전히 플래시백으로 들어가는 버전이 있었다. 그러나 유미 씨가 캐스팅되자마자 두 번째, 세 번째 버전을 버리고 무조건 첫 번째 버전으로 가기로 했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출연 안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유사 버전이 세, 네 가지씩 있었다. 그래서 연출부들의 불만이 완성된 시나리오는 언제 나오느냐였다. 신하균은 처음에 준 시나리오와 다른 시나리오로 촬영해 당황하기도 했다.

관객: 유난히 롱 테이크를 자주 쓴 것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 건가?
정성일: 그에 대해서는 앞으로 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될 허문영에게 양보하겠다(웃음). (허문영을 보며) 나중에 글로 대답해달라.
허문영: 예를 들어 햄버거 먹는 장면만 보면 그 장면이 충분히 기능을 한다. 햄버거를 끝까지 먹는 장면을 보여줄 때, 단순히 햄버거를 먹는다는 행위를 보여주기만 위해서 그 장면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 행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는 보는 분이 찾아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관객: 홍상수 감독 영화의 장면들이 중간 중간 나온다. 영화를 구상하면서 다른 음악이나 영화에 헌사를 바치려고 하는 장면이 있는 것 같은데.
정성일: 사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다른 영화에는 없는 레퍼런스 목록을 달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보는 분들의 재미를 뺏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그 목록을 자백하는 것은 너무 빠르지 않나 싶다. 훗날 기회가 닿으면 DVD 서플에 꼭 넣도록 하겠다(웃음).

관객: 김혜나는 영화 장면 중에 벽을 손으로 긁는 장면이 있는데 아프지는 않았나. 또 신하균은 한 겨울 한강 유람선에 뛰어 내리는 장면이 있던데 춥지 않았을까 싶다.
김혜나: 아팠다. 손톱으로 그 벽을 진짜 긁고 갔다. 손톱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손톱을 붙였는데 그 손톱까지 다 긁히고 살에 피가 살짝 날 때까지만 찍었다. 아프기는 아팠다(웃음).
신하균: 유람선에 작은 보트를 대놓고 거기에 떨어졌기 때문에 물에는 안 들어갔다(웃음).
허문영: 물에서 구출했을 때는 추웠을 것 같다.
신하균: 그때는 너무 추워서 수트를 입고 잠수를 한 뒤 촬영했다.

관객: 이 영화를 교양을 위한 영화라고 했는데 다음에도 같은 작품이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동안 써온 글의 목적은 영화감독을 위해서라고 말했는데, <카페 느와르>는 누구를 위한 영화인지 궁금하다. 어디선가 아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는데.
정성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학전집 시리즈를 계속 찍어볼 생각이다(웃음). 집에 있는 소설들을 총정리하면서 순서를 정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내 영화를 본다면 ‘소년소녀...’ 자막은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통 아이들에게 받치고 있는 영화는 유작이다. 타르코프스키도 그랬다. 그래서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전적으로 이렇게 대답드리고 싶다. 두 시간 78분을 견뎌줄 관객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론 영화를 보다 중간에 나가거나 관람을 포기하는 관객도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 영화를 바칠 생각은 없다.
허문영: 만약 단 한 사람의 감독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다면?
정성일: 결례가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며칠 전 누군가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누가 당신 영화를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첨부된 파일은 오즈의 사진이었다. 큰 위로를 받았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오셨다면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린다.


관객: 가수인데 연기를 처음인 걸로 안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자기 모습 보며 어떤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
요조: 스크린에 나오는 걸 잘 못 보고 있는 상태다. 인터뷰할 때마다 가장 무서웠던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 <링>이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제가 출연한 영화가 될 것 같다. 첫 연기라 여러 가지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지금은...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다.
허문영: 감독님이 또 출연 제의를 한다면?
요조: 괜히 하겠다고 했다가 상처 받을까봐 대답 안 하겠다(웃음). 지난번 시사회 때도 일 때문에 늦어서 뒷부분만 보게 돼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정정당당하게 끝까지 보자고 다짐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서 중간에 그냥 나왔다. 감독님께 죄송하다.

관객: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지? 그리고 영화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카페 느와르’라는 제목이 나오며 영화가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정성일: 제목이 나오는데서 끝나버리면 정유미와 요조가 안 나온다. 두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나(웃음). 그리고 모든 장면들이 정말 다 마음에 든다. 딱히 어느 장면이 맘에 더 드는 건 아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해서 들을 말 중, “그 장면이 생각난다”라는 말이 제일 끔찍할 것 같다. 영화는 사진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장면만으로 영화가 기억되지 않고, 영화 전체가 기억됐으면 좋겠다. 관객 마음속에서 영화 전체가 한꺼번에 다 함께 활동했으면 좋겠다. 그게 내 작은 바람이다.

허문영: 영수를 끝까지 사랑한 사람으로서 영화를 본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사랑이 무엇인지, 영화 전체가 어떤 사랑에 관한 것인지, 영수라는 존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김혜나: 영화 찍을 때는 그냥 영수라는 남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좋아하고 그 남자의 모든 걸 원하는 스토커처럼 생각했다. 미연은 영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촬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영수를 사랑한 게 아니라 영수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를 사랑한 게 아닐까 생각됐다.

허문영: 마지막 인사 부탁드린다.
정성일: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맞이해 준 첫 번째 관객인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내가 늘상 하던 말이 있었다. 영화광의 세 단계는 첫 번째, ‘영화를 두 번 본다’, 두 번째,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세 번째, ‘영화를 만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트뤼포가 미처 말하지 못한 네 번째 단계를 추가하기로 했다. 바로 ‘두 번째 영화를 찍는다’이다. 두 번째 영화로 다시 인사드리겠다. 감사드린다.


- 대화 내용을 최대한 충실하게 담고자 했으나 중간중간 잘못 적은 부분이나 구어체를 문어체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의미가 달라진 부분이 있을 수 있음.

- 정유미는 워낙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날은 유난히 더 긴장을 해서인지 질문에 대해 거의 답을 못했음. 처음 국내 관객에게 선보여서인지 많이 떨렸던 것 같다.

- 영화를 본 소감은, 대단한 영화라기보다는 놀라운 영화라는 것. 긴 러닝타임을 견뎌내야만 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이 영화가 그런 영화다. 그리고 영화광을 위한, 씨네필을 위한 영화라는 느낌. 정성일 감독은 자신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이 말은 곧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한 없이 불친절하고 낯선 영화로 다가갈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영화가 흔히 저지르는 잘난 척하는 느낌이 <카페 느와르>에는 없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래서 좋다. 꼭 다시 보고 싶다. 아니, 꼭 다시 봐야 하는 영화다.

