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NATION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에 해당되는 글 437건

  1. [인터뷰] 강박을 벗고 편안하게, '걷기왕'의 심은경 (1)
  2. [인터뷰] '럭키' 유해진 "연기는 늘 냉탕과 열탕 사이…힘들어도 즐기죠"
  3. [인터뷰]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죽음도 자연스러운 질서…그때까지 배우이고파"
  4. [인터뷰] '아수라' 정우성 "공감 안 간 한도경, 규정 않고 따라가봤죠"
  5. [인터뷰] '아수라' 주지훈 "나이 먹을수록 평온해져…현장 더 즐기게 됐죠"
  6. [인터뷰] '밀정' 엄태구 "연기도 이렇게 놀아볼 수 있다는 것 배웠죠"
  7. [인터뷰] ‘고산자’ 김인권 "조각장이 바우, 숭고미의 극치를 느꼈죠"
  8. [인터뷰] '밀정' 송강호 "어려움에 거절도 하지만…그래서 더 도전하게 되죠"
  9. [인터뷰] '범죄의 여왕' 박지영 "편안함·유머·애정…그게 제 모습이죠"
  10. [인터뷰] '카이' 이성강·연상호 감독 "韓 가족 애니의 레퍼런스 되길"
  11. [인터뷰]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시대보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12. [인터뷰] '덕혜옹주' 박해일 "달라진 것? 그저 계속 걸어나아갈 뿐이죠"
  13. [인터뷰] '국가대표2' 오연서 "'1등을 하고 싶은 2등'에 공감이 갔죠"
  14. [인터뷰] '덕혜옹주' 손예진 "가련한 삶, 공감 담아 연기했죠"
  15. [인터뷰] '인천상륙작전' 이정재 "마음 끌린 첩보물…팽팽한 긴장감 만들어냈죠"
  16. [인터뷰] 느리지만 여유롭게, '부산행'의 정유미
  17. [인터뷰] '사냥' 조진웅 "힘들고 괴로워 도망가고 싶지만…현장 가면 달라지죠"
  18. [인터뷰] '사냥' 한예리 "대중과 소통? 이것저것 다 해보자 싶었죠"
  19. [인터뷰] '비밀은 없다' 이경미 감독 "새로운 시도 속 대중과 소통 바라죠"
  20. [인터뷰] '봉이 김선달' 유승호 "젊고 섹시한 사기꾼에 마음이 빼앗겼죠"
  21. [인터뷰] '굿바이 싱글' 마동석 "진정성 있게 캐릭터를 깊이 파야해요"
  22. [인터뷰] '비밀은 없다' 손예진 "광기와 슬픔…저도 제 모습이 낯설더라고요"
  23. [인터뷰] '굿바이 싱글' 김혜수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 1㎜라도 성장해야죠"
  24. [인터뷰] '특별수사' 김상호 "애잔하고 뭉클한 아버지…왠지 더 마음이 가요"
  25. [인터뷰] '양치기들' 박종환 "가치 있는 영화 출연하는 좋은 배우가 꿈"

[인터뷰] 강박을 벗고 편안하게, '걷기왕'의 심은경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탓인지 언젠가부터 연기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고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죠."


지난 3월 영화 '널 기다리며'의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만난 심은경(22)은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나 다시 만난 심은경의 표정은 그때보다 더 밝고 여유가 느껴졌다. 그 편안함은 그동안 찍은 영화에서 받은 좋은 기운 때문이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걷기왕'(감독 백승화)이 바로 그 영화다.



'걷기왕'은 선천적 멀미 증후군으로 학교까지 2시간 동안을 걸어 다니며 통학하는 고등학생 소녀 만복이 경보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청춘영화다. 심은경이 주인공 만복을 연기했다. '널 기다리며'에서 다소 무거운 캐릭터를 소화했던 심은경은 '걷기왕'에서 '써니'의 나미와 '수상한 그녀'의 오두리를 연상시키는 편안한 캐릭터로 자신만의 매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올해 초까지 고민의 시기를 거치면서 심은경은 "내가 연기를 즐겨야 그 진심이 오롯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걷기왕'이 찾아왔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메시지도 공감갔고요. 이 영화는 꼭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숨에 결정했어요." 선택은 옳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이전에 갖고 있던 강박과 고민을 많이 내려놓게 됐어요. 처음 연기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줬고요. 그만큼 저에게는 소중한 작품이에요."



만복은 평범한 10대 소녀다. 꿈도 목표도 없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고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여고생이다. 그런 만복은 "너는 걷는 걸 잘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 한 마디로 경보를 시작한다. 물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무작정 꿈과 열정을 심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무작정 경보 선수가 된 만복은 점점 자신이 진짜 경보를 하고 싶어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아역 시절부터 연기를 해온 만큼 심은경은 극중 만복과는 다른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심은경은 "저도 만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릴 때 좋아서 연기를 했지만 끝까지 계속 연기를 할지는 잘 몰랐어요. 일단은 학생이라는 본분에 충실했죠. 그런 와중에 연기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어요. 그래서 만복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갔어요."


심은경은 만복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캐릭터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스러움을 콘셉트로 잡았어요. 그래서 제가 여태까지 찍은 작품 중 가장 고민을 하지 않고 한 작품이기도 해요. 고민을 했다면 구토하는 장면이었어요. 그것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실감나게 할 수 있을지를 염두에 뒀죠. 딱 그 정도랄까요? (웃음)" 극중 중국집 배달부 효길(이재진)의 오토바이를 타고 벌어지는 코믹한 에피소드, 그리고 멀미약을 너무 많이 붙인 나머지 해롱거리는 모습 등에서 심은경이 얼마나 현장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연기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영화는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강화도와 파주 등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7살 터울인 박주희, 그리고 동갑내기인 윤지원, 안승균 등 또래 배우들 함께 한 현장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다시 교복을 입고 10대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촬영하면서 오히려 20대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10대 학생의 캐릭터를 더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됐다.


영화는 만복을 통해 무작정 꿈과 열정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비록 그것이 남들보다 늦더라도 괜찮다는 작은 위로도 함께 담겨 있다. 심은경에게 '걷기왕'이 소중한 것은 그 스스로도 영화를 통해 힐링을 얻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경보 장면을 보면서 제가 출연한 영화인데도 이상하게 뭉클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나온 영화를 보며 우는 건 민망해서 눈물을 꾹 참고 영화를 봤죠. 영화가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어요. 빨리 가지 말고 조급해 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천천히 너의 길을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리고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면서 위로해주는 느낌도 있었고요."



영화는 엔딩 크레딧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짤막하게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뒷이야기가 소소한 웃음을 전한다. 그러나 주인공 만복의 뒷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아 의문을 남긴다. 심은경은 "만복은 걸어서 전국일주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평범하게 지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걷기왕'을 마친 심은경도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며 여유롭게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도 고민은 있어요. 연기에 대한 고민도 있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하지만 한 편 두 편 작품을 하고 나이도 들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바뀌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고민들도 조금은 편안하게 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럭키' 유해진 "연기는 늘 냉탕과 열탕 사이…힘들어도 즐기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다. 유해진(46)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품어온 배우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는 끝없는 훈련과 연습을 하며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견뎌냈다. 그리고 배우가 된 지금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연기의 재미와 고통을 모두 감내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유해진의 사람 좋은 웃음 뒤에는 그런 성장의 과정이 있었다.


무명 시절 유해진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하다면 13일 개봉하는 영화 '럭키'(감독 이계벽)가 그 답이 될 것이다. 극중에서 배우 지망생으로 연기 연습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연극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연기법을 벽에 붙여 놓는가 하면 볼펜을 입술 위에 올려놓고 '간장공장공장장'을 읊는 그의 모습이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유해진은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좋았다.


"무명 배우 역할이 있어서 편했던 것 같아요. 제가 다 겪은 것들이니까요. 연극 무대에서 활동할 때 영화처럼 생활을 했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트레이닝도 하고 발성 연습도 했고요. 그래서 촬영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제가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도 했고요."



그러나 '럭키'는 무명의 배우 지망생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유해진이 맡은 역할 또한 배우 지망생이 아니다. 영화는 냉혹한 킬러 형욱(유해진)이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기억을 잃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난한 현실에 삶의 의욕을 상실한 무명 배우 재성(이준)이 그런 형욱의 목욕탕 키를 바꿔가고, 형욱은 자신을 재성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제목인 '럭키'는 행운이라는 뜻의 '럭키(lucky)'이자 운을 바꾸는 열쇠라는 뜻의 '럭-키(luck-key)'를 모두 뜻한다.


유해진은 "영화를 잘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툭 던져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에 끌려 '럭키'에 출연을 결심했다. 코미디로 홍보되고 있지만 굳이 그런 방향으로 작품에 접근하지는 않았다. "저는 그냥 상황에서 생겨나는 재미를 좋아해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매번 오버하면서 연기하지는 않았거든요. 코미디는 코미디로 접근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원칙이죠. 영화는 개인기의 장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서 크고 작은 웃음이 나온다면 그것은 형욱에서 재성이 됐다 다시 형욱으로 돌아온 유해진의 편안한 연기 때문일 것이다. 유해진이 의도한 것 또한 킬러로서의 경직된 모습에서 형욱으로 릴렉스한 모습으로의 변화를 서서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좀처럼 웃지 않던 형욱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여기에 형욱의 입장이 된 재성의 이야기, 그리고 형욱에게 호감을 느끼는 소방대원 리나(조윤희)의 이야기가 엮이면서 영화는 소소한 재미로 관객의 마음에 편안한 웃음을 전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재성으로 살게 된 형욱은 단역 배우를 시작으로 연기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촬영장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겨우 몇 장면을 찍고 돌아오는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형욱의 표정은 나날이 밝아진다. 그런 형욱이 리나에게 "배우를 하면서 꿈이 생겼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유해진이 말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툭 던져주는" 장면이다.


유해진도 배우를 통해 처음으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고(故) 추송웅의 연극을 본 뒤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정말 집중해서 봤어요. 어린 나이였는데도 너무 쏙 빠져들었죠. 많은 사람들이 추송웅 선생님만 바라보던 그때가 지금도 생각이 나요. 그 순간 저게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보다 싶었어요."



물론 꿈을 이루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길이니까 반대가 심하셨어요. 군대에 가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거니?'라고 물으시면 '저 연기한다니까요'라고 얘기했거든요. 결국 나중에는 '그럼 열심히 해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됐어요." 그렇게 부모님의 응원 속에서 마침내 배우로 무대에 섰을 때 더없이 큰 희열을 느꼈다. 그 희열이 유해진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기하게 만들고 있다.


'럭키'의 형욱은 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꿈을 이룬 유해진은 이제는 배우로서의 삶을 마냥 즐기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유해진은 "연기하는 게 어떨 때는 재미있지만 어떨 때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연기가 왜 이렇게 갈수록 힘이 드는 건가 싶을 때도 있어요. 무언가 막혀 있는데 자꾸 더 재미있는 걸 요구하면 정말 외롭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유해진은 "계속 해나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모든 걸 던지고 있다. 그 속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잘 안 풀리던 게 풀리면 기분 좋죠. 그래서 맨날 열탕에 들어갔다 냉탕에 들어갔다 하는 것 같아요. 열탕과 냉탕 사이죠! (웃음)"


[인터뷰]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죽음도 자연스러운 질서…그때까지 배우이고파"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노년의 배우라고 꼭 주인공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연기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윤여정(69)의 필모그래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스크린에 윤여정이 등장할 때, 우리는 평범한 할머니가 아닌 윤여정만의 색깔이 녹아든 캐릭터를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윤여정은 영화를 통해 노년의 삶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6일 개봉하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는 윤여정이 아니었다면 좀처럼 완성되기 힘들었을 작품이다. 영화는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性)을 파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다. 파격적인 소재지만 영화는 자극적이기보다 따뜻하다. '스캔들: 남녀상열지사' '여배우들' '두근두근 내 인생' 등 이재용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리면 파격과는 거리가 먼 영화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배우들'로 이재용 감독과 인연을 맺은 윤여정 또한 이재용 감독이 영화를 자극적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역할을 자신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재용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요.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냈기에 '누가 한다고 했지?'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이재용 감독이 '선생님이 하시라고 보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이재용 감독이 극단적으로 영화를 만들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거든요. 그래서 타이밍에 맞춰 출연하기로 결정했어요."



영화 속에서 윤여정이 연기하는 소영은 한국의 슬픈 현대사를 홀로 겪어낸 기구한 여성이다. 한국전쟁 당시 고아가 된 뒤 미군기지 근처에서 양공주로 살아온 그녀는 노인이 된 지금 박카스 한 병과 함께 성(性)을 팔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이어간다.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약자 중에서도 약자지만 소영은 그런 자신보다도 더 약한 이들을 보듬을 줄 안다. 노인, 트랜스젠더, 장애인, 그리고 혼혈아까지 영화는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해 따뜻함을 전한다.


윤여정은 이번에도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내가 이 여자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소영에게 다가갔다. 그 과정에서 이해한 것은 소영이 "죄의식을 평생 못 내려놓을 짐처럼 안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소영이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입양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저는 그때 소영이 스스로를 죽은 걸로 생각했을 거라고 봐요. 자기 새끼를 키우지 못하고 남에게 보내는 심정은 엄마로는 평생 잊지 못할 짐이거든요." 소영을 단순한 '박카스 할머니'를 넘어 나름의 사연이 있는 인물로 그리는 것, 그것이 이번 작품에서 윤여정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탑골공원 근처의 허름한 여관에서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도저히 익숙해지기 힘든 현장 분위기 때문에 반복되는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에서 늘 쉽게 빠져나왔지만 이번에는 캐릭터의 무게감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2개월 남짓한 촬영을 마친 뒤에는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영화를 찍는) 2개월도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뭘까 싶었죠. 인생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은 잘 알아요. 그래도 이 할머니들도 언젠가는 나처럼 누군가의 소중한 딸로 태어나 부모의 축복을 받았을 거 아니에요. 영화 마지막에 그런 장면이 나오죠. 다 속사정이 있을 거라고요. 다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우울증에 빠졌어요."