- 그런데 사실 이 영화보다 김소영 교수가 김정 감독의 이름으로 선보이는 데뷔작 <경>이 좀 더 좋았다. <경>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PIFF 2009]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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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동건, 이병헌의 원투 펀치. 그리고 소지섭까지. 조쉬 하트넷보다는 장동건이 오히려 주목 받았던 개막식.

- 그래도 조쉬 하트넷이 이병헌이랑 함께 들어오는데 정말 빛이 나더라. 오오.

- 날이 갈수록 개막식은 스타들을 보기 위한 축제로 변모하는 듯. 그냥 평범한 영화애호가라면 개막식은 그리 기다려지지 않는 행사일지도...

- 김창완밴드의 축하무대가 있었음. 영화제와 록 밴드라니, 나로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음.

- 일본 아줌마들 무섭다. 여학생들 소리 지르는 건 더 무섭다.

- <카페 느와르>로 레드 카펫을 밟은 정성일 감독의 어색한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구나ㅋ 으아, 빨리 보고 싶다!

- 아무튼 영화제가 시작됐다. 내일부터는 진짜 영화의 바다가 펼쳐진다. 우후!


[PIFF 2009] 개막작 <굿모닝 프레지던트>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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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기자시사회랑 기자회견이 있었다. 3년만에 한국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돼서인지, 아니면 장동건 때문인지 평소와 달리 많은 기자들이 상영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순재 할아버지(?)께서 안 오셔서 조금 섭섭했는데 촬영 때문에 못 오셨다고 하니 아마도 '지붕뚫고 하이킥' 촬영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동건은 뭐 말이 필요없고, 한채영도 눈부시고, 아무튼 눈은 즐거웠다(...;).

대통령 세 명의 이야기를 다룬다기에 세 사람이 같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고, 옴니버스 비스무리하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만나고 싶은 대통령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보고 있으면 저런 대통령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 말은 곧 이 영화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상상력을 현실로 그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다 좋은데 마지막 마무리가 좀 아쉽다. 차라리 대놓고 풍자를 했다면 어땠을까. 진짜 오락영화의 틀 안에서의 풍자는 불가능한 것일까. 그래도 작년 개막작보다는 재밌어서 다행이라면 다행. 영화는 22일 개봉 예정.


[JIFF 2009] 9일 동안의 영화 축제, 전주국제영화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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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powershot g10으로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밑의 두 장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공연 장면입니다.


[JIFF 2009] 낯설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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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라브 디아즈 감독의 <멜랑콜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할 수밖에 없겠다. <멜랑콜리아>를 선택한 것은 480분이라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러닝타임을 지닌 이 영화야말로 오직 전주에서만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살인적인 영화에 도전하고 싶은 객기 아닌 객기 탓도 컸다. 하지만 역시 8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20분씩의 쉬는 시간이 두 번이나 주어졌지만, 그럼에도 영화 보는 내내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라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일 정도였으니, 말 그래도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영화도 만만치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의 극적인 압축이 없이,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8시간 동안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기를 원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연달아 보면 9시간이 넘는다지만, 그런 영화와 <멜랑콜리아> 같은 영화는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멜랑콜리아>는 정말 긴 호흡으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2, 3시간만 참아내면 영화에 빠져들게 될 거라는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멜랑콜리아>는 오랜 시간을 참아내고 영화에 흠뻑 빠져들어야만 하는 놀라운 영화다. 이 시간을 견뎌내는 순간 영화는 쉽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잔상을 보는 이의 가슴 속에 새겨 넣는다. 상업영화의 한계를 벗어나 예술영화로서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계속해서 긴 러닝타임의 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는 라브 디아즈 감독의 말 역시 우리로 하여금 영화와 예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지독할 정도로 길지만, 지독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화다. (더 긴 리뷰는 곧 필사를 통해 쓸 예정. 그러나 과연 가능할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쉬린> 역시 <멜랑콜리아> 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사실 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들을 잘 알지 못한다. 얼마 전 재개봉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제외하면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 향기> 등은 아직 보지 못했고,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디지털영화 <텐> 역시 만날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쉬린>을 통해 그의 작업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다만 이런 것도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 참여한 단편을 통해 비슷한 실험을 시도한 바 있다. <쉬린>은 그 단편의 확장판이다. 90분 동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코스로우와 쉬린’이라는 연극(혹은 영화)을 보고 있는(혹은 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여인들의 얼굴이다. 연극을 보며 감상에 젖어드는 배우들의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묘한 경험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연극, 혹은 영화를 본다는 것, 이를 통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서. <쉬린>은 감상에 대한 놀라운 성찰을 제시하는 영화다. (단, 지루함에 쏟아지는 졸음만 견뎌낸다면 말이다.)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의 <익스플로딩 걸>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올 전주에서 본 영화제 베스트로 꼽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뉴요커들을 주인공으로 다시 찍은 일본식 순정만화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태껏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을 보아왔지만, 이만큼 여린 감성을 지닌 영화는 없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남자친구와 헤어진 아이비와, 그런 아이비와 함께 방학을 보내게 된 친구 알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싹트는 사랑의 감정을 그린 <익스플로딩 걸>은 그 섬세한 연출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동양인은 섬세하고 서양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올해 전주에서 가장 가슴 설렜던 순간. (참고로 <익스플로딩 걸>을 연출한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은 <방황의 날들>로 주목 받았고 <나무 없는 산>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소영 감독의 남편. 김소영 감독은 이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든 또 한 편의 영화는 바로 지아장커의 16분 남짓한 단편 <하상적 애정: 물 위의 사랑>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위에서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미학적 성취를 선보였던 지아장커 감독의 이 단편은 놀랍게도 사랑에 대한 영화다. 그것도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영화. 은사의 생일을 맞아 네 남녀가 다시 모인다. 한때 연인 사이였던 그들은 물 위를 유유히 떠가는 배 위에서, 그리고 녹음이 짙게 늘어진 숲 속을 걸으며 이미 옛 것이 돼버린 감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예의 변함없는 지아장커 감독만의 카메라 워킹과 롱 테이크는 영화를 한층 아련한 정서로 채우고 있다. 16분밖에 안 되는 단편이지만 영화가 끝나는 순간의 여운만은 장편 못지않은 영화다.