노인의 성, 그리고 사회에서 외면 받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그리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죽음이라는 테마를 꺼내다. 힘든 삶 속에서 죽음마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노인의 현실을 다룬다. 소영은 아픈 몸으로 살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한 노인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어느 새 진짜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이재용 감독과 함께 고민이 많았어요. 누군가를를 죽인다는 것은 결국 살인이잖아요. 그런데 같이 출연한 전무송 씨가 리딩 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 여자는 천사야'라고요. 그래서 소영이 사람을 대신 죽여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존감을 잃었을 때 얼마나 모욕적인 기분이겠어요.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데 마냥 쿨해질 수는 없을 것 같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밖에 없어서 그렇게 울면서 촬영을 했어요."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윤여정은 "오래 전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왔다"며 "죽음을 터부시하지만 그냥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얻은 결론이었다.


"하버드 교수가 쓴 '웰 다잉'에 대한 책을 봤는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면 답은 없대요. 대신 결론을 내린 게 자기가 하던 일을 하면서 죽는 것이더라고요. 나도 내가 배우를 하다 죽으면 참 좋은 일이겠죠. 물론 내가 90이 넘어서도 여러분이 나를 보며 '아직 살아계시네요'라고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요(웃음). 지금은 목표 같은 것이 없어요. 연기의 의미 같은 것도 없고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그저 앞에 있는 일을 해결하면서 하루하루를 살려고요."


[인터뷰] '아수라' 정우성 "공감 안 간 한도경, 규정 않고 따라가봤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악(惡)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수라'는 범죄로 가득한 가상의 도시 안남을 무대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안간 힘을 다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폭력적인 도시의 밑바닥에는 '이기는 편이 내 편'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정우성(43)이 연기한 주인공 한도경이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해온 정우성에게도 '아수라'의 한도경은 익숙함보다 새로움이 더 큰 캐릭터였다. 액션 느와르의 주인공답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느와르 영화 속 주인공이 남성성을 매력으로 드러낸다. 반면 한도경은 자신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이들로부터 그 남성성을 끊임없이 짓밟히는, 어떻게 보면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운 남자다.


"한도경은 스스로가 주인공스럽지 못한 인물이에요. 안남이라는 가상의 도시에 등장하는 영화적인 캐릭터 사이에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이죠. 40대가 겪는 방황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인물 같았어요. 40대는 꿈을 상실하고 꿈을 가질 수도 없는 데다 책임질 건 많잖아요. 불확실함과 불안함으로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요."



정우성도 처음에는 한도경에게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호기심이 갔다. "보통은 기획 단계에서 감독님에게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죠. 그런데 '아수라'는 '이 텍스트 뒤에 숨겨진 게 뭘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게 곧 한도경이니까요. 그걸 찾아가는 작업의 여행이었어요."


그 실마리는 첫 촬영 때 풀렸다. 극중 형사로 등장하는 한도경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망한 형사반장 황인기(윤제문)의 장례식을 가는, 완성된 영화에는 편집된 장면이었다. "한도경이 무슨 감정인지도 모를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장면이었어요. 첫 촬영부터 말도 못할 피로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한도경이라는 인물에 들어간 것 같아요. 확신이 생겼고요. 한도경을 규정하면서 연기하지 말고 한도경을 쫓아가며 그의 모든 걸 다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죠."


영화는 안남시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과 그런 박성배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검사 김차인(곽도원),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한도경을 통해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지옥도를 그린다. 잘 생긴 외모로 스크린 속에서 빛나는 역할을 주로 연기해온 정우성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남성성이 짓밟히며 한없이 무너지는 한도경을 연기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배우 입장에서는 힘든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우성은 "그 모습도 남자가 갖고 있는 진실된 모습이라서 재미있었다"며 웃었다. "연기할 때는 그 상황에 몰입해 있다 보니 짜증나는 감정이 들죠. 하지만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면 그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져요. 남자들이 그렇잖아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에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결국 무너지고 마니까요."


'아수라'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바로 영화 후반부 한도경이 펼치는 차량 추격신이다. 잃어버린 총을 찾기 위해 빗속에서 차를 몰고 가는 한도경의 모습이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 폭발적으로 그려지는 장면이다. 한도경의 캐릭터에 깊이 몰입한 정우성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스트레스가 자의에 의한 게 아니라 그냥 폭발한 거잖아요. 그때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엄청 많이 했어요. 갑자기 감독님의 무전이 오더라고요. '우성아, 욕은 그만해야 할 것 같아'라고요(웃음). 그런데 진짜 그때는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할 수 없었으니까요."



'아수라'는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의 15년 만의 재회로 화제가 됐다. 정우성에게 김성수 감독은 "영화 작업의 의미를 보여준 형이자 선배님" 같은 존재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등 지금의 정우성이 있게 해준 작품을 함께 한 이가 바로 김성수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번 '아수라'에서도 김성수 감독의 변함없는 뚝심을 확인했다.


"감독님은 정말 매일 치열하게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타협도 안 하시고요. 그래서 제 동료들도 그런 감독님의 현장을 맛보게 하고 싶죠.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더 치열해지셨어요. 에너지도 더 강해지셨고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죽기 전 마지막 영화라는 심정으로 할 거야'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그전에도 늘 그런 심정으로 한 작품 한 작품 해오신 것 같아요."


오랜만에 거칠고 어두운 이야기로 돌아왔지만 정우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호감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스스럼없이 망가지는 모습으로 대중은 그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 정우성은 "제가 원래 그랬던 걸 보여드릴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계획적인 건 아니었지만 (대중의 마음을) 잘 파고든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다.


'아수라'의 40대 한도경은 스트레스 속에서 끝내 지옥으로 침몰하지만 40대 배우 정우성은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하고 있다.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은 아니에요. 스트레스를 내 안에 담는 게 아니라 잘 해소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고 하고요. 무엇이든 내 책임이잖아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과정이고 결과니까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어요."


[인터뷰] '아수라' 주지훈 "나이 먹을수록 평온해져…현장 더 즐기게 됐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소년은 어느 순간 청년이 되고 또 어른이 된다. 달콤하고 행복하게만 느껴지던 세상은 어느 순간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한 곳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배우 주지훈(34)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변화가 딱 이렇다. 한때 로맨틱 코미디 속 훈훈한 남자 주인공을 주로 맡았던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영화 속에서 거친 남성들의 세계를 온몸으로 겪는 캐릭터로 배우로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좋은 친구들'과 '간신'이 바로 그 증거였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아수라'(감독 김성수)에서 주지훈은 지옥과 같은 폭력적인 세계와 마주한다. 영화는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무대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지훈은 주인공 한도경(정우성)이 친동생처럼 챙기는 후배 경찰로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수행팀장이 되는 문선모 역을 맡았다. 세상 물정 모르고 순수하게 살아가던 문선모는 박성배와 함께 일을 하면서 지옥 같은 세상에 점차 물든다.



주지훈은 '아수라'를 "버킷리스트 중 여러 개를 한꺼번에 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꿈 같은 작업이었다는 뜻이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정만식 등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 그랬다. '비트'의 김성수 감독, 그리고 '신세계' '무뢰한' 등을 제작한 사나이픽처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아수라'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영화 속 인무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악인으로 등장한다. 유일하게 처음부터 악인으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바로 문선모다. 다른 인물들이 '악(惡)'의 끝없는 지독함을 보여준다면 문선모는 자신도 모르게 '악'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적인 고뇌를 그려낸다. 주지훈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처음 등장해 영화가 끝나갈 무렵 벗어날 수 없는 '악'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주지훈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캐릭터의 변화였다. 그는 "다른 작품들처럼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대본을 보면서 (캐릭터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우리 영화가 되게 친절하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선모의 캐릭터가 반영돼 있다고 봤거든요. 상황이 바뀌면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요. 저는 그걸 잘 받기만 하면 됐죠. 굳이 어떤 변화를 보여주려고 할 필요는 없었어요."



영화가 다루는 감정과 사건은 다소 극단적일 정도로 과잉돼 있다. 그러나 주지훈은 이를 영화적으로 과장됐을 뿐 일상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스트레스'라는 관점을 통해 문선모의 캐릭터와 영화의 테마에 접근하고자 했다. "현실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짜증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선모도 마찬가지라고 이해했어요. 형처럼 따르는 도경을 믿어 박성배의 수행팀장이 됐지만 생각보다 더 큰 일들을 맡게 되면서 짜증과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죠."


영화에서 또 인상적인 것은 바로 도경과 선모의 관계다. 주지훈은 이것 역시 심플하게 다가갔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지금도 가장 자주 만나는 친한 친구들이에요. 근데 친구들끼리 가끔은 빈정 상해서 싸우기도 하거든요. 얼마 전에도 싸웠어요(웃음). 그런 느낌을 도경과 선모의 관계에서 살리려고 했어요. 그런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감독님이 그리고 싶어 하신 것 같고요."


그 관계의 미묘함은 도경과 선모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영화 후반부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도경을 향해 총을 겨누는 선모와 그런 선모를 도경이 끊임없이 자극하는 장면이다. "인간적인 고뇌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족 같은 사람에게 상해를 입혀야 하는 것, 그리고 그걸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 선모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죠. 부모님이나 친구, 연인처럼 신뢰가 있는 사이에서는 싸우면서도 대화를 이어나갈 때가 있잖아요. 선모와 도경의 마지막 장면도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하고 연기했어요."



주지훈에게 '아수란'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동네 형처럼 현장을 이끄는 김성수 감독, 그리고 동생처럼 챙겨주는 배우 '형들'과의 작업에서 여느 현장보다 더 즐거움을 느끼며 작업에 임했다. 배운 것도 많았다. "형들처럼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선배들이 한 것처럼 자신 또한 후배들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선모가 그러했듯 주지훈 또한 배우로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다만 선모와 다른 것이 있다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통제할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희로애락이 줄어들어요. 좋은 의미죠. 그만큼 평온해지는 거니까요. 스트레스의 강도는 20대 때보다 지금이 더 커졌을 거예요. 그러니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노하우를 더 쌓으려고 하는 것이겠죠. 그 덕분에 현장을 더 즐기고 좋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금 주지훈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전작들보다 조금 더 많은 관객과 영화로 만나는 것,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배우로서의 평가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아수라'로 지옥 같은 세계를 경험한 그는 내년에 진짜 저승사자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를 통해서다. 그는 "'츤데레' 같으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귀띔했다.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에 대한 편견을 '신과 함께'로 깨고 있어요. 좋아하는 감독님과 형들과 작업하고 있어 너무 재미있어요."

[인터뷰] '밀정' 엄태구 "연기도 이렇게 놀아볼 수 있다는 것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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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32)에게 연기는 힘든 것이었다. 즐거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연기를 하는 것은 늘 고통스럽고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그런 엄태구에게 '밀정'(감독 김지운)은 "연기도 이렇게 놀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다. 앞으로 계속 이어갈 연기 작업의 전과 후를 나눌 작품으로 '밀정'을 꼽는 이유다.


'밀정'을 본 관객이라면 주연 배우 송강호와 공유 사이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남기는 젊은 배우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이정출(송강호)과 함께 의열단 단장 정채산(이병헌)을 추격하는 일본 경찰 하시모토가 그 주인공이다. '잉투기' '차이나타운' 등으로 주목을 받은 배우 엄태구가 하시모토를 연기했다.


극중 하시모토는 주인공 이정출과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이정출이 조선인이라는 신분과 일본 경찰이라는 직업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이라면 하시모토는 오직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인물이다. 엄태구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로 강렬한 등장과 충격적인 퇴장을 선사하는 하시모토로 관객 뇌리에 강한 인상을 새겼다.



엄태구에게 '밀정'은 캐릭터 이전에 작품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악마를 보았다'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잠시나마 같이 작업한 바 있는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배우라면 누구나 꿈꿀 송강호와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오디션에 합격한 뒤 김지운 감독으로 받은 시나리오를 통해 자신의 배역을 알 수 있었다. 시나리오 위에 적힌 네 글자는 바로 '하시모토'였다.


"오디션을 볼 때 하시모토를 하고 싶다는 기대가 있기는 했어요. 그런데 여태까지 오디션에서 어떤 역할을 기대하면 항상 떨어졌어요. 그래서 기대를 최대한 접으려고 했죠. '차이나타운'과 '밀정'이 기대한대로 역할을 맡은 영화들이에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엄청 좋았어요. 그런데 2~3초 정도 지나니까 도망가고 싶어지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의 팬이었기에 그만큼 공포가 따라온 것 같아요."



캐스팅이 결정된 뒤에는 단 하나만 생각했다. 하시모토를 어떻게 '진짜'처럼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하시모토에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편집된 장면 중에 하시모토가 히가시(츠루미 신고) 부장이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기대감에 부응하고 싶다는 것이 하시모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촬영 내내 공격적이고 예민한 모습을 이어가다 보니 의도치 않게 살이 빠지기도 했다.


송강호와의 작업도 처음에는 무척 긴장됐다. "'사도' VIP 시사회 때 선배님을 처음 뵀어요. 안 그래도 저에게는 엄청 큰 분이셨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뵈니 정말이지…. 대본 리딩하고 리허설 할 때는 눈도 못 쳐다봤어요. 그런데 이러다 현장에서 기절하면 진짜 바보가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더 집중해서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런 긴장과 달리 현장에서의 작업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저는 까마득한 후배인데도 선배님은 그냥 같은 배우로 배려하고 존중해주셨어요. 감정신도 어떻게 연기를 해도 다 받아주셨고요.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노는 것처럼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김지운 감독 또한 현장에서 족쇄를 풀어준 것처럼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지인에게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했어요. '연기라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는 말이 약간 오그라들기는 하지만(웃음)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영화를 보면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하시모토가 부하 우마에(정도원)의 뺨을 때리는 신도 그 중 하나다. 엄태구 스스로 꼽은 가장 힘들었던 장면 중 하나다. "시나리오에 '연거푸 따귀를 때린다'라고 적혀 있었어요. 정말 고통스러웠죠. 정도원 선배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연기할 때는 그 죄송함을 어떻게든 지워야 했죠. 그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경성으로 가는 열차에서 이정출과 의열단원 김우진(공유) 사이에 슬며시 앉는 신도 힘든 촬영이었다. "긴장감이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장면이잖아요. 긴장감을 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그리고 두 선배 배우 사이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고요. 조금 헤매기도 했는데 김지운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면을 만들 수 있었어요."



거칠고 강인한 외모와 달리 엄태구는 속이 깊고 세심하다. 연기에 있어서도 섣불리 만족하지 않고 늘 신중한 태도를 지니려고 한다. '차이나타운'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연기에는 늘 답이 없어서 '쿵쾅쿵쾅'하게 된다"고 말했다. 1년여가 지나 다시 인터뷰에서 만난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영화 속에 담긴 연기는 늘 아쉽다는 말이었다.


"진짜를 담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운 좋게 진짜가 되는 순간도 있기는 해요. 하지만 대부분은 늘 '쿵쾅쿵쾅' 하면서 혼자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기대감은 있어요. 연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기대감이요. 10년 전 제 연기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웃음)."


'밀정'으로 연기의 즐거움을 새롭게 느낀 엄태구는 "이번 작품이 배우 생활에서 새로운 시작이자 큰 바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단편영화로 멜로 장르도 경험했다. "제목은 가제인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요. 아는 동생인 조용익 감독이 찍은 영화인데요. 저도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상업영화에서는 못할 수 있는 장르니까요(웃음)." 올해로 데뷔 10년차인 엄태구는 그렇게 '쿵쾅쿵쾅'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갈고 닦아왔다. 이제 비로소 연기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그의 발걸음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행보가 흥미로울 것임은 분명하다.


[인터뷰] ‘고산자’ 김인권 "조각장이 바우, 숭고미의 극치를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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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는 조선 후기 지도에 모든 것을 바친 김정호의 이야기를 그린다. 열정과 집념으로 지도 만들기에 매진한 그의 결과물은 영화 후반부에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광화문 한 가운데에서 대동여지도가 펼쳐지는 순간 영화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에서 극중 주인공 김정호를 연기한 차승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배우 김인권(38)이 그 장면의 감정과 정서를 이끈다. 그는 김정호와 함께 지도를 만드는 조각장이 바우 역으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단순한 조연을 뛰어넘어 김정호의 열정에 감화돼 변화하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다.



김인권이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강우석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에게 강우석 감독은 특별한 존재다. 1998년 데뷔작 '송어'의 제작자가 바로 강우석 감독이었다. 충무로에서 뼈 굵은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강우석 사단'이 되는 것, 그런 김인권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고산자, 대동여지도'였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시나리오를 구해 읽으면서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대시'를 했어요(웃음). '송어' 때만 해도 영화에 출연하려면 감독님을 계속 쫓아다녀야 했거든요. 강우석 감독님에게도 그렇게 배우의 열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그러다 회사를 통해서 전화가 왔죠. 감독님을 만났는데 '네가 생각하는 만큼 작은 역할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캐스팅이 됐구나 싶었어요."


조각장이를 연기하는 만큼 준비할 것도 많았다. 영화 속 판각 자문을 담당한 목우 조정훈 선생을 찾아가 직접 목판 조각을 연습했다. 첫날은 4시간 동안 앉아 조각만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생각에 집까지 목판을 가지고 와 연습을 거듭했다. 영화 속 바우가 안경을 쓰고 등장하는 것도 김인권의 아이디어였다. 디테일한 대동여지도 목판을 조각한 사람이라면 안경이나 돋보기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조각장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김인권이 해야 할 전부가 아니었다. 극중 바우는 김정호의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서 김정호의 열정과 집념을 통해 점점 변화하고 성장하는 캐릭터였다. 김인권도 "바우는 처음에는 김정호와 갈라져 있다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나중에는 김정호와 영혼을 함께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런 고민이 빛을 발하는 순간 바로 영화 후반부 바우가 대동여지도를 펼치는 장면이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긴장하며 촬영에 임한 장면이었다. 부담감도 컸다. 물론 배우로서는 '기분 좋은 부담감'이었다.



"그 장면에서 바우가 광화문에 들어설 때는 더 이상 예전의 바우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김정호의 영혼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 곧 김정호인 것이죠. 촬영 전부터 부담이 컸어요. 현장에서도 계속 그 장면만 이야기했죠. 촬영 전날에는 날씨도 안 좋은데다 고민이 많아 잠도 잘 못 잤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 당일이 되니 날씨가 정말 좋더라고요. 현장에서 지도를 착착 펼치는데 진짜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이 장면은 그냥 꽂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김인권은 그때 바우의 모습을 '숭고미'로 표현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숭고함이 담겨 있어서다. "저는 우아하게 태어나지 않아서 우아함은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숭고함은 보여줄 수 있어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도 왕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도부장 역에는 숭고함이 있었잖아요. 그런 모습을 연기할 때 정말 짜릿해요. 그런 점에서 바우는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숭고미의 극치였어요."


김정호를 통해 바우가 성장했듯 김인권 또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것, 그리고 예술을 꿈꾸는 사람은 그 인생 자체도 예술이라는 것을 느꼈다. "저에게도 김정호처럼 원대한 꿈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예전에는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거든요. 그게 카메라에 잡혔을 때 관객의 심장도 같이 뛰게 했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타협을 하게 되죠. 그래서 지금은 김정호의 삶이 부러워요. 그렇게 심장이 다시 뛰게 하고 싶고요."


[인터뷰] '밀정' 송강호 "어려움에 거절도 하지만…그래서 더 도전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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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봐도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의 주인공 이정출이 그렇다. 조선인인 그는 한때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일본 경찰 제복을 입고 일제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친일파'처럼 그를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내면과 심리는 '친일파'라는 단어로 정리하기에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다.


'밀정'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는 독립투사와 친일파라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질곡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송강호(49)가 '밀정'에 끌린 것도 바로 영화가 지닌 이런 색다름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매력적이었어요. 이 시대를 다뤘던 훌륭한 작품들도 많이 있었죠. 그러나 '밀정'은 미술로 치자면 붉은 것도 검은 것도 노란 것도 아닌 회색빛이 나는 시선으로 시대를 조망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시대를 살아온 인물의 내면을 다룬다는 것이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왔고요."


'밀정'은 송강호가 김지운 감독과 함께 작업한 네 번째 작품이다. 가장 최근에 작업한 작품은 2008년 개봉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었다. '밀정'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를 무대로 한 영화다. 송강호는 "'놈놈놈'에서 연기했던 윤태구와 '밀정'의 이정출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말 복잡다단한 인물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대가 낳은 풍경 같아요. 한 가지 신념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격변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은 거죠. 그것이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특징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1923년에 일어난 황옥 경부 폭탄사건을 모티브로 일본 경찰과 의열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첩보 작전을 그린다. 조선인이면서 동시에 일본 경찰인 이정출은 의열단의 새로운 리더 김우진(공유)을 만나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시대가 만들어낸 고민과 갈등과 마주한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점점 변화를 겪는 이정출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낸다.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인물, 그것이 바로 이정출이다.


'밀정'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이토록 복잡다단한 인물을 송강호가 연기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정출은 표면적으로는 '친일파'다. 그만큼 정이 가기 힘든 인물이다. 그럼에도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정출의 심리를 따라가게 된다. 그동안 스크린에서 보여준 송강호의 이미지가 이정출에게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이 저를 캐스팅한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이미지가 확실한 배우가 이정출을 연기했다면 '저 사람은 좋은 놈이구나' 또는 '나쁜 놈이구나' 라고 정리가 될 거예요. 하지만 제가 연기를 하니까 오히려 인물에 대한 혼란함이 더 생기는 듯해요. 제가 일본 경찰을 연기한다고 하니 생경하게 받아들이는 분도 있더라고요.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죠."



송강호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의 내면에 보다 집중하며 연기에 임했다. 첫 장면부터 그런 송강호의 노력이 잘 드러난다. 영화는 한때 친구였던 김장옥(박희순)의 체포 작전에 나선 이정출의 모습으로 막을 연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 상황, 이정출의 복잡한 마음은 송강호의 표정과 눈빛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이정출의 흔들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 흔들림이 영화 내내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죠.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도 그렇잖아요. 만약 특별한 개연성을 만들어서 선과 악을 구분했다면 영화가 다루는 세계가 작아 보였을 것 같아요. 우리 영화의 목표는 그보다 더 크게 시대와 사람을 깊이감 있게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송강호는 "어떤 작품을 거절하는 이유도, 하게 되는 이유도 어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렵기에 고민하지만 그 어려움이 도전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밀정' 또한 송강호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정출이 확실한 색깔이 있는 인물이 아니어서 연기하기에 조금 까다로웠어요. 그 미묘한 심리를 흔들리는 동공으로 보여줘야 하니까요(웃음). 그런 감정들을 점층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하지만 그런 것이 또 매력적이어서 연기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이죠." 그렇게 송강호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연기의 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우리가 송강호의 연기에 빠져드는 이유다.


[인터뷰] '범죄의 여왕' 박지영 "편안함·유머·애정…그게 제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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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양미경. 넌 이름이 뭐니?" 영화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의 주인공 양미경은 자신을 이름으로 소개한다. 남들처럼 '아줌마'라거나 '누구 엄마'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당당함, 그리고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편안함이 양미경에게 있다. 이토록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마침내 한국영화에 등장한 것이다.


양미경을 연기한 이는 바로 배우 박지영(47)이다. 박지영은 '범죄의 여왕'을 가리켜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역할의 폭이 넓지 않은 40대 여자 배우에게 '범죄의 여왕'의 양미경은 "돈을 내고서라도 하고 싶었다"고 농담처럼 말할 정도로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단순히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을 넘어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촉'이 왔어요. 시나리오를 읽는데 어느 순간 다시 앞부분을 보며 직접 대사를 연기하고 있더라고요. 대사가 낯설지 않았어요. 저 역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니까요. 양미경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이었어요. 저도 양미경처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고 주변 사람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리고 러블리하고요(웃음)."


박지영은 "양미경은 양미경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양미경이 엄마이며 여자이자 누나이며 언니처럼 보이는 것은 그녀가 '양미경' 때문인 것 같아요. 단순히 엄마로서의 역할만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매력적이지 않았겠죠." 직접 아이디어를 낸 부분도 있다. 과거 미스춘향에 뽑혔을 당시 찍은 사진을 소품으로 사용한 것도 그 중 하나다. "양미경은 미모에 대한 자긍심이 있는 인물이라고 봤어요. 그러면서도 가벼운 여자가 아니라고 봤고요. 정의감도 있으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도 있는 인물이라고 이해했어요."


영화는 시골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양미경이 아들에게 닥친 난처한 일을 직접 해결하러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신림동 고시촌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무려 120만원에 달하는 수도요금이 나오자 양미경은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아들의 고시원을 찾아간다. 화려한 패턴을 자랑하는 원색 의상을 입고 서울에 올라온 양미경은 고시촌에서 살아가는 20~30대 청춘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 나간다. 그 해결사 같은 모습이 실로 '범죄의 여왕' 같다.



양미경처럼 박지영도 현장에서 후배 배우들과 친분을 쌓으며 작업에 임했다. 먼저 나서서 후배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그 비결이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작업하는 것도 이번 작품이 준 선물 같았어요. 연기에 대한 아이들의 자세가 저를 긴장시키고 새롭게 했죠. 저는 누군가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유머 감각도 있고 관심 표현도 잘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애들이 당황하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스태프들에게도 편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저에 대해 잘 알게 됐지만요(웃음)."


많은 사람들은 박지영을 '센' 이미지로 기억한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러했고, 영화 '하녀'와 '후궁, 제왕의 첩'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러했다. 그래서 '범죄의 여왕' 속 양미경은 박지영의 색다른 변신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박지영은 오히려 "양미경이랑 성격이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센 이미지 때문에 답답할 때도 있었어요. 홍상수 감독님 영화 제목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생각이었죠(웃음). 그런데 저와 비슷한 모습을 연기로 보여줬다면 오히려 연기 생활을 오래 못했을 것 같아요. 연기자는 다양한 역할의 옷을 입는 게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저에게 주어진 화려하고 센 이미지가 감사하게 느껴져요. '범죄의 여왕'으로 저의 다른 모습을 봐주신다면 더욱 좋고요."