홍기선 감독의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는 지금도 가끔씩 사람들이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하는 새우잡이 배에 대한 영화다. 조재현의 주연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던 시절을 배경으로 새우잡이 배에 갇힌 밑바닥 인생들의 인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쉬지 않고 등장하는 라디오 뉴스는 새우잡이 배 속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잡아낸다.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텍스트인 동시에,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다. 같이 상영된 단편 <바람이 분다>는 김영하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90년대 말 21세기 초의 음울한 청춘들의 일상을 장영규의 음악과 함께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밖에도 홍상수, 가와세 나오미, 라브 디아즈 감독이 참여한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방문>,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 회고전의 <문라이팅> <출발>, 경쟁부문에 초청된 <페라고스토 런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 <토니 타키타니>을 연출한 이치가와 준 감독의 유작이자 미완성 단편 <옷 한 벌 살까요?> 등을 봤는데, 일일이 멘트는 달지 않는다. 몇 편은 피곤함에 제대로 감상을 못 한 영화도 있었고, 몇 편은 딱히 가슴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만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 <옷 한 벌 살까요?>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버려진 땅> <마사지사>는 따로 올린 포스팅 참조.)

지난해에는 관객평론가로 참여해 한국영화를 대부분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낮술> <우린 액션배우다> <고양이가 있었다>와 같은 의외의 발견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개봉이 될 한국영화는 최대한 배제한다는 기준을 내세워 한국영화를 거의 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 실험적이고 독특한 영화들을 많이 만났다. 익숙해진 영화적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은 없었지만, 낯설기에 깊은 잔상을 남기는 작품들은 많았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생각도,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관습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전주국제영화제가 좋다. 아담한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를 빼곡하게 채운 관객들처럼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주국제영화제는 언제나 소박함을 잃지 않는 영화제가 될 것이다.


[JIFF 2009] <필사 in JIFF> 같은 영화, 두 가지 시선: 브릴란테 멘도자 <마사지사>

영화관/영화제

소문으로만 듣던 필리핀 출신 브릴란테멘도자감독의 데뷔작.제목처럼 미끈미끈(?)하면서도 의외의깊이가 있는 영화다. 영화는 이국적인 필리핀의 작은마을을 배경으로 이틀에 걸친 어느마사지사의 일상을 담고있다. 특이한것은 그의일상을 시간순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각 하루동안 펼쳐진일들을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써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주인공이 한손님을 만나 마사지를 해주면서 나누는 대화들은 그 다음날 갑작스럽게 닥친 주인공아버지의 장례식과 맞물리며 묘한 효과들을 불러일으킨다.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염하는 장면과 손님들을 마사지하는 장면이 교차될때는 심지어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관객에게 펼쳐 보이기도 한다.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을 독특한 구조를 통해 특별한 이야기로만 들어내고 있는 솜씨가 놀랍다. 남성끼리 마사지를 주고받는 은밀한광경은 야릇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영화는 장례식에서 비롯되는 죽음의 그림자를 끝까지 놓지 않고 숙연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떤이가 순간의 쾌락을 위해 누군가에게 자신의 육신을 맡길 동안, 어떤이는 더 이상 쾌락을 경험할수 없는 죽음 앞에서 육신을 버리게 된다는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을 영화는 담고 있다.그 무게감으로 인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에 대한 잔상이 오래 남는다. 또한 마사지실의 모습을 부감으로 찍으며 수평으로 트래킹하는숏도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점에서 인상적인 장면이다.영화를 보고나니 지난해 발표해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서비스>를 비롯해 그의 다른 작품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장병호

* 전주국제영화제 온감 데일리에 올린 글입니다.


[JIFF 2009] <필사 in JIFF>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방문>에 관한 이인이색

영화관/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프로젝트 <디지털 삼인삼색>이 드디어 공개됐다. 10회를 맞아 올해는 한국의 홍상수,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 감독이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필사의 두 필진이 영화 상영에 맞춰 극장을 찾았다.}

전민규(이하 전): 오늘 같이 봤던 영화가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방문>이었어요. 아무래도 전주영화제에서 가장 미는 섹션인데요. 아, 이건 딴 얘긴데 이번에 DVD 세트가 나왔더라고요. 5만원인데 땡기던데요.

장병호(이하 장): 올해 작품들도 거기에 포함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지.

전: 세 편 중에서 뭐가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장: 재미있기는 <첩첩산중>이었는데, 좋은 건 역시 <코마>였어.


전: 네, 저도 <코마>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그런데 순서 상으로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가 좀 아쉽더라고요. <코마>를 그대로 두고 <첩첩산중>이랑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를 바꿨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장: 그랬다면 나도 안 졸았을 텐데 말이지. (웃음) <코마>는 마지막 대사가 제일 좋았어. “당신이 날 꽉 안아줬듯이 누군가도 당신을 안아줬을 거예요”라는 말이 가슴에 파고들더라고.

전: 응? 개인적인 경험이? (웃음)

장:

전: 그런데 <코마> 중에 줌이 되게 신기하게 들어간 게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핸드 헬드가 많아서 가능했던 카메라 워킹이었는데 줌이 나선형으로 아래에서 위로 파고드는 장면이 하나 있더라고요.

장: 가와세 나오미는 어떤 의도로 그 장면을 그렇게 찍었을까?

전: 그건 감독님만 알겠죠, 뭐. (웃음)

장: 라브 디아즈는 어땠어?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전: 영화가 사실 호흡이 좀 힘들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힘이 붙는다고 할까요? 가와세 나오미까지만 보고 나간 사람들은 후회할거예요. 근데 진짜 롱 테이크를 오래 찍긴 오래 찍더라고요. 아, 형 4일에 <멜랑콜리아> 보러 간다고 했죠?
 
장: 응, 8시간을 어떻게 채웠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 (웃음)
 

전: 홍상수 영화는 어떻게 보셨어요?

장: 첫 단편 작업이라는데 변함없는 홍상수 영화더라고. 인물들끼리 얽히면서 드러나는 욕망의 양상도 여전히 재미있었고. 그러고 보니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건 <강원도의 힘>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어.

전: 정유미가 예쁘기는 예쁘더라고요.
 
장: 크크크. 정유미 좋아하는구나. 정유미가 홍상수 영화랑 어울릴까 싶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꽤 잘 어울리더라고.

전: 저는 문성근이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경마장 가는 길>에 문성근 아저씨가 했던 역할이랑도 겹쳐졌고, 홍상수 영화 상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몇 년 후 이야기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장: 문성근이 맡은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참 치졸한 인물인데, 그것마저도 잘 소화해내서 영화 분위기를 한층 더 살린 것 같아.