1989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박지영은 결혼 이후 남편의 사업으로 베트남에 거주하면서도 한국을 오가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신랑이 그러더라고요. '네가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게 일을 하니까 이런 선물 같은 작품이 온 거'라고요. 일이라는 게 지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항상 허벅지를 꼬집으면서까지 참고 기다리며 작품을 하는 편에요. 그래서 일하는 시간이 항상 좋아요." '범죄의 여왕'의 개봉과 함께 SBS 월화극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와 수목극 '질투의 화신'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뜻하지 않게 '다작 배우'가 된 그는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일은 몰아서 온다'는 말처럼 좋게 봐주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로 남고 싶지만 더 바라는 것은 좋은 인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우리 애들도 나중에 '우리 엄마 괜찮은 사람 아니었니?'라고 말할 수 있게요.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후배들이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존경'까지는 자신 없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돼요(웃음).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이 돼라'고 하는데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행복해야겠죠? (웃음)"


[인터뷰] '카이' 이성강·연상호 감독 "韓 가족 애니의 레퍼런스 되길"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마리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애니메이션을 이끌어온 이성강(53) 감독, 그리고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의 애니메이션부터 실사 영화 '부산행'까지 한국영화계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 중인 연상호(38) 감독이 함께 손을 잡았다. 17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이하 '카이')은 이성강 감독의 세 번째 장편으로 연상호 감독이 이끄는 스튜디오 다다쇼가 제작한 작품이다.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의 한 극장에서 이성강, 연상호 감독을 만나 '카이'의 제작 과정,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투자 과정의 어려움 저예산 제작으로 타개


'카이'는 눈의 여왕 하탄의 마법으로 세상이 얼어붙을 위기에 처하자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모험에 나선 소년 카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몽골을 배경으로 한 범아시아적 판타지로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성강 감독이 '카이'를 구상한 것은 10여 년 전 몽골을 여행한 뒤부터다. 몽골의 아름답고 광활한 풍경을 보면서 '눈의 여왕'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카이'를 기획하게 됐다. 그러나 투자 과정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두 차례 정도 투자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의 차이나 필름과 합작도 모색했으나 마지막에 가서 아쉽게 무산됐다. 이성강 감독은 "굉장히 실망이 커서 더 이상 작품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때 연상호 감독이 나타났다. 이성강 감독이 '카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던 그는 작품이 투자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직접 제작을 해보겠다고 이성강 감독에게 제안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쌓은 경험이 작품 제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처음에는 이성강 감독님에게 '제가 한 번 해볼까요'라는 이야기를 드리기가 애매했어요. 감독님 입장에서는 지원금을 받아서라도 어떻게든 처음 기획한 예산대로 작품을 준비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진행이 잘 안 되면서 제가 예산을 줄여서라도 함께 가보겠다고 말씀을 드리게 된 거죠."


이성강 감독도 연상호 감독을 만나면서 든든한 힘을 얻게 됐다. "연상호 감독은 저예산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노하우가 있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상호 감독도 '저예산으로 작품을 제작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올라갈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그게 현재로서는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함께 하게 됐죠."


연상호 감독이 제작을 맡으면서 '카이'도 조금은 변화를 겪게 됐다. 처음 시나리오는 '눈의 여왕'과 거의 비슷한 다소 복잡한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은 '카이'가 액션 활극 같은 작품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에 영화는 지금처럼 카이가 주인공인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이야기로 새롭게 거듭났다. 보다 아이들의 시선에 맞춘 가족 애니메이션이 된 것이다.



◆ 가족 애니메이션의 레퍼런스 됐으면


당초 이성강 감독이 생각했던 '카이'의 제작비는 '천년여우 여우비'와 비슷한 20억원 규모였다. 관객 100만명 정도는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채울 수 있는 예산이다. 최근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60억원인 것에 비교하면 무척 적은 액수다. 그러나 이마저도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것이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현실이라고 연상호 감독은 말한다.


"애니메이션 지원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3D 작품을 중심으로 지원해요. 2D 애니메이션은 지원 받기가 힘들죠. 그리고 매년 지원금은 나오지만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잖아요. 제작이 실제로 안 되는 케이스가 많아서 그런 것이죠."


결과적으로 '카이'는 6억5000만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됐다. '카이'와 같은 날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서울역'과 비슷한 수준의 제작비다. 손익분기점은 관객 45만명 정도다. 그러나 이성강 감독은 "6억5000만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6억5000만원짜리 퀄리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1800컷이나 되는 작품을 몇 안 되는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만큼 20억원으로 만든 애니메이션과 (완성도는) 거의 비등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예산은 줄어들었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였다는 뜻이다.



이성강, 연상호 감독은 '카이'가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특히 부족한 가족 애니메이션의 레퍼런스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 애니메이션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애니메이션 시장도 산업도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작품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투자를 받아서 시장에서 깨지더라도 계속해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정상적인 구조라고 생각해요. 투자를 받아 제작을 하고 시장에 작품을 내놓는 과정이 몇 번 반복돼야 거기에 대한 감각도 생기거든요. 이성강 감독님은 상업적인 영화판 안에 두 번 들어갔다 오셨고 이번에 세 번째로 들어가시게 되는 건데요. 이런 경험치를 가진 애니메이션 감독이 (한국에서는) 굉장히 드물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계속해서 작품을 만드셨으면 합니다." (연상호 감독)


"애니메이션 시장이 넓어져야 저도 오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죠(웃음). 그리고 작품을 계속 만드는 것이 애니메이션 시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기에 꾸준히 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성강 감독)


가족 애니메이션의 레퍼런스를 만들기 위한 두 감독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성강 감독의 차기작도 연상호 감독이 제작하기로 이미 이야기를 마친 상태다. 이성강 감독은 "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공주의 이야기"라고 차기작에 대해 귀띔했다. 연상호 감독은 "'카이'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가족 애니메이션의 레퍼런스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시대보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덕혜옹주'의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만난 배우 손예진은 "허진호 감독님이 '덕혜옹주'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무언가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신선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허진호(53) 감독이 덕혜옹주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소식은 호기심을 먼저 갖게 했다. 그동안 일상적인 분위기의 멜로영화를 주로 만든 허진호 감독과 제작비 규모가 큰 시대극의 만남은 그 자체로 신선했기 때문이다.


허진호 감독이 덕혜옹주의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1962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덕혜옹주의 모습을 본 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덕혜옹주의 귀국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봤어요. 어린 나이에 일본에 가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만 있었다면 영화를 안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귀국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봤는데 눈물이 나면서 감동이 있었요. 비극이 해소되는 지점이 있었죠.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지키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였어요."



물론 덕혜옹주의 삶을 영화화하는 작업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덕혜옹주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았다. 극적인 드라마도 없는데다 여자 주인공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주변에서는 위인도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아닌 덕혜옹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느냐는 반응도 보였다. 그때 마침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가 출간됐다. 고민의 실마리가 소설 속에 있었다.


"김장한이라는 인물로 이야기를 풀었다는 점, 그리고 덕혜의 내면이 잘 다뤄져 있다는 점에서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책이 많이 팔렸잖아요. 이 정도면 해볼 만한 것 같다고 주위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준비하게 됐어요."


실제 역사를 영화로 옮겨야 하는 만큼 사전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 최대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면서 개연성과 정당성을 가져가고자 했다. 극중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이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는 설정은 당시 일본 육사를 졸업했던 이우 왕자와 함께 일본에 왔다고 설정해 개연성을 더했다. 영친왕을 사랑하는 아내 때문에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답답한 인물로 만든 것도 당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결과물이었다.


손예진이 맡은 덕혜옹주 캐릭터 또한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고자 했다. "역사를 영화화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극화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덕혜옹주는 굉장히 근대의 인물이잖아요. 1989년에 돌아가셨는데 알려진 게 없어요. 그럼에도 이 인물을 극화시키는 데 있어 정당성과 개연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덕혜옹주가 일본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아마도 실제 덕혜옹주는 이런 일을 못했을 것 같아요. 일제에 이용만 당했을 거예요. 그래서 원래는 그냥 친일 연설을 하는 정도로 설정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덕혜옹주에게 (극적인) 무언가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너무 수동적으로 보였고요. 그래서 연설 장면 정도는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장면을 만들었어요."


누군가는 '덕혜옹주'에 대해 허진호 감독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스케일이 큰데다 허진호 감독 영화에서 보기 힘든 액션 신 등이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은 전작들과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지 않았다. 그동안 만들어온 멜로영화처럼 '덕혜옹주'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또한 인물들 사이의 감정이었다.


"공항에서의 귀국 장면이 없었다면 '덕혜옹주'를 만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세월이 지난 다음에 다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제 영화를 보면 항상 인물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다시 만나는 건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는 장면이 있죠. '봄날은 간다' '외출' '행복'에서는 인물들이 다시 만났고요. 그래서 오랜 세월을 가지고 다시 만나는 감정을 그리는 영화를 준비한 적도 있어요. '덕혜옹주' 또한 시대보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어 선택한 것이고요."



영화를 보고 나면 유독 인물들의 뒷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나이 든 장한의 뒷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긴 시간을 거쳐 다시 만난 장한과 덕혜옹주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허진호 감독은 "찍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첫 장면은 시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내레이션이 있어서 영화가 조금 더 끝나는 느낌으로 그렇게 찍었고요. 특별한 의도는 없었어요(웃음)." 그러나 영화는 이 같은 인물들의 뒷모습을 통해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덕혜옹주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게 만든다. 늘 한 걸음 뒤에서 인물들의 마음까지 바라보고자 했던 허진호 감독 특유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허진호 감독은 "요즘 고민 중의 하나는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인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허진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그가 점점 변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덕혜옹주'가 잘 보여준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에 여전히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덕혜옹주'를 마친 허진호 감독은 이제 다음 작품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차기작은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좀 더 장르적인 영화를 해볼까 싶어요. 조금 더 빨리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일상적인 멜로도 하고 싶고요. 한 번은 규모가 큰 장르영화를, 또 한 번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같은 영화를 작업하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게으름이에요. 감독들은 다 게으르거든요(웃음). 몇 년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지겹기는 해요.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인터뷰] '덕혜옹주' 박해일 "달라진 것? 그저 계속 걸어나아갈 뿐이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여름에 영화를 개봉하는 건 '괴물' '최종병기 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여름에 극장가를 찾은 적이 많지 않아 이번이 더 긴장됩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을 비우려고 하고 있고요."


박해일(39)이 오랜만에 여름 극장가를 찾았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를 통해서다. 늘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온 그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더 특별하다. '덕혜옹주'는 박해일의 전작들에 비하면 규모가 큰 대작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다. 권비영 작가가 2009년에 출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허진호 감독이 영화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박해일은 어릴 적 고종황제로부터 덕혜옹주와의 결혼을 약속 받은 뒤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남자 김장한을 연기했다.



'덕혜옹주'의 배경이 되는 일제강점기는 박해일에게 낯선 시대가 아니다. 그는 2008년 개봉한 '모던보이'를 통해 이미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바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캐릭터의 색깔이다. '모던보이'에서 연기한 이해명이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인물이었다면 '덕혜옹주'의 김장한은 시대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모던보이'의 이해명은 친일파의 자식으로 낭만만 쫓아 다니던 인물이었죠. 그러나 영화는 그런 이해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무언가 진지해진 느낌에서 마무리가 돼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이해명의 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장한의 캐릭터에 많이 끌렸습니다."


영화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장한 또한 실제로 고종황제로부터 덕혜옹주와의 결혼을 약속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덕혜옹주 역의 손예진이 실존 인물을 표현한다는 부담을 느낀 것과 달리 박해일은 보다 자유롭게 캐릭터에 접근했다. 영화 속 김장한은 실제 김장한과 그의 형이자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힘쓴 김을한을 합친 가상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덕혜옹주를 조명하는 이 영화에서 제가 맡은 것은 관객들이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렌즈 같은 역할이었어요. 장한이 나이가 들어서도 평생 덕혜옹주를 귀국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원동력은 권비영 작가의 소설 속에 충분히 들어있다고 생각했고요. 고종황제와 어릴 적에 한 약속에 김장한의 행동의 '뿌리'가 있었으니까요."



박해일에게 '덕혜옹주'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허진호 감독, 그리고 손예진과의 첫 번째 작업이라는 점에서다. 특히 허진호 감독 특유의 연기 디렉팅에서는 이전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재미를 느꼈다. "감독님마다 배우에게서 감정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방식이 있죠. 허진호 감독님은 배우가 하고 싶은 것을 일단 하게 두는 편이세요. 초원의 양과 염소가 알아서 자신이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처럼요. 그런 최소한의 터치로 배우들의 감정과 호흡을 자연스럽게 만드셨어요."


손예진과의 연기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예진 씨가 덕혜옹주를 위해 준비한 것을 현장에서 보여줄 때,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는 그런 예진 씨의 연기 덕분에 덕혜옹주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장한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고요. 예진 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박해일은 새로운 현장에서 새로운 감독, 배우들과 함께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극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유독 배우들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김장한의 뒷모습으로 막을 여는 영화는 김장한과 덕혜옹주가 함께 있는 뒷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진 인물들을 다시금 기억하려는 듯한 모습이 애잔함을 느끼게 만든다.


박해일도 그런 장면들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뒷모습도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죠. 뒷모습에도 감정이 있다고요. 실제로 어떤 감독님은 배우의 등을 통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작품 속에 녹여내기도 하시죠. 저 역시도 이번 영화에서 인상적인 뒷모습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덕혜옹주와 장한이 나이가 든 모습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해 궁녀들을 만나기 바로 직전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정서적인 부분이 많이 다가온 장면이었죠."


오랜만에 규모가 큰 영화로 여름 극장가를 찾은 만큼 부담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박해일은 "흥행 부담은 매번 똑같다"며 "어느 시즌이든 배우 입장에서는 늘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영화가 담은 이야기가 잘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영화에 데뷔한지 어느 새 15년째에 접어들었지만 박해일은 여전히 한결같다. "달라진 부분이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제가 달라진 부분을 저 스스로 포착하는 게 쉽지 않아서요. 그저 계속 걸어 나아가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 '국가대표2' 오연서 "'1등을 하고 싶은 2등'에 공감이 갔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오연서(29)가 스크린에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 4년이라는 시간은 오연서에게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안방극장에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온 그는 2014년 '왔다! 장보리'로 그야말로 '포텐'을 터뜨렸다. 이후 '빛나거나 미치거나'와 '돌아와요 아저씨'를 거치며 주연급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했다. 그런 오연서가 스크린 복귀작으로 여자 배우들과 함께 한 '국가대표2'를 선택했다. 궁금하 않을 수 없는 선택이다.


'국가대표2'는 2003년 아오모리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이스하키를 해본 적 없는 선수들이 하나의 팀이 돼 국제 대회에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냈다. 오연서는 쇼트트랙 선수 출신인 채경 역을 맡았다.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칭' 에이스인 인물이다.


"일단 여자 영화라 좋았어요. 그리고 하나의 팀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 흥미로웠고요. 처음부터 채경 역으로 제안을 받았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매력을 더 느꼈어요. 채경이 1등을 하고 싶은 2등이라는 점, 그리고 콤플렉스도 있지만 점점 변해가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좋았어요. 자기 일을 사랑하는 모습도 여자로서 멋있었고요."



영화 속에서 채경은 '국민 밉상'으로 소개된다. 1등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쇼트트랙 금메달 유망주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생긴 별명이다. 하지만 오연서는 그런 '밉상' 같은 채경에게 더 공감이 갔다. "개인적으로는 짠했어요. 영화에서 잘 표현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채경은 사실 사랑을 받고 싶은 거거든요.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없는 채경이 불쌍했어요." 오연서는 "채경이 변해가는 모습에 관객도 애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준비하고 연기에 임했다.


오랜만에 접한 영화 촬영 현장은 드라마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덕분에 함께 출연한 배우 수애, 하재숙, 김예원, 진지희 등과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촬영을 하면서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항상 날이 서 있는 채경을 연기하며 느낀 자연스러운 외로움이었다.


"촬영장에서 늘 외로웠어요. 다들 함께 대화를 나눌 때도 채경은 먼발치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만 지금 왕따시키는 거냐'라고 이야기했죠(웃음). 물론 촬영하지 않을 때는 다들 워낙 '수다수다'스러웠요. 서로 놀리는 것도 좋아해서 언니들이 저보고 '쟤 봐라, 또 멋있는 척 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죠(웃음)."



이번 작품에서 오연서는 캐릭터 내면의 표현은 물론 외적인 모습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짧게 자른 머리, 그리고 목에 한 문신은 늘 혼자인 채경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매일 문신을 그려야 해서 힘들었어요. 너무 여성스럽게 보일 것 같아서 준비한 장치였죠. 문신을 언급하는 대사도 있었는데 아쉽게 편집이 됐죠."


채경이 영화 속에서 예쁘지 않게 보이는 것도 중요했다. "촬영 초반에 카메라 감독님이 '채경이 너무 예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모니터를 확인했더니 정말 안 예쁜 거 있죠? (웃음) 분장도 일부러 더 까맣게 하고 입술 색깔도 죽이면서 조금은 피폐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채경은 항상 날이 서 있어야 하니까요."



오연서가 채경에게 공감한 것은 그 역시도 한때 '1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는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포기할 건 포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사실 모든 것에 욕심을 내는 편이 아니라서요." 하지만 단 하나, 욕심을 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연기다. 연기에는 1등이 없다는 것,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연서가 지금 연기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걸그룹으로 데뷔한 오연서는 아역 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무명에 가까운 시간을 오래 보내왔다.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 전까지 남들처럼 흔들리고 힘든 시기를 보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오연서는 "다른 20대들처럼 그냥 일상을 보냈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모든 청춘들처럼 "흔들리고 좌절하고 또 다시 꿈꾸고"를 반복하는 시기였다는 것, 그래서 그때의 경험이 지금을 위한 좋은 약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연서는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해도 좋은 동료를 얻어 단단해진 채경처럼 말이다.



사진/이매진아시아

[인터뷰] '덕혜옹주' 손예진 "가련한 삶, 공감 담아 연기했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삶처럼 비극적인 게 어디 있을까. 고종의 외동딸인 덕혜옹주의 삶이 그렇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덕혜옹주는 시대의 강요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역사에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다.


'덕혜옹주'는 손예진(34)에게 남다른 영화다.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전에도 개봉이 다가오면 '영화가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보다 경건해지는 마음이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촬영을 마친 뒤 잊었다고 생각한 덕혜옹주의 마음이 개봉을 준비하면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만큼 덕혜옹주에 대한 애착이 컸다.


"덕혜옹주는 실존 인물이잖아요. 제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라 사명감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잘 표현해서 많은 분들이 덕혜옹주의 넋을 기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한번쯤 덕혜옹주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랄까요? 영화가 담고 있는 것도 엄청난 교훈이 아닌 우리 인생과 세월에 대한 이야기죠.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한 작품이었어요."



손예진은 '덕혜옹주' 속 덕혜를 "대단하지 않기에 애정과 연민이 더 가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수동적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라는 점에 많이 공감했다. 권비영 작가의 원작 소설을 통해 덕혜옹주의 삶을 알고는 있었다. 출연을 결심한 것은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였다. '외출' 이후 10년여 만의 재회다.


"감독님이 '덕혜옹주'를 영화화한다는 걸 기사로 접했어요. '무언가 안 어울리면서도 신선하다'는 느낌이었죠(웃음). 여배우로서는 한 여자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라 흥미로웠죠. 그런데 허진호 감독님이 '한 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운명 같은 작품이었어요. '외출'은 지금도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그때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도 감독님이 저를 많이 존중해주셨거든요. 그런 감독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영화는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과 함께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손예진의 말대로 영화 속 덕혜옹주는 이야기를 주도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사건에 휘말리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덕혜옹주의 아련하고 애잔한 모습이 가슴에 더욱 깊이 남는다. 관객과 공감하고자 하는 손예진의 연기, 그리고 인물의 감정을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낸 허진호 감독의 연출이 빚어낸 결과다.


"큰 감정의 덩어리들로 이뤄진 신들이 많았어요. 덕혜의 모든 인생에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죠. 큰 사건들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식이다 보니 관객들이 이를 너무 과장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의 연출 방식 때문에 그렇지 않게 담긴 것 같아요. 배우 입장에서는 클로즈업으로 길게 찍는 게 연기적으로는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죠. 하지만 감독님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슬픔이 보이는 방식으로 연출을 하세요. 그리고 편집을 통해 감정이 더 절제되기도 했고요. 물론 현장에서는 감정을 더 끌어올려 연기한 순간이 많았지만요(웃음)."



전작 '비밀은 없다'가 관객과의 공감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라면 '덕혜옹주'는 정반대로 관객과의 공감에 오롯이 마음을 쏟아부은 작품이다.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덕혜옹주의 귀국 장면에서는 실제 덕혜옹주가 느꼈을 감정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손예진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연기한 장면 중 하나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덕혜옹주가 귀국하는 장면을 보는데 너무 슬프더라고요. 동공에 초점이 없어보였어요. 보통 치매에 걸린 노인도 시선은 어딘가를 향하는데 덕혜옹주는 텅 빈 느낌이었죠. 그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슬픔도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을요. 촬영할 때는 현장이 정말 진짜 같은 분위기에 젖었어요. 같이 연기한 라미란 언니도 엄청 울었고요."



개봉을 앞두고 영화가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손예진은 "인생이나 인간, 그리고 역사는 단 하나의 시점만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영화는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자의 비극적인 일생을 담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영화를 보시면 역사 왜곡으로 보이지 않을 거예요. 덕혜옹주가 하지 않았던 독립운동 이야기를 그린 것도 아니고요. 최소한의 기본적인 진실성은 가져가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손예진이 바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영화에 공감해주는 것이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위대한 인물은 아니었어요. 다만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가련한 여인이었죠. 그래서 그녀의 감동과 아픔에 더 공감할 수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영화가 잘 됐으면 해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뛰어넘는 제 최고의 흥행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인터뷰] '인천상륙작전' 이정재 "마음 끌린 첩보물…팽팽한 긴장감 만들어냈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이정재(43)가 일제강점기에 이어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로 1년 만에 스크린을 다시 찾았다. 27일 개봉한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에서 이정재는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인천 지역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장학수 대위를 연기했다. 전작 '암살'에서 강렬한 악역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번 영화에서 참혹한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로 또 다른 변신을 선보였다.


이정재가 '인천상륙작전'을 선택한 것은 전쟁영화보다 첩보영화에 가까운 영화라는 점에서였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영웅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처음 받은 시나리오는 구성이 조금 매끄럽지 않았죠. 그럼에도 첩보영화라는 점에서 확 끌리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가자는 생각으로 출연하게 됐어요."



영화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더글라스 맥아더의 지시로 인천 지역에서 진행된 '엑스레이(X-Ray)' 작전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영화가 첩보물의 성격을 갖게 된 이유다. 인민군으로 위장해 인천 지역에 잠입한 장학수와 부대원들이 인천 앞 바다에 설치된 기뢰 해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로 다뤄진다.


장학수를 연기하면서 이정재가 가장 신경 쓴 점은 바로 첩보물다운 '긴장감'이었다. "첩보 장르는 팽팽한 긴장감이 아주 중요하죠. 그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이를 위해 이정재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과 감정의 온도를 평소보다 더 높은 상태로 끌어올리는데 힘을 기울였다. "서로 대사나 행동을 할 때 더 적극적으로 했어요. 그러면 서로의 말과 행동에 의해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거든요. 그러면서도 적당한 수위를 지키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죠."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만큼 영화는 명확한 선악 구도로 인물들의 갈등을 그려나간다. 인천 지역을 장악한 인민군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이 이념만을 내세워 인간성을 무시하는 '악(惡)' 그 자체로 그려지는 것이 그렇다.


다소 밋밋해질 수 있는 이야기 구조에 입체감을 더하는 것은 바로 장학수의 캐릭터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이념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부모를 바라보며 변화를 겪은 인물이다. 영화는 장학수를 통해 이념보다 중요한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설정이었어요.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조선의 반상제도는 없어졌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젊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접한다면 굉장히 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공산주의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전향하는 인물이 장학수라고 이해했어요."



'인천상륙작전'은 이정재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의 작품이다.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과 함께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물론 같이 연기한 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리암 니슨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이 됐다.


"한국 배우와 할리우드 배우가 다른 점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똑같더라고요. 다만 그 열정이 얼마나 있느냐가 다를 뿐이죠. 그런 면에서 리암 니슨은 대단한 배우였어요. 촬영 초반 리암 니슨이 연기한 걸 봤는데 장학수가 연기적으로 밀릴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미 찍은 장면도 다시 찍자고 이야기해서 리암 니슨이 연기한 정도로 감정의 강도를 높였어요. 좋은 경험이었죠."


분명한 것은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이정재도 리암 니슨 못지않다는 사실이다. '인천상륙작전'을 마친 그는 현재 영화 '신과 함께'를 촬영하며 변함없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최근에는 절친한 배우 정우성과 함께 기획사 아티스트 컴퍼니를 설립해 화제를 모았다. 배우로서 또 한 번의 흥미로운 행보다.


"회사를 만들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희가 돈을 버는 사람은 아니잖아요(웃음).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면 이 사업은 망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의 지향점은 다른 것에 두기로 했어요. 저희의 노하우가 필요한 신인과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죠. 지금은 회사를 더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대신 저희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일을 하고 싶어요."


[인터뷰] 느리지만 여유롭게, '부산행'의 정유미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사람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속도가 있다. 삶도 일도 빠르게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느려도 여유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도 있다. 배우 정유미(33)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 연기를 시작한지 어느 새 10년이 넘은 그가 "이제 진짜 막 데뷔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정유미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20일 개봉한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의 작업을 통해서다. 특별출연한 '히말라야' 이후 약 1년 반만의 작품이다. 정유미는 남편 상화(마동석)와 함께 부산행 KTX 열차에 탔다 좀비의 위협을 받게 되는 임신부 성경을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재미를 느낀 정유미는 연상호 감독과의 첫 만남에 출연을 결심했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의 재미만으로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아요. 감독님이 궁금해서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감독님이 만든 영화 안에 있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날 회사에 '이 작품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웃음)."


영화는 열차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다. 재난영화인 만큼 인물이 지닌 감정보다 재난 상황 속 긴박한 행동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임신부라는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지만 정유미는 최대한 다른 생각 없이 시나리오대로 연기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성경에 대한 것은 시나리오에 이미 많이 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은 저 스스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게 오히려 연기에 더 방해가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시나리오대로, 그리고 현장에서 주어진 대로 집중해서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배우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도 중요했다. 특히 마동석과 연기할 때는 마동석 특유의 애드리브 연기가 많은 도움이 됐다. "선배님이 애드리브를 안 해줬으면 저도 그런 (자연스러운) 연기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사실 선배님과 호흡을 맞춘 장면이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영화를 보고 잘 어울린다고 봐주시니까 신기하고 좋아요(웃음)."