전: 홍상수 감독님도 그런 일을 많이 겪어본 것 같지 않아요? (웃음)

장: 하긴, 감독님이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유가 있겠지. 흐흐.

* 전주국제영화제 온감 데일리에 올린 글입니다.


[JIFF 2009] <필사 in JIFF> 필사 ‘장병호’가 본 <버려진 땅>

영화관/영화제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은 매월 중순에 발간되는 무가지 잡지다.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십 대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글을 써오고 있으며, 서울아트시네마를 포함한 전국의 다양성 영화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필사 ‘장병호’가 본 <버려진 땅>


지난해 전주에서 벨라 타르의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와 알렉산더 클루게의 <블라인드 디렉터>를 보면서 영화가 지닌 또 다른 힘을 만날 수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관습에서 벗어난 낯선 영화 관람 체험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다. 프로그램이 발표될 때마다 올해는 또 어떤 영화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할지 기대가 된다. 언제나 극장에서는 수동적인 위치에 머무는 관객들이지만, 전주에서만큼은 관객들도 스크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유난히 대안영화와 실험영화가 많은데도 매년 영화제를 향한 관객들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낯설면서도 경이로운 영화 관람이 체험을 선사한 것은 스리랑카 특별전으로 초청된 비묵티 자야순다라 감독의 <버려진 땅>이었다. 2005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던 이 영화는, 내전의 상처로 가득한 스리랑카의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동틀 녘이 다가오고 있는 어느 벌판에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비춘다. 시작부터 보는 이의 마음을 정적으로 몰아넣는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그러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쉽지 않다. 인물들에 대한 소개도,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묘사도 친절하지가 않다. 영화는 정부군과 게릴라군의 휴전협정으로 오랜 내전 끝에 평화를 되찾은 스리랑카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보초를 서는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에게는 아내가 있고, 딸이 있는 누나가 있다. 한 할아버지는 누나의 딸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고, 남자와 절친한 군인은 남자의 아내와 몰래 바람을 피운다. 대사도 많지 않은 영화는 이들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한 공기를 통해 제목처럼 ‘버려진 땅’의 이야기를 그려냄과 동시에, 내전의 상처가 남긴 스리랑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영화가 마치 흙먼지를 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버려진 땅>은 인물보다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황량한 벌판이 더욱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벌판에서 인물들 역시 무기력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사가 없는 것도 영화의 삭막한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 내러티브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한 영화지만 단 하나, 남자와 함께 보초를 서는 할아버지가 남자 누나의 딸에게 들려주는 ‘작은 새’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너무 키가 작아서 작은 새라 불린 한 여자가 자기 힘으로 남편을 찾아오겠다며 길을 나섰다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는 민속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이 버림 받은 땅 위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다. 어쩌면 이들의 무기력한 모습들은 휴전 협정으로 평화가 찾아왔을지언정 희망까지는 되찾지 못한 스리랑카 사람들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버려진 땅>은 영화를 감싸 안고 있는 정적이면서도 삭막한 분위기만으로도 관객을 매혹하고 있다.

<버려진 땅>은 영화의 정서를 통해 관객과 함께 대화하기를 원하는 영화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보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화를 보는 초반 1시간 동안은 좀처럼 영화에 빠져들 수 없었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화가 오히려 나와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에 점점 끌려들기 시작했다. 영화는 어디론가 정신 없이 달려가는 남자 주인공의 고통스런 표정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처음으로 남자가 사는 집을 카메라가 잡는 순간, 처연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로 <버려진 땅>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온감 데일리에 올린 글입니다.


[PIFF 2008] 이번에도 뒤늦게 정리하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관/영화제
솔직히 말하자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본 영화로만 말하자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건 순전히 프레스배지 때문이다(영화가 별로였던 것은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반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들을 고르고 시간표를 짜고 열심히 예매를 해서 영화제를 갔기 때문에 그만큼의 기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프레스배지를 받아 그날그날 스케줄을 짜서 영화를 보다보니 기대감이 덜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여러 기자회견과 행사들을 다닌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그럼에도 영화제의 하이라이트는 영화다. 개막작을 뺀 나머지 14편의 영화들을 정리한다.


미리 만나본 한국영화들

똥파리


올해 부산에서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바로 <똥파리>다. 아는 후배가 스탭으로 영화에 참여했다고 해서 봤는데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느낀 작품이었다. 감독과 주연을 맡은 양익준은 독립영화계에서는 거의 스타급(?)의 지명도를 갖고 있는 배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상영 뒤 GV시간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영화는 시종일관 폭력으로 가득 차있다. 숨 쉴 틈이 없는 폭력의 향연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스크린을 두 눈으로 보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오히려 그런 감정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모은다. 폭력 이면에 숨겨진 연약한 인간의 모습들이 인물들에게 묘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영화 가득 느껴지는 언제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의 힘이 대단한 영화다. 앞으로도 어떤 반응을 모을지 앞날이 기대된다.

지구에서 사는 법


안슬기 감독의 <지구에서 사는 법>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20대 청춘, 그중에서도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젊은이들의 현실을 담백하게 담아낸 <나의 노래는>에 비하면 조금 산만한 느낌이었다. 권태에 빠진 부부의 이야기를 스파이와 외계인과 같은 독특한 소재로 풀어내 통속적이면서 동시에 독특함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잘 영화 속에서 잘 녹아들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보고 싶다. 아무래도 한번 보고 섣불리 판단을 할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여담으로 <궤도>에 출연했던 장소연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샘터분식 - 그들도 우리처럼


<필승 Ver 2.0 연영석>을 연출했던 태준식 감독의 신작 <샘터분식 - 그들도 우리처럼>은 제목에서 예상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영화는 샘터분식 주인아주머니와 마포구에서 활동 중인 지역 운동가, 그리고 음반을 준비 중인 랩퍼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감독 스스로도 편하게 쉬어가는 느낌으로 촬영했다고 말했듯이 영화는 특별한 메시지보다는 세 사람의 일상에 초점을 둔, 개인적인 일기에 가까운 영화였다. 분식점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대한 나로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세 사람의 일상을 통해 약간의 휴식과 위로를 얻은 것도 사실이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세련된 힙합 음악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고기도시


단편영화 중에서는 ‘한국단편경쟁 1’ 섹션의 네 편을 봤다. 광우병을 비롯한 정치적인 맥락을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낸, 지인이 스탭으로 참여한 <고기도시>, 아들의 여자친구의 낙태 수술을 따라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시종일관 흔들리는 핸드헬드가 머리를 어지럽게 한 <아들의 여자>, 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담긴 판타지가 인상적인 <하이브리드>, 사춘기 소녀들의 예민한 감성을 영화적으로 잘 포착해낸 <봄에 피어나다>가 그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하이브리드>와 <봄에 피어나다>가 좋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들의 여자>가 선재상을 받았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뉴 커런츠 부문 상영작들