정유미가 '부산행'을 설렘 속에서 기다렸던 이유가 또 있다. 극중 또 다른 주인공인 석우(공유)의 딸로 출연하는 아역 배우 김수안 때문이다. "원래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우리도 좋아하는 배우가 있거든요. '저 사람처럼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배우요. 수안이가 그런 배우였어요. 출연한 영화도 다 찾아봤거든요. 그래서 수안이가 출연한다는 이야기에 많이 설렜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정유미는 '부산행'의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원했다"고 표현했다. 연기의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업 자체에서 아쉬움이나 미련이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정유미는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고 생각하게 됐다. '부산행'을 마친 그가 "이제 진짜 막 시작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우리 영화는 내적으로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에요. 하지만 작업 자체는 굉장히 시원했어요. 배우로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하게 했고요. 이전에도 물론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때는 엄마, 아빠를 구분할 줄 모르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엄마, 아빠를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랄까요? (웃음)"



그 변화는 현장에서 느껴지는 여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제작보고회나 언론시사회 같은 현장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여줬던 정유미는 이번 '부산행' 현장에서는 한층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연기를 말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렇게 말로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걸 알기에 더 편해진 것 같아요." 그렇게 정유미는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요즘은 배우라는 직업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힘들 때도 배우이기에 그 힘든 것을 제 안에 있는 창고에 하나씩 쌓을 수 있거든요. 하나의 무기가 되는 거죠. 그렇게 쌓인 감정들을 언젠가 다시 꺼내 쓸 수 있으면 좋겠고요. 그렇게 감정을 쓸 수 있는 직업을 가져 다행인 것 같아요."


[인터뷰] '사냥' 조진웅 "힘들고 괴로워 도망가고 싶지만…현장 가면 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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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어떻게 평생 하겠어요. 매 작품마다 괴로울 때가 많거든요. 내일 어떤 신을 찍어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잠도 안 오고 죽을 것 같죠. 현장 가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게 정말 무섭고 힘들어요."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가 할 법한 말을 조진웅(40)이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 실력을 갈고 닦은 뒤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수많은 작품을 거치며 지금의 빛나는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런 조진웅마저도 연기가 어렵다는 것이 조금은 낯설다.


하지만 그는 "세상 어느 직업 가운데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냐"며 웃었다. "사람들은 아로마 향으로 정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스트레스를 재생산시켜야 해요. 그게 쉽지가 않죠. 어떤 때는 멀쩡한 사람도 죽이고 해야 하니 조울증도 오죠. 하지만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요? (웃음)" 연기에 대한 솔직하면서도 거침없는 태도, 그것이 배우 조진웅의 미덕이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사냥'(감독 이우철)은 드라마 '시그널'에 앞서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조진웅은 극중 산에 묻힌 금을 찾기 위해 엽사 무리를 이끌고 들어온 동근, 그리고 동근에게 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쌍둥이 명근으로 1인 2역 연기를 펼쳤다. '명량'으로 인연을 맺은 김한민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영화로 선배 배우 안성기가 출연한다는 점에서 선뜻 참여를 결심했다.


조진웅은 '사냥'을 "추격과 액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드라마가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극중 동근과 엽사 무리가 저지르는 사건을 목격한 사냥꾼 기성(안성기)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조진웅이 시나리오에서 끌렸던 점도 바로 영화가 지닌 이 강렬한 드라마였다.


그러나 가을에서 겨울까지 실제 산에서 진행된 촬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많은 계산을 하고 현장에 갔지만 그때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체성을 잃을 때가 많았다. "사실 시나리오에는 깊은 철학 같은 건 담겨있지 않았어요. 그만큼 이야기가 명확했죠. 그러나 막상 산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니 굉장히 많은 것들을 디테일하게 표현해야 하더라고요. 가끔은 '이 산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혼란을 느낄 때도 있었죠." 더 이상 촬영을 진행하기 힘들 때는 직접 총대를 메기도 했다. "다들 한 컷이라도 어떻게든 찍으려고 하죠. 하지만 대안이 없으니까요. 그럴 때는 제가 나서서 '내려가자'고 하죠. 그렇데 다음날 다시 '으쌰으쌰' 해서 하면 더 나아지니까요."



조진웅이 동근을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 쓴 점은 바로 동근의 행동이 갖는 당위성이었다. 사실 영화에서는 동근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금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기성을 쫓는지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배우로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동근을 악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정체불명의 엽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평범한 공무원이죠. 산이라는 공간에서 맹목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로 변하지만 그것 이상의 당위성을 주려고 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떠올랐죠. 스트레스가 일상이 된 인물이라고 이해했거든요. 그걸 조금 더 명확하게 짚어서 보여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기대를 가졌던 1인 2역 연기도 아쉬움이 남았다. "동근과 명근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꽤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는 동근과 달리 명근이 조금 더 풀어지는 캐릭터로 보였으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시나리오에서도 명근이 등장하는 분량이 많지 않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만요."



고된 촬영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조진웅은 현장에서 힘든 기색을 좀처럼 드러낼 수가 없었다. 옆에서 선배인 안성기가 자신만큼 힘든 장면을 아무 말 없이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력으로는 감당이 안 될 부분도 선배님은 의지를 갖고 가져가시는 것 같았어요. 내가 저 나이까지 연기를 한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죠.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웃음)." 최근 화제 속에서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 연기한 이재한에 대해서도 조진웅은 "괴로운 감정이라 연기하는 게 재미는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토록 힘든 연기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현장이 지닌 힘 때문이다.


"내일 찍어야 하는 신 때문에 힘들다가도 현장에 가면 기분이 달라져요.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 모두 우리 편이거든요. 그들도 한 컷을 만들기 위해 새벽 잠도 안 자고 이렇게 와서 함께 힘을 뭉치는 거니까요. 그래서 늘 현장에 가고 싶어요. 지금은 드라마 '안투라지 코리아'를 찍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캐릭터라 재미있어요. 막 잡아 올린 고등어 같은 캐릭터죠. 지금도 빨리 현장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에요(웃음)."


[인터뷰] '사냥' 한예리 "대중과 소통? 이것저것 다 해보자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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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리(31)에게 2016년은 아마도 매우 특별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그는 지난해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시작으로 보다 전방위적으로 활동을 펼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꿀노잼(재미는 없지만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는 뜻)'이라는 반응을 얻으며 자신의 매력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독립영화계 스타로 주목 받을 때부터 한예리를 지켜봐온 입장에서는 최근의 행보가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인터뷰로 만나면서도 한예리는 연기와 무용에만 집중하며 묵묵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예리에게 이런 변화는 갑작스럽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올해는 이것저것 다 해보자"


"올해 초에 '이것저것 고민하지 말고 다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더 늦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무언가를 해서 잘 되든 잘 안 되든 나에게는 큰 지장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를 잃어버리는 일도 다치는 일도 없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조금 더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이 생겨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물론 내년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요(웃음)."



그런 한예리가 약 7개월 만에 스크린에 다시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사냥'(감독 이우철)은 한예리의 '배우로서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냥'에서 한예리는 막장 붕괴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소녀 양순을 연기했다. 또래보다 지능 발달 속도가 느려 '팔푼이'라고 놀림을 받지만 운동 신경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아이다.


영화는 금을 찾기 위해 산에 온 엽사들이 저지르는 어떤 사건과 이를 목격한 양순, 그리고 양순을 지키려는 사냥꾼 기성(안성기)의 숨 막히는 추격전을 그린다. 한예리는 안성기를 '사냥'의 출연 이유로 주저 없이 꼽았다.


"안성기 선배님과 손을 잡고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에 출연할 이유가 충분했어요(웃음). 시나리오도 읽기 전에 안성기 선배님 때문에 출연을 결심할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조금 고민하기는 했을 거예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관객들도 영화를 보면서 '쭉 달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해무'에서는 바다 위에서 갖은 고생을 했던 한예리는 이번 '사냥'에서는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산 속을 뛰어다니며 또 한 번 고생을 했다. 여배우로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촬영이었지만 한예리는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극중 엽사 무리의 리더 동근으로 출연한 조진웅이 "배우들이 힘들게 찍을수록 관객은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고 한 말에 한예리도 적극 동의했다.


"안 힘든 영화는 없는 것 같아요. 몸이 안 힘들면 마음이 힘들고, 마음이 안 힘들면 머리가 복잡하니까요. 더 힘들어지기 전에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팔푼이'로 소개되는 양순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배우로서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한예리의 생각은 "건강하고 밝은 기운으로 기성을 맑게 해주는 인물로 양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양순이 불편한 인물로 보이는 건 원치 않았어요. 그러면 인물들 사이에서 톤이 튈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너무 디테일하게 인물을 설정하면 그 인물에 너무 쑥 들어갈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최대한 단순하게 캐릭터를 설정해 연기했어요."


그 말처럼 영화 속에서 양순은 욕망에 뒤얽힌 엽사들과 과거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기성 사이에서 순수함을 대변하는 인물로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한예리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한다.



'사냥'을 시작으로 한예리는 하반기에는 다시 영화와 드라마로 대중과 만날 예정이다. 김종관 감독과 함께 한 '최악의 하루'는 오는 8월로 개봉을 예정하고 있으며 촬영을 마친 장률 감독의 신작 '춘몽'도 올해 중 개봉을 목표로 후반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달에는 5명의 여대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JTBC 새 드라마 '청춘시대'로 안방을 찾는다. 한예리는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특별한 작품"이라고 '청춘시대'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나타냈다.


올해 유독 바쁜 활동을 하느라 오랜 전공인 무용은 잠시 손을 놓고 있다. 그러나 올해가 가기 전에라도 기회가 있다면 무대에 오를 생각도 있다. 오래 전 인터뷰에서 한예리는 "차곡차곡 쌓아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한예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배우로서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안성기 선배님을 보면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나는 얼마나 초심을 잘 지켜가며 배우를 할 수 있을지, 얼마만큼 인내하면서 할 수 있을지 생각했고요. 기다리고 견디고 참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잖아요. 선배님은 그걸 정말 훌륭하게 잘 해내신 분이고요. 그런 선배님을 보면서 저도 스스로 얼마나 갈고 닦고 인내하느냐에 따라 어떤 배우로 성장할지가 정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인터뷰] '비밀은 없다' 이경미 감독 "새로운 시도 속 대중과 소통 바라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는 개인적으로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아직 1년의 절반 가량이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딸을 잃어버린 국회의원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정치 스릴러로 소개됐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 속에는 예상하지 못한 요소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상업영화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독특한 시도들이 영화 곳곳에 녹아든 점 독특한 작품이었다.


물론 이 영화에 모두가 찬사를 보낸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영화의 '톤과 매너'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영화의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극 중반을 기점으로 이야기의 방향과 분위기도 전혀 달라지는 영화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으나 정작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엄마, 그리고 따돌림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시련을 이겨내고자 하는 소녀들의 이야기. '비밀은 없다'를 좋게 본 것은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주제를 풀어나가는 연출력 때문이었다.



'비밀은 없다'는 2008년 첫 장편영화 '미쓰 홍당무'를 연출한 이경미(44) 감독이 오랜 창작의 고뇌를 견뎌내며 완성한 작품이다. '미쓰 홍당무'를 마친 뒤 쓰기 시작한 '여교사'라는 작품이 모티브가 됐다.


"'여교사'는 노인 사이코패스와 여자 정치인 부인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스릴러였어요. 원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데다 그 당시에 미야베 미유키 같은 일본 추리 소설을 좋아했거든요. 긴장감을 주는 테크닉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미쓰 홍당무'에 이은 다음 작품으로 스릴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시나리오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장편 데뷔 이후 갖게 된 강박 때문이었다. "대중적으로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영화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시나리오가 안 나오더라고요. 대중성을 생각하다 보니 자기 검열이 심해져서 점점 더 힘들어졌어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순간 '미쓰 홍당무'을 제작했던 박찬욱 감독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여교사' 시나리오의 일부를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노인 사이코패스 대신 정치인 부인과 그 딸의 이야기를 그린 '불량소녀'라는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는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제목을 거쳐 지금의 '비밀은 없다'로 마침내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비밀은 없다'가 다루는 중요한 테마는 바로 모성이다. 실종된 딸을 찾는 엄마의 이야기인 만큼 모성이라는 주제가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영화 속 모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하늘 같은 어머니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극중에서 국회의원 후보 종찬(김주혁)의 아내 연홍(손예진)은 영화 내내 광기와 슬픔,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연홍은 딸의 실종 이후 자신이 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그 복잡한 마음이 다양한 감정으로 표출되며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엄마가 아이를 잃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성은 끝까지 생각을 놓지 않은 부분이었죠. 모성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저는 아이를 낳아본 적 없지만 주변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을 보면 모성애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학습되는 것도 있다고 보거든요. '엄마는 헌신적이어야 한다'고 교육되는 것이 엄마를 더 가둔다고 생각해요. 모성애가 상대적으로 없는 것처럼 평가될 때는 죄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요. 사람마다 표현 방식이 다른 건데 그걸 다양하게 해석해주지 않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모성애죠."


영화를 보고 나면 세 명의 여자 캐릭터가 오롯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연홍과 연홍의 딸 민진, 그리고 민진(신지훈)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미옥(김소희)이 그들이다.


연홍은 이경미 감독이 만든 캐릭터가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만나 생명력을 갖게 된 케이스다. "연홍은 손예진과 함께 함으로써 완성된 캐릭터에요. 촬영 초반에 예진 씨가 보여주는 대사의 톤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느낌을 살려보자고 싶었어요. 예진 씨가 묘한 경계를 타면서 신비로운 매력으로 연홍을 잘 소화한 것 같아요."


연홍의 딸 민진과 민진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미옥은 처음부터 신인 배우를 캐스팅할 생각이었다. SBS 'K팝스타'를 통해 눈여겨 본 신지훈을 민진 역으로 캐스팅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경미 감독은 "천사 같은 여자 아이의 노래가 영화 전반을 아우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신지훈이 딱이었다"며 "직접 OST도 부르고 연기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소희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비밀은 없다'로 처음 데뷔했다. 이경미 감독은 "오디션 때 예쁘장한 아이가 무심하게 말을 내뱉으며 행동하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설명했다.



'비밀은 없다'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다. 두 소녀를 연결시켜주는 조안 페이의 노래 '와일드 로즈 힐(Wild Rose Hill)', 그리고 두 소녀가 만든 밴드 '지니와 오기'의 노래들이 영화를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든다.


이경미 감독은 "이들 소녀가 자신들의 비밀을 어떻게 견뎠을지 생각하다 보니 그것을 어떻게든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영화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노래는 인디 밴드 무키무키만만수 출신인 정무키가 장영규 음악감독과 함께 만들고 신지훈과 같이 불렀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우연히 무키무키만만수의 공연 영상을 봤어요. 그래서 무키무키만만수를 벤치마킹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스태프들에게 이야기했죠. 그때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짓던 걸 잊을 수가 없어요(웃음). 무키 씨를 만나서는 이것도 인연인가 싶었어요. 무키 씨가 한예종 출신인 거예요(이경미 감독은 한국종합예술학교를 나왔다). 게다가 '미쓰 홍당무'를 정말 좋아한다고 하고 장영규 음악감독과도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고 해서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죠."



'미쓰 홍당무'에서 이경미 감독은 평범함과 거리가 먼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특별함을 평범함으로 감싸 안았다. 안면 홍조증을 겪는 엉뚱한 여교사도, 왕따를 당하고 있는 학생도 사회에서 그들을 '다르다'고 규정했을 뿐 알고보면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음을 보여줬다.


'비밀은 없다'도 세상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경미 감독만의 색깔이 잘 담겨 있다. 이경미 감독은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어떤 기준에 따라 다양한 것들이 인정되지 않는 걸 답답하게 느끼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영화가 기존의 관습을 깨는 전복적인 쾌감을 지니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저는 제가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걸 싫어해요. 예상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무의미한 대사도 싫어하고요. 오랜 시간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폭발한 건지는 몰라도 이번 '비밀은 없다'는 어떻게는 내가 재미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모든 위험한 요소를 다 모아놓은 영화죠. 사회적인 통념을 거스르는 것들을 다 넣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경미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신만의 재미만을 위해서는 절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런 것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지가 나의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비밀은 없다'를 만들면서도 이경미 감독은 스토리가 이해 안 되거나 의도가 전달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주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이제 막 두 번째 작품을 완성한 이경미 감독은 지금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그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 끝에 그 접접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이경미 감독의 작업을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인터뷰] '봉이 김선달' 유승호 "젊고 섹시한 사기꾼에 마음이 빼앗겼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영화 '봉이 김선달'(감독 박대민)의 주인공 김인홍(김선달의 본명)은 타고난 사기꾼이다. 온갖 분장으로 능청스럽게 사람들을 속이고 다니는 그는 기생들에 둘러싸여 풍류도 즐길 줄 아는 사내다. 이 장난기 가득한 김인홍을 유승호(22)가 연기한다. 아역 시절부터 쌓아온 반듯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사뭇 놀라운 변신이다.


유승호가 '봉이 김선달'을 선택한 것은 바로 이 독특한 캐릭터였다.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김선달에 호기심이 생겼다. 전역 후 첫 작품이었던 '조선마술사'에 이어 또 다시 사극을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러나 장르도 성격도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저함 없이 출연을 결심했다.



'봉이 김선달'은 한국 설화 속에서 흔치 않은 사기꾼 캐릭터인 김선달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청나라 노예로 끌려갔던 김선달이 위장 전문인 보원(고창석)을 만나 조선으로 다시 돌아와 벌이는 갖가지 사기극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유승호는 이번 작품으로 난생 처음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코미디였어요. 감독님 말씀처럼 조금 더 노력해서 젊고 섹시한 사기꾼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죠."


실제로 영화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유승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초반 궁궐 안에서 내시와 왕 분장을 하며 벌이는 사기극은 능청스러운 매력이 빛을 발한다. 사기극을 위해 김선달이 여장까지 감행하는 장면도 파격적이다. "여장을 내심 해보고 싶었어요. 막상 해보니까 정말 충격적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예쁘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장은 이번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웃음)."



성격과 정반대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배우로서 큰 도전이었다. 나름대로 밝고 명랑하게 연기를 해도 박대민 감독으로부터 "조금만 더 하면 '김선달스러울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가 많았다. 코믹한 모습을 위해 망가져야 하는 선을 넘어서기 위해 유승호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촬영 후반에 들어서야 여유가 생기면서 마침내 코믹 연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무겁고 우울한 작품을 많이 했잖아요. 그런 걸 연기하는 건 솔직히 많이 힘들어요. 마음도 아프고요. 그런데 코미디는 마냥 즐거워요. 현장 분위기도 좋을 수밖에 없고요. 그런 게 코미디의 매력인가 봐요. 다음에 또 코미디를 한다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승호는 김선달에게 가장 부러운 것으로 '자신감'을 꼽았다. 그가 김선달과 정반대라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 자신감이었다. 아역 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인 길을 걸어온 유승호가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고 말하는 게 조금은 낯설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자신감이 많이 없어져요. 사람들에게 많이 데이기도 했고요. 작품 선택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래요. 사실은 기자 분들을 만나는 것도 솔직히 무섭거든요(웃음).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가끔 가슴 아프지만 맞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인터뷰로 만난 유승호는 예상과 달리 부끄러움도 많은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배우라는 길이 자신에게 맞는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청춘이었다. 그럼에도 유승호가 계속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작품' 때문이다. "작품을 받으면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이번에는 잘 될 것 같다는 마음이 생기면 또 다시 작품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유승호는 배우라면 누구나 지나치게 되는 성장통의 과정을 겪고 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연기의 갈증을 깊이 느낀 유승호는 전역과 동시에 쉬지 않고 달렸다. '조선마술사'와 '봉이 김선달'를 촬영하고 드라마 '상상고양이'와 '리멤버-아들의 전쟁'에 출연했다. 바쁘게 달린 만큼 당분간은 영화 홍보를 하며 여유를 갖고 작품을 고를 생각이다. 고민도 생각도 많지만 그럼에도 유승호가 연기를 포기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여전히 하고 싶은 역할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지질하게 구석에서 쓰러져 죽어가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한없이 가볍거나 촐싹거리는 인물, 또는 입으로만 싸울 줄 아는 정말 약한 캐릭터도 좋고요. 멜로요? 멜로는 자신이 없어요. 절절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공감이 안 가더라고요. 아! 얼마 전에 본 '주토피아'에서 주디와 닉의 멜로는 공감이 가던데요? (웃음)."


[인터뷰] '굿바이 싱글' 마동석 "진정성 있게 캐릭터를 깊이 파야해요"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마동석(45)은 미리 준비했다는 듯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이 털어놨다. 영화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고, 맡은 역할의 무엇이 마음에 들었으며,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쉼 없이 말했다. "이미 몇 가지 질문을 한 번에 답했죠?" 기분 좋은 웃음에서 ' 사람 좋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강해 보이는 외모와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모습, 그것이 사람들이 마동석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마동석에게서 '거친 남자'를 떠올린다. '이웃사람' '군도: 민란의 시대' '함정' 등 그의 대표작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여름 흥행한 '베테랑'에서 '아트박스 사장'으로 깜짝 등장한 그가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남긴 것도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다. 티셔츠가 찢어질 것 같은 근육질 몸매에 강렬한 인상은 마동석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오는 29일 개봉하는 '굿바이 싱글'에서 마동석은 근육질의 남자가 아닌 세련된 스타일리스트로 새로운 변신을 보여준다. 트러블 메이커인 톱스타 고주연(김혜수)의 임신 스캔들을 그린 영화로 마동석은 고주연의 스타일리스트이자 하나뿐인 '불X 친구' 평구를 연기했다.


배우라면 누구나 바라는 이미지 변신이다. 하지만 마동석은 "평구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 놀라지 않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사실 그의 이미지 변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게이 커플로 깜짝 출연한 '댄싱퀸', 그리고 우크라이나 여인과 사랑에 빠진 순수한 노총각으로 등장한 '결혼전야'가 앞서 있었다. 마동석 또한 "내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작품을 선택할 때 특별한 '전략'은 없다"며 "마음에 와 닿는 역할이라면 그것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한다"고 말할 뿐이다.


마동석이 '굿바이 싱글'을 선택한 것도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평구는 부드러운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지키려고 하는 인물이라 매력적이었어요. 무거운 소재임에도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내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도 좋았고요."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처음인 만큼 준비할 것도 많았다. 주변에 있는 진짜 스타일리스트들을 관찰하며 연기에 참고했다. 영화 속에서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는 것도 마치 특수 분장 같은 새로운 경험이 됐다.



영화에서 평구는 일종의 보호자 역할로 묘사된다. 고주연은 물론 아내 상미(서현진)와 아이들, 그리고 고주연과 함께 살게 되는 10대 소녀 단지(김현수)까지 평구는 이들을 알게 모르게 챙긴다. 그런 평구의 속깊은 마음이 영화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마동석이 고민한 것은 평구를 가장 '평구스럽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요즘은 가짜로 하면 들통이 나요. 진정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기 위해 캐릭터를 깊이 파야할 필요가 있어요. 그 답은 시나리오에 있으니까요. 평구에게 '마동석스러움'이 묻어나지 않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마동석이 고주연에게 갖는 마음과 평구가 고주연에게 갖는 마음은 다른 거니까요. 그렇게 연기는 하나 하나 고민을 하면서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속 고주연은 배우로서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지만 정작 혼자 있을 때는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마동석도 같은 배우로서 비슷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배우는 배역에 대해 고민할 때는 혼자 싸워서 그 답을 찾아내야 해요. 그럴 때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죠."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마동석은 외로울 틈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굿바이 싱글'의 개봉을 앞둔 그는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OCN 드라마 '38사기동대'로 안방에서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7월에는 '부산행'의 개봉도 기다리고 있다. 마동석은 "3~4년에 한 편씩 마스터피스를 찍겠다는 배우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냥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작가들과 함께 시나리오 기획 작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함정'이 바로 그 첫 작품이었다. 마동석은 "예전부터 시나리오 만드는 회사를 하고 싶었다"며 "같이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만들다 보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작품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게 되고 감독의 의도도 파악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품마다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작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처음 영화를 할 때는 갈증을 느끼며 벼랑 끝에 서있는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여전히 갈증과 결핍으로 작품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선배가 된 만큼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도 있죠. 하지만 마음은 늘 똑같아요. 좋은 작품을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 더 고민하며 진짜 같이 연기하는 것이죠."


[인터뷰] '비밀은 없다' 손예진 "광기와 슬픔…저도 제 모습이 낯설더라고요"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23일 개봉하는 영화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는 손예진(34)의 옆모습로 시작한다. 넋을 놓은 듯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손예진의 모습이 슬며시 부는 바람과 함께 처연한 기분을 자아낸다. 영화 중반에 다시 등장하는 이 장면은 '비밀은 없다'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차가운 광기와 슬픔다.


'비밀은 없다'는 국회의원 선거를 15일 앞두고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유력 후보의 아내 연홍(손예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스릴러로 소개되고 있지만 영화는 한 가지 장르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 '미쓰 홍당무'의 독특한 감성이 스릴러와 함께 섞여 영화를 더욱 독특하게 만든다. 그래서 손예진도 "우리 영화는 제목과 달리 비밀이 많다"고 소개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손예진은 "묘하고 독특한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실종된 아이를 둔 부모'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점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딸에 대한 사랑과 남편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속에서 오는 충돌과 배신감 등을 전형적이지 않게 그려낸 영화였죠."


무엇보다도 손예진은 연홍의 캐릭터에 매료됐다. 생경한 느낌의 캐릭터라는 점에서 배우로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스스로도 연홍을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했다. 그런 기대와 궁금증을 가득 안고 '비밀은 없다'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의 독특함은 전형성에서 벗어난 감정 표현에서 나온다. 실종된 딸을 찾겠다는 연홍의 마음은 간절함을 넘어 집착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연홍 주변의 사람들은 '선거 승리'를 내세우며 연홍의 마음을 외면한다. 남편 종찬(김주혁)마저도 딸의 실종을 외면하자 연홍의 집착은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극도의 광기로 폭발한다. 슬픔과 분노가 섞인 광기다.


"연홍이 슬픔을 느끼거나 분노할 때 그 표현 과정이 일반적이지 않잖아요. 현장에서도 제가 미리 그런 감정들을 생각하고 가면 감독님이 그걸 다 바꾸셨어요. 전형적인 연기를 하려고 하면 '연홍은 그런 모습이 아니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그런 충돌이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웠어요. 이제까지와는 다른 톤의 연기를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비밀은 없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연홍과 종찬이 서로 다투는 신이다. 극한의 감정에 치달은 나머지 연홍은 종찬에게 침까지 뱉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최대한 절제된 분위기로 담아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면 마치 차가운 광기를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든다. 손예진도 "더 미쳐 날뛰어야 할 것 같을 때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이 우리 영화의 특별함"이라고 설명한다.


"순간 집중해서 촬영을 한 뒤 모니터로 찍은 장면을 확인하면 저의 낯선 모습을 볼 때가 많았어요. 낯선 표정과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죠. 거의 모든 장면이 그랬던 것 같아요. 심지어 연홍이 멀쩡하게 나올 때도 말이죠(웃음)."


손예진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 욕구는 항상 있다"고 말한다. "한 번 해본 이야기보다는 새로운 이야기, 그리고 새롭게 보일 수 있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물론 어차피 제가 하는 것이기에 비슷한 모습이 투영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비슷한 걸 답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확실히 있어요. 다양한 장르에서 해보지 않은 모습에 재미를 느끼니까요." 도전을 향한 손예진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비밀은 없다'다.