허수아비들의 땅


<허수아비들의 땅>은 <마지막 밥상>을 연출한 노경태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필리핀에서 입양되어온 한 청년과, 남자가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결혼을 위해 한국에 온 필리핀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오히려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허수아비들의 땅>은 내러티브보다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충돌’적인 감정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환경파괴로 비롯된, 이 세상의 온갖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바로 그 메시지다. 솔직히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이토록 낯선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의 태도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올해 뉴 커런츠 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실험영화는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히려 더 인상적인 한국영화는 김태곤 감독의 <독>으로 영화 곳곳에 보이는 대중적인 가능성이 돋보였다.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 양은용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한 가족이 이웃에 사는 기독교 신자들을 만나며 겪게 되는 미스터리한 일을 그리고 있다. 가족들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가족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점점 공포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이 어쩐지 <소름>을 떠올리게 했다(물론 <소름>의 놀라운 완성도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시각적인 공포에 치중하지 않으면서 감정적으로 공포를 만들어가는 연출력이 돋보였는데, 만약 좀 더 많은 돈을 들였더라면 정말 무섭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똥파리>와 함께 계속해서 응원을 보내고 싶은 영화다.

잘라이누르


중국 독립영화의 수작이라고 소개된 자오예 감독의 <잘라이누르>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영상이 매혹적인 영화였다. 영화는 내몽골 지역의 탄광도시를 배경으로 그곳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증기기관차 운전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익스트림 롱 쇼트로 잡아낸 마을의 풍경은 황량함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묘한 느낌이었다. 특히 보랏빛에 가까운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아름다운 영상과 달리 이야기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런 감정적인 충돌이 마음에 더 큰 인상을 새겨 넣었다.

날고 싶은 눈 먼 돼지


인도네시아 출신 에드윈 감독의 장편데뷔작 <날고 싶은 눈 먼 돼지>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을 영화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폭죽을 먹는 소녀, 한때 배드민턴 선수였던 그녀의 어머니, 중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 그리고 중국인만 아니면 뭐든지 되고 싶어 하는 소녀의 남자친구 네 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로, 시간적인 순서와는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 비디오룸에서 보느라 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보고 싶었던 영화들

걸어도 걸어도


무엇보다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대하게 했던 것은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에릭 쿠 감독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 <하나>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예리하게 일상을 포착하는 그의 연출을 좋아한 내게 시대극 <하나>는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신작 <걸어도 걸어도>는 <하나>의 실망감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영화였다. 영화는 노부부의 집을 아들과 딸의 가족이 1년 만에 찾아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그들에겐 죽은 첫째 아들이 있다. 어머니는 자꾸만 죽은 아들의 기억을 떠올리고, 아버지는 소원한 둘째 아들 때문에 자꾸만 서먹서먹한 행동들을 한다. 노부부의 집으로 이사를 오려는 딸은 그럼에도 부모와는 독립된 생활공간을 차지하려고 하고, 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았던 아들 역시 자꾸만 삐딱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아베 히로시가 아들 료타 역을, <아무도 모른다>의 무정한 엄마로 등장했던 유가 딸 치나미 역을 맡았다. <걸어도 걸어도>는 단지 하루 동안의 일상을 담담한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인데도, 그 일상이 전해주는 마음의 울림이 엄청난 영화다. 또한 3년 전 어머니를 떠나보낸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영화라 몇몇 신은 정말 가슴이 찡할 정도다. <원더풀 라이프>와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추가할 영화다. 하루 빨리 극장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이 매직


에릭 쿠 감독의 <마이 매직>은 전작 <내 곁에 있어줘>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는데 안 좋은 반응을 더 많이 받았다. 그것은 순전히 <내 곁에 있어줘> 때문이다. <마이 매직>은 분명 못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내 곁에 있어줘>를 뛰어넘는 영화는 아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내 곁에 있어줘>가 정말 훌륭한 작품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이 매직>이 아쉽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내 에 있어줘>에 비해 내러티브가 단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한대로 진행되는 영화이기에 엔딩이 전해주는 가슴 뭉클한 감동도 <내 곁에 있어줘>에 비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마이 매직>이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은 주인공인 거대한 체구의 마술사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마술을 하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곳에 이른 비참한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전히 에릭 쿠 감독은 영화로 희망을 얘기한다. 다만 이번엔 그것이 좀 더 극단적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해피 플라이트


나는 우울할 때마다 <워터보이즈>를 본다. 이 영화만큼 유쾌한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영화를 통해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에 야구치 시노부 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신작 <해피 플라이트> 역시 영화 보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작품이다. 게다가 이번엔 비행기와 공항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펼쳐내는 웃음의 앙상블을 선사한다. 마치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세하게 묘사된 공항과 항공기 안의 모습들은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더욱 큰 웃음을 만들어낸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영화,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다.

동사서독 리덕스


아쉽게도 <동사서독 리덕스>는 원작의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예전에 원작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복잡함보다 좀 더 간결해진 느낌이라 이야기를 따라가기 쉬웠다. 영화 중간마다 자막으로 절기 이름을 삽입, 순환구조를 확실히 한 것이 가장 큰 변화였고, 얘기를 들어보니 몇몇 신들이 삭제 혹은 추가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동사서독 리덕스>는 무협영화의 틀을 빌려 ‘사랑’이라는 왕가위 감독의 변함없는 주제를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중경삼림>을 왕가위 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데, <동사서독 리덕스>를 다시 보면 왠지 그 순위가 바뀌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남은 두 편의 영화

타한 - 수류탄을 쥔 소년


산토시 시반 감독의 <타한 - 수류탄을 쥔 소년>은 예기치 않게 몰려온 피곤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많이 아쉽다. 그래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는 긴장감은 쉽게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인도영화는 발리우드처럼 뮤지컬만 있을 거라 생각했던 편견을 깨트린 작품이다.

오'호텐


마지막 영화는 노르웨이의 벤트 하머 감독이 연출한 <오’호텐>이다. 벤트 하머 감독의 전작인 <삶의 가장자리>는 4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적이 있는데, 변변치 않은 낙오자 인생을 살아가는 소설가 맷 딜런의 연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던 영화다(사실 그것만 기억에 남았고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호텐>은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기관사의 이야기로 영화 곳곳에 냉소적인 유머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유머러스하지만, 한편으로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중함도 담겨져 있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한편으론 주인공 얼굴의 주름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크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동정심을 갖게 한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PIFF 2008] 그밖의 사진들

영화관/영화제


10월3일 금요일, '잘라이누르' GV (왼쪽부터 허문영 영화평론가, 자오예 감독)


10월4일 토요일, AND 마스터클래스: 다니엘 데에


10월4일 토요일, 오픈토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왼쪽부터 김지운 감독,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 김영진 영화평론가)




10월7일 화요일, '해피 플라이트' 무대인사 (왼쪽부터 아야세 하루카, 다나베 세이치, 야구치 시노부 감독)

[PIFF 2008] 아주담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10월4일 토요일)

영화관/영화제

(왼쪽 두 번째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동진 영화평론가





(클릭하면 커집니다)
 
올해 부산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세 명의 감독이 있었다. 왕가위, 에릭 쿠,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중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는 내 인생의 영화감독이기 때문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주로 신작 <걸어도 걸어도>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영화를 보지 못하고 행사에 참석해서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영화가 더욱 궁금해졌다. 특히 3년 전 어머니의 죽음이 모티프가 되었다는 얘기가 그랬다.

뒤늦게 비디오룸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절절한 감정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어딘가 어색했던 시대극 <하나>에 실망했던 내게 <걸어도 걸어도>는 다시 한 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놀라운 연출솜씨를 인정하게 만든 영화였다.

간장게장이 너무 맛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나중에 또 부산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년에는 배두나가 출연하는 신작을 들고 부산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ps. 행사 끝나고 허겁지겁 감독님께 달려가 사인을 받았다. 취재중이라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팬심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감독님의 사인은 <원더풀 라이프> DVD와 함께 고이 보관해둘 예정이다.

[PIFF 2008] <스탈린의 선물> 무대인사 (10월3일 금요일)

영화관/영화제

(왼쪽 두 번째부터) 배우 달렌 쉰테미로프, 누르즈만 익팀바예프, 그리고 루스템 압드라쉐프 감독







(클릭하면 커집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온 <스탈린의 선물>이 선정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나아가겠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자부심이 반영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과감하게 개막작으로 선택한 도전이기도 했다. 처음 기자회견 때도 그런 질문들이 나왔었다. 조금 위험한 선택이 아니냐고 말이다. 거기에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오히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영화에 나오는 꼬마아이가 무척 귀엽다고.

결과적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작품성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개막작에 대한 관심만큼은 뜨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의 얘기대로 영화의 주인공인 달렌 쉰테미로프는 정말 귀여웠다. 나중에 그랜드호텔 앞에서 우연히 만나 악수도 했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감독과 배우들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한 가득 안고 온 것 같아 흐뭇했다. 아무래도 카자흐스탄에 한국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그들이 낯설어도, 그들에게 우리는 낯익은 것이다.

[PIFF 2008] 올해 최고의 게스트 우에노 주리

영화관/영화제




10월2일 개막식 레드카펫 (야외상영장)



10월 3일 APAN 컨퍼런스 (그랜드호텔 스카이홀)








10월4일 <구구는 고양이다> 기자회견 (그랜드호텔 스카이홀)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올해 최고의 게스트는 우에노 주리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에노 주리는 착하다. 연예인이라면 갖고 있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남들처럼 화사한 드레스를 입지도 않았고, 예쁜 모습으로 꾸민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영화에서 보는 모습 그대로 스크린에서 튀어 나와 사람들 앞에 있었다. 개막식 날 레드카펫을 걸어가면서 일일이 사람들 손을 다 잡아주는 모습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우에노 주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친숙한 이미지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연예인처럼 젠체하지 않는 그녀가 좋다.

[PIFF 2008] 나 홀로 해운대에서

영화관/영화제

10월3일 해운대 해변



어제로 공식적인(?) 일정을 마치고 혼자 해운대에 남았습니다. 외갓집에서 머물고 있는데 인터넷이 안 되는 바람에 해운대까지 낑낑거리며 노트북 들고 와서 프레스 센터에서 블로깅중입니다(하하-_-;;). 아무래도 영화 못 보고 가면 땅을 치며 후회를 할 것 같아 혼자 남긴 했는데 목요일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어쨌거나 영화의 축제는 오늘부터 시작입니다ㅋㅋ

주말이 지나간 뒤 해운대는 많이 한산해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영작들은 매진 열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예매에 실패해서 내일 비디오룸에서 영어자막으로 볼 생각입니다ㅠㅠ)

관람영화 리뷰 및 영화제 관련 얘기들, 그리고 다채로운 사진들은 목요일 이후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전에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기면 또 모르겠지만요.

그럼 저는 5시 반 영화를 보러 이만...

[PIFF 2008] 스탈린의 선물: 그때 카자흐스탄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영화관/영화제

스탈린의 선물 (The Gift To Stalin)
루스템 압드라쉐프 감독, 2008년

1930년부터 1949년에 이르기까지 소비에트 정권은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강제이주 정책을 펼쳤다. 독일인과 유대인, 심지어 한국인까지 포함된 많은 민족들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중앙아시아로 가야만 했다. 그들은 허름한 기차 속에서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때때로 그런 비참한 삶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기차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그곳에서 새롭게 삶의 터전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스탈린의 선물>은 강제이주 도중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홀로 남게 된 어린 유대인 소년 사쉬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카자흐스탄의 외딴 마을에 내리게 된 사쉬카는 그곳에서 카심을 맞나 마을에서 지내게 된다. 어린 사쉬카와 카심,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른이 된 사쉬카의 내레이션을 통해 회고조로 진행된다.

영화의 제목인 ‘스탈린의 선물’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1949년 스탈린의 70회 생일을 맞아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실시된 핵폭탄 실험을 뜻하며, 또 다른 하나는 스탈린의 생일에 선물을 바치면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쉬카의 소망을 뜻한다. 핵폭탄 실험은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으며, 사쉬카는 부모를 끝내 만나지 못한다. 곧 ‘스탈린의 선물’은 어린 소년의 소망마저도 이룰 수 없게 한 소비에트 정부의 폭압적인 권력을 뜻한다. 그때 카자흐스탄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스탈린의 선물>은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그때 있었던 일을 잊지 말자고, 역사에 남겨진 비극을 기억하자고 말이다.