올 여름 손예진은 누구보다 바쁘다. 올해 초 촬영을 마친 영화 '덕혜옹주'가 공교롭게도 오는 8월 개봉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하나에 집중하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두 영화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웃은 손예진은 "두 영화가 다른 장르, 캐릭터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손예진의 팬이라면 그녀를 다시 한 번 멜로에서 보고 싶기도 하다. 손예진도 멜로에 대한 마음이 없지 않다. "다양한 장르를 했으니 지금 다시 멜로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같은 장르만 답습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겠죠. 조금 더 현실적인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20대에 할 수 있는 멜로가 있고 30대에 할 수 있는 멜로가 있으니까요."


[인터뷰] '굿바이 싱글' 김혜수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 1㎜라도 성장해야죠"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운다니까 저를 '째려보는' 분도 있어요." 결혼도 하지 않고 임신 소식부터 먼저 밝혀 화제가 된 톱스타 고주연은 뉴스에 출연해 긴장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한다. 비밀을 숨기기 위해 어색하게 말하는 모습이 묘하게 웃긴다. 영화 '굿바이 싱글'(감독 김태곤)에 등장하는 이 장면이 유독 더 재미있게 다가오는 이유가 또 있다. 교양 프로그램 진행 등으로 지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배우 김혜수(45)가 바로 고주연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굿바이 싱글'은 톱스타지만 안하무인 성격으로 늘 사고를 치는 배우 고주연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편이 돼줄 한 사람인 아이를 갖기 위해 벌이는 소동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최근 영화 '차이나타운'과 드라마 '시그널'로 카리스마와 강렬함이 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김혜수가 고주연 역을 맡아 오랜만에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 3년 전 시나리오를 받은 김혜수는 "진심이 반짝반짝하는 순간이 느껴지는 이야기"에 끌려 일찌감치 출연을 결정했다.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유사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싱글 생활을 오래하면서 영화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혈육도 물론 소중하지만 지금 나와 긴밀하게 내면을 공유하요 서로 위안을 주고 받으며 격려해주는 이들이 '내 편'이자 '내 가족'이라고 느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할 때 시나리오를 읽어서 더 소중하게 와 닿았어요."



'톱스타의 임신 스캔들'로 소개되고 있지만 영화는 사실 이보다 더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10대 미혼모 문제, 그리고 유사 가족이라는 주제가 그렇다. 영화는 스타로서 화려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깊은 외로움과 결핍이 있는 고주연이 자신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10대 소녀 단지(김현수)를 만나면서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내 편'이 돼주는 이는 누구나 다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주연은 극중 연기 경력 20년차 배우로 등장한다. 올해로 연기 인생 30년차를 맞이한 김혜수와 닮은 듯 보인다. 관객 입장에서는 고주연을 통해 일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김혜수의 모습이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김혜수와 고주연은 철저하게 다른 인물이다. 김혜수 또한 고주연을 또 다른 캐릭터로 생각하며 접근했다.


"고주연을 배우로 설정하게 된 건 우리 영화가 선택한 장르에 가장 최적화된 캐릭터였기 때문이에요. 화려하지만 외롭고, 나이에 맞지 않게 철들지 않고 배려 없는 모습이 익숙한 직업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선택이었죠. 그런 고주연과 정반대 위치에 있는 단지는 철들지 않아야 할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철이 들어야 하는 인물이고요. 그런 두 인물이 서로 함께 하면서 결핍을 해소하는 이야기죠.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이야기에요. 하지만 우리는 전형성을 선택하는 대신 관객이 이 진심을 얼마나 진실하게 대면할 수 있게 만들지를 끝까지 고민하고 골몰했어요."



김혜수는 스스로 "애드리브 연기를 잘 못하는 배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굿바이 싱글'에서는 유독 애드리브 연기를 많이 했다. 고주연이 뉴스에 나와서 하는 엉뚱한 말들도 김혜수의 애드리브였다. "그만큼 캐릭터가 구축이 잘 돼 있어서 (애드리브 연기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고주연은 정말 그렇게 말할 것 같았거든요. 애드리브 연기가 자연스럽게 돼서 스스로도 어찌나 기특했는지 몰라요(웃음)."


김혜수는 '굿바이 싱글'에 대해 "소중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특히 영화 후반부 장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여전히 작품에 빠져 있는 듯 열변을 쏟아내기도 했다. 고주연이 미술대회에 나간 단지를 만나러 가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촬영하기 전날 한잠도 못 잤어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정말 '라이브하게' 촬영을 이어갔고요. 50테이크나 넘게 촬영했으니까요. 그때는 진짜 고주연의 입장이 됐던 것 같아요. '꿈을 선택하기 위해 아이를 포기하는 세상'이라는 게 가슴 아프더라고요." 인터뷰마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걸 좋아하는 김혜수지만 이토록 작품에 몰입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김혜수는 "영화가 담은 이야기 자체에 실제 김혜수로서 동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김혜수가 '굿바이 싱글'을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굿바이 싱글'로 코믹한 모습을 보여준 김혜수는 올 하반기에 느와르 영화 '소중한 여인'으로 다시 또 한 번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홍콩 느와르 세대로 느와르 장르에 갖고 있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렇게 김혜수는 새로운 모습을 찾아 배우의 여정을 쉼 없이 나아가고 있다. 김혜수가 '굿바이 싱글'의 고주연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배우로서 매 순간 성장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는 것이다.


"저도 외롭고 두려웠던 적이 있었어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도 김혜수 밖에 안 보인다'는 말을 10년 넘게 들었는 걸요. 좌절한 나머지 '이 길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보낸 시간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가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더라고요. 아무리 빛이 나던 쭈그러져 있던 모든 건 '현재진행형'이에요. 1㎜라도 성장해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요. 그게 겉으로 보여야 하는 게 배우의 일이잖아요. 아마도 이건 다른 배우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인터뷰] '특별수사' 김상호 "애잔하고 뭉클한 아버지…왠지 더 마음이 가요"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세상에는 많은 아버지가 있다. 한없이 무섭고 근엄한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아버지도 있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감독 권종관)의 순태(김상호)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버지다. 한쪽 팔에 새겨진 문신에 험난한 과거가 담겨 있지만 지금은 중학생 딸 동현(김향기)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는 평범한 아버지다.


영화는 순태가 재벌가의 며느리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법률 브로커 필재(김명민)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 그리고 딸을 위해 어떻게든 살리고자 하는 순태의 고군분투가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김상호(45)의 애잔한 부성애가 김명민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긴다.



김상호는 "시나리오를 읽고 생각이 난 사진이 있었다"고 말했다. 추운 눈보라 속에서 쭈그린 채 추위를 버티고 있는 들짐승의 이미지였다. 김상호에게는 순태가 딱 그렇게 다가왔다. 버티고 견딜 수밖에 없는 순태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순태는 딸 동현을 만나기 전과 후가 다른 인물이에요. 전에는 그냥 막 사는 인물이었다면 동현을 만난 뒤 평범해진 거죠. 딸만큼은 자신과 같은 아픈 유년 시절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온 보통 아버지죠."


순태는 영화의 감정의 중심을 잡는 중요한 역할이다. 권종관 감독도 김상호에게 "순태가 관객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영화는 무너진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상호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순태의 마음을 얼마만큼 표현할지였다.


"관객들이 순태를 믿는 힘은 동정이나 안타까움이라고 생각했어요. 순태가 처한 환경만으로도 관객에게 어필할 부분이 충분했죠. 그래서 오히려 저의 연기는 과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향기와 함께 연기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향기가 옆에서 순수한 울림판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줘서 힘이 많이 됐죠."



이번 영화에서 김상호는 유독 혼자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다. 교도소에 갇힌 순태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감독님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연기는 재미있다"는 생각에서다.


"배우는 각자 맡은 역할에 따른 임무가 있어요. 그걸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배우를 만나면 파장이 생기는 거고요. 물론 이번에는 혼자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감독님과 의견을 나누며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감독의 영역, 그리고 배우의 영역도 알고 보면 어느 정도는 겹쳐져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극대화하는 작업이라 즐거웠어요."


김상호는 최근 작품 속에서 유독 아버지로 애잔한 부성애를 많이 보여줬다. 영화 '미쓰 와이프'에서는 딸의 곁을 남몰래 지키는 아버지로 분했고 드라마 '디데이'에서는 재난 상황 속에서 딸을 지키고자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를 연기했다. 어떤 아버지라도 그가 연기하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김상호는 "타고난 장점이라기보다는 나만의 독특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자라온 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옛날에 엄마가 그러셨거든요. '상호가 울면 내가 서럽다'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의 특징 같아요(웃음). 시나리오를 볼 때 그런 아버지에 마음이 더 움직이는 건 있어요. 음식점에 들어가면 많은 반찬 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먼저 젓가락이 가는 것처럼요."



혼자서만 감정을 쌓아가야 하는 역할이기에 힘든 부분도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김상호는 "인터뷰를 하면서 영화를 촬영할 때를 다시 생각해보면 아직도 울컥하는 장면이 있기는 있다"며 "그런 감정들도 영화가 개봉하면 눈 녹듯이 사라져 내 안의 다른 곳에 쌓여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곧 개봉할 영화와 만날 관객을 "바보이자 하느님"이라고 설명했다. "선배 연극 배우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관객은 바보이자 하느님이라고요. 연기의 잘못을 파헤칠 때는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하게 파헤치지만 우리의 편이 되면 우리가 어떤 연기를 해도 따라오면서 이해준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관객에게 잘 보이려고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만큼 정말 긴장해서 철저하게 준비해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거죠(웃음)."

[인터뷰] '양치기들' 박종환 "가치 있는 영화 출연하는 좋은 배우가 꿈"

영화관/영화, 그리고 대화


지난 2일 개봉한 '양치기들'(감독 김진황)은 젊은 감독과 배우들이 빚어내는 시너지가 인상적인 영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제작한 독립영화로 살인 사건의 거짓 증언을 의뢰 받은 역할대행업자가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스타 배우는 없지만 대신 진솔하게 연기하는 신예 배우들이 영화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그 중심에 배우 박종환(33)이 있다.


박종환은 지난 2월 개봉해 969만 관객을 동원한 '검사외전'으로 관객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검사외전'에서 검사 변재욱(황정민)이 취조하던 중 사망하는 천식환자 이진석을 연기한 이가 바로 그다. 지난해 천만 영화에 등극한 '베테랑'에서는 양실장 역을 맡아 배성우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2009년부터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박종환은 최근 상업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혀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양치기들'은 박종환의 첫 주연작이다. 극중에서 박종환은 한때 배우를 꿈꿨으나 지금은 역할대행업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완주를 연기했다. 완주는 부스스한 머리에 수염도 깎지 않은 모습으로 그날그날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대신한다. 현실에 치여 꿈을 잃은 채 살아가는 청춘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박종환도 '양치기들'의 시나리오에 흥미를 느껴 출연을 결정했다. 물론 그 흥미는 말초적인 재미는 아니었다. "이야기 진행이 재미있었어요. 장르적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물 각자의 태도와 책임 등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는 시나리오였거든요. 신선했어요. 그런 이야기 전개에 더 많이 끌렸고요." '첫 주연'이라는 거창한 의미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작품 활동에서 느낀 연기의 부족함을 보완하자는 생각만으로 작품에 임했다.


역할대행업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직업이다. 그러나 박종환은 완주가 지닌 직업적인 면을 부각시킬 생각은 없었다. 사람들이 장소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박종환은 완주가 "과거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랐다. "저에게 중요한 건 과거를 그리워하는 남자의 이야기였어요. 과거의 소중했던 무언가를 잃은 채 미안함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죠."



영화는 완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엮인다. 그래서 힘든 점도 많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원맨쇼'였다면 상관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매번 새로운 인물을 만나야 해서 힘들었어요. 상대방과 감정이 쌓이고 있다는 걸 못 느끼겠더라고요. 마치 여러 단편영화를 찍는 느낌이었어요(웃음)." 그는 완성된 영화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결과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다.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꼈다면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완주는 살인 사건의 거짓 증언자가 됐다 곤란한 상황에 처하자 직접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솔직함보다 거짓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 현대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과거 배우로서 자신을 좋아해준 여자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완주의 모습으로 끝난다. 울지 않아도 슬픔이 배어나오는 장면이다. "사실 어떤 감정일지 도저히 모르겠던 장면이었어요. 그냥 해보겠다고 했죠. 그런데 눈물이 안 났어요. 완주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싶었죠."



박종환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연기의 꿈을 키웠다. 군대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던 고참을 만난 것이 그에게 연출에 대한 꿈을 갖게 했다. 군대를 마친 뒤에는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에 들어가 연출을 배웠다. "늦게 시작해서 조급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출을 포기하게 됐고요. 대신 영화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배우를 하게 됐어요. 배우는 감독과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이기도 하고 서로 바라보는 지점도 비슷하니까요."


그렇게 박종환은 독립영화를 시작으로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상업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잉투기'로 인연을 맺은 엄태화 감독의 신작 '가려진 시간', 그리고 임시완이 주연을 맡은 '원라인'의 촬영을 마쳤다. 현재는 최민식 주연의 '특별시민'을 촬영하고 있다. 그는 "타고난 성격이 신중한 건 아니지만 연기 만큼은 신중하게 대하고 있다"며 "연기는 늘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연기를 위해 박종환은 오늘도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화로 기억되고 싶고요. 흥행 성적도 중요하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영화 관련 일을 하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돼요. 선배들이 저를 배우가 아닌 한 사람으로 대해주듯 저 역시 그렇게 후배를 대할 수 있는 배우가 싶어요. 사람으로서도 더 좋은, 더 어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