<스탈린의 선물>이 인상적이라면 그것은 국적의 생소함에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낯선 풍경과 인물들의 생소한 언어가 때로 이질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런 이질감도 사쉬카와 카심의 이야기가 지닌 감동을 방해하진 못한다. 그것은 영화가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권력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휴머니즘을 자극한다. 휴머니즘만큼 쉽게 감동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없지만, 그것을 <스탈린의 선물>의 한계로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스탈린의 선물>은 시간과 장소가 달라져도 인간다움이라는 가치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이며, 나아가 휴머니즘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감동임을 증명하는 영화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http://www.joycine.com/service/movie/festival/festival_news.asp?id=12793)

[PIFF 2008]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풍경

영화관/영화제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 기자회견


개막식 풍경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



부산 도착했습니다. 역시 부산국제영화제는 엄청난 규모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영화는 많이 못 봤습니다. 일요일까지는 일하고 월요일부터는 영화를 볼까 생각중입니다. 영화제 관련 포스팅은 그때 한꺼번에 몰아서 하겠습니다. 지금은 기사를 써야해서-_ㅠ

그리고 우에노 주리 특집도 올라갈 예정입니다. 행복합니다ㅠㅠㅠ

[CHIFFS 2008] 뜻밖의 즐거움,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영화관/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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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보다 더욱 화려해진 모습으로 막을 연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보여준 지나친 정치적인 성격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프로그램 내용 자체로는 매우 만족할만한 영화제였다. 대중적인 영화제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온갖 고전들로 가득한 상영작 목록은 언제나 영화에 목말라 있는 씨네필들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올해 영화제는 좌석점유율에 있어서도 78%를 기록했던 전년도에 비해 5.4% 늘어난 83.4%를 기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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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와 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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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이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총 10편. 그 중 네 편은 ‘이치가와 곤 감독 특별전’ 상영작이었다. 안 그래도 올해 봄 이치가와 곤 감독의 타계 소식을 들었기에 그의 영화를 볼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네 편의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이누가미 일족>이었다.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을 보면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유명한 탐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바로 그 탐정이 <이누가미 일족>의 주인공인 긴다이치 코스케다. <이누가미 일족>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서막을 알린 작품인 동시에, 이치가와 곤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돋보이는 추리영화다. 평소에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수사를 할 때만은 진지한 긴다이치 코스케의 모습은 영락없는 김전일 판박이다. 그의 독특한 매력을 거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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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의 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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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초기작품인 <버마의 하프><불꽃>도 빼놓을 수 없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승려가 된 병사의 이야기를 그린 <버마의 하프>, 교토에 있는 유명한 절 금각사를 배경으로 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영화화한 <불꽃>은 이치가와 곤 감독이 얼마나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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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와 곤 이야기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이와이 슌지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이치가와 곤 이야기>였다. 이치가와 곤 감독의 탄생부터 2006년 아직 그가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에는 그 흔한 인터뷰도, 내레이션도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엔 몇 장의 사진과 이치가와 곤 감독 영화의 장면들이 담겨져 있을 뿐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것들을 가지고 정성스레 편지를 쓰듯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해냈다. 여전히 변함없이 이와이 슌지 감독 특유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어, 보고 있으면 어느 샌가 콧등이 시린 감동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치가와 곤 감독과 그의 부인이자 각본가였던 와다 나토와의 이야기는 마치 <러브 레터>나 <4월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감성이 묻어나, 역시 이와이 슌지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 이치가와 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영화를 가장 많이 본 나로서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영화에 있어서 내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왠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고백은 이치가와 곤 감독에 대한 그의 애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예상치 못했지만 아마도 올해 충무로영화제 최고의 발견은 바로 이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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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네 편은 칸 감독주간 특별전 상영작들이었다. 칸 감독주간은 68혁명의 영향으로 생긴 칸 영화제의 가장 혁신적인 섹션으로, 그 시대의 가장 새로운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문이다. 감독주간 40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40X15: 칸 감독주간 40년의 기록>은 그런 감독주간을 가장 친절히 설명해주는 다큐멘터리다. 초기 집행위원장인 피에르 앙리 드로부터 현 집행위원장 올리비에 페레까지 그 동안 칸 감독주간을 이끌어온 사람들의 인터뷰와 감독주간을 통해 이름을 알린 감독들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40년 동안의 업적과 성취를 차곡차곡 담아냈다. 짐 자무시, 에릭 쿠, 가와세 나오미, 토드 헤인즈, 미카엘 하네케, 봉준호 등 좋아하는 감독이 나올 때마다 느끼게 되는 흥분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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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악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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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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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월요일


그밖에 본 세 편의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아마도 악마가>, 마이클 피기스 감독의 <폭풍의 월요일>, 토드 헤인즈 감독의 <세이프>였다.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악마가>를 무척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무척 건조한 느낌이라서 조금 견디기 힘들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 젊은이가 겪게 된 공허함을 그린 이 영화는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은 긴장이 녹아 있다. 그것은 혁명 뒤의 공허함을 얘기하는 이 영화의 염세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영화가 전해주는 지독한 냉소만큼은 잊을 수 없는 영화였다.

<폭풍의 월요일>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연출한 마이클 피기스 감독의 데뷔작으로, 영국 뉴캐슬 지역을 재개발하려는 미국인 코즈모의 음모에 두 남녀가 휘말리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서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센슈얼한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노동자 남성과 미국 출신의 가난한 웨이트리스 여성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간도 함께 지니고 있는 영화다. 특히 가수 스팅이 재개발에 끝까지 반대하는 클럽 사장으로 등장해 멋진 연기와 동시에 자신의 본업이 베이스 실력을 멋들어지게 선보이기도 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세이프>는 제목처럼 가장 안전한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이 처한 아이러니함을 그린 영화로, 줄리안 무어가 화학약품으로 인해 병을 앓게 되는 주인공으로 등장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아름다운 그녀가 점점 핼쑥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여성적인 섬세함이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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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퍼 하우저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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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황소


나머지 두 편의 영화는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카스퍼 하우저의 신비>와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다. 먼저 <카스퍼 하우저의 신비>는 1828년 독일에서 발견된 한 청년의 실화를 담은 영화로, 인간 세계 바깥에서 성장해온 카스퍼 하우저를 통해 인간 이성의 허점을 비판하고 있는 영화다. 만약 영화를 보면서 카스퍼 하우저의 엉뚱한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면, 그건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영화는 카스퍼 하우저의 엉뚱한 행동들을 통해 이성과 비이성의 기준에 대해 역으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카스퍼 하우저는 인간 세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그의 신체를 해부하여 그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대한 이성적인 증거를 찾으려고 한다. 그가 ‘정상’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성과 비이성, 정상과 비정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푸코의 사상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성난 황소>는 개인적으로 마틴 스콜세지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영화다. 복서 제이크 라모타의 생애를 그린 이 영화는 권투를 통해 성공을 쟁취한다는 감동이 아닌, 자신의 폭력성으로 인해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보는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그리고 있다. 폭력 속에서 인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개인의 이야기는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를, 성공을 이뤘으나 행복하진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에비에이터>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는 50파운드나 되는 체중을 늘려가며 열연을 보여줬다. 철장 속에 갇혀 울부짓는 제이크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 영화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가 인용한 장면이기도 하다.

‘창조, 복원, 발굴’을 내걸고 고전영화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중적인 영화제라는 목표의 구체적인 상도 아직 불확실하고, ‘국제영화제’를 지향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특정 지역의 축제에만 머물고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 사실 때문에 1회 영화제 때는 솔직히 별로 지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영화제를 통해 그래도 1년에 한 번쯤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맘 편히 영화제를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 겪게 될 시행착오들을 통해 더욱 성숙한 영화제로 거듭나길 바란다.


[CinDi 2008] 두 편의 단편영화와 함께 만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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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디지털서울 2008(이하 CinDi 2008) 기자회견에서 날 가장 흥분시켰던 것은 바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내한소식이었다. 때마침 개봉한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으로 한참 그의 영화에 빠져있을 때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디지털로 작업한 두 편의 단편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이 나를 너무나도 설레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아 장커, 장률 감독보다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더 만나고 싶었다.

압구정 CGV는 예상한대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거기엔 분명 영화제 분위기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변을 스쳐지나가는 영화인들. 압구정 길거리에서 지아 장커 감독과 장률 감독을 동시에 마주치는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 어쩐지 영화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압구정이, 잠깐이나마 영화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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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메데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작품을 보기 전에 먼저 두 편의 영화를 봤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페드로 코스타, 샹탈 액커만 등 6명의 감독들이 만든 옴니버스영화 <삶의 조건>,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메데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적의 메데아>였다. 두 영화 모두 힘들었다. <삶의 조건>에서는 무려 10분 넘게 계속되는 롱 테이크에 쓰러져버렸고, <기적의 메데아>에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내러티브에 결국 꿈나라로 가고 말았다. 잠을 깨려고 마신 커피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좋게 말하자면 새로운 경험. 중요한 것은 이런 ‘영화’도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다행히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작품들은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장편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단편영화만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기에 너무나도 즐거웠다. 다른 경로로는 절대 접할 수 없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를 봤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의 대단한 팬이 된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당신들은 못 본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를 나는 봤습니다’라는 어쭙잖은 잘난 척이랄까? 건방져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왠지 오늘 함께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렇게 잘난 척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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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작은 세계>

처음 상영된 작품은 2008년에 만든 <참 작은 세계>였다. 이 영화는 일본의 록밴드 더 피즈(Theピーズ)의 노래 ‘실험4호(実験4号)’를 모티프로 하여, 소설가 이사카 코타로(‘칠드런’ ‘중력 삐에로’를 썼고 곧 개봉예정인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의 원작자이다)와 함께  소설과 영화를 함께 제작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성으로 이주하게 되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지구에 남아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세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린 소년들의 꾸미지 않은 연기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소녀들만큼이나 귀여웠고, 풍경들을 통해 소소한 감정을 잡아내는 감독의 연출력도 변함없었다. 귀여우면서도 한 편에 슬픔이 묻어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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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와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공동으로 작업한 '実験4号―後藤を待ちながら' 표지

영화가 끝난 뒤 CinDi 2008의 집행위원장인 정성일 평론가 선생님께서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모든 작품세계가 집약되어 있는 영화”라고 평했는데 충분히 공감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이 영화는 소설과 함께 만들어졌기에 영화만 보는 것은 이야기의 절반만을 보는 것뿐”이라고 말했는데, 그래서인지 소설이 왠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올해 봄에 이사타 코타로의 소설과 영화 DVD가 함께 나왔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소설도 함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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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텍사스, 모리구치>

<참 작은 세계>가 그의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면, 두 번째로 상영된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특유의 재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삭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2003년 TV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게 된 <요짱>이라는 작품이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에게 그 작품은 다시 생각해볼 여지도 없는 실패작이었다. 남들이 자신의 실패작을 알기 전에 그 작품을 지워버리고 싶은 그는, 그때 같이 작업을 했던 스탭들과 함께 그 영화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모리구치 시(市)로 떠난다. <요짱>은 일종의 ‘커뮤니티 영화’였다. 모든 촬영은 모리구치 시에서 이뤄졌으며, 배우들 역시 그곳에서 캐스팅됐다. 자신의 마을에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들뜬 모리구치 시민들은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작업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러나 다시 만난 모리구치 시민들은 감독에게 그때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며 잊고 있던 감독의 상처를 자꾸만 떠올리게 했다. 마침내 다시 본 <요짱>은 변함없는 실패작이었다. 자신의 실패작을 바라보는 감독의 얼굴은, 마치 평생 지우고 싶은 어떤 기억을 마주한 사람의 그것과 똑같았다.

그럼에도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는 그의 영화들 중 가장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감독 스스로도 자신에게 쓰라린 기억을 더 슬프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며 그러한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요짱> 같은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참 작은 세계>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라며 자신의 실패작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토록 웃음 넘치는 영화가 순간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한 사람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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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사진출처: 인터넷;)

코밑부터 턱까지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는 어정쩡하게 서있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모습은 어쩐지 귀여워보였다. 1976년생, 이제 곧 32세가 되는 그가 기대되는 것은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정말 훌륭한 영화들을 여러 편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장편영화만이 아니라 틈틈이 단편영화과 TV 작품도 병행하고 있는 그이기에, CinDi 2008을 통해 만난 <참 작은 세계>와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는 그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먼저 본 두 편의 영화 때문에 무척 피곤한 하루였지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덕분에 피곤함도 잊은 채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 밤 꿈에는 <참 작은 세계>의 그 귀여운 꼬마 녀석들이 나오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본다.

* 관객과의 대화 도중 정성일 선생님께서 여담으로 자신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동의할 수 없다면서 <마츠가네 난사사건>이야말로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진정한 걸작이라는 얘기를 잠깐 하셨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좀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어쩐지 그 얘기가 반가웠다. 그의 전작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빠른 시일 내에 마련되었으면 하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린다 린다 린다> 이전의 작품들이 너무나 궁금할 따름이다.

* 카메라를 집에 놔두고 가서 현장의 분위기를 사진에 담지 못했습니다-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