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NATION

썸석커 (Thumbsucker)

영화관/짧은 영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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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루 테일러 푸치)은 엄지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다. 자신의 버릇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버지로부터 항상 구박을 받는 저스틴은 매사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다. 여자친구에게도 자신의 버릇에 대해 이야기를 못할 만큼 솔직하지 못해 금방 사이가 멀어지고 만다.
 
손가락을 빠는 버릇으로 치열이 고르지 못해 정기적으로 치과를 가는 저스틴은 어느 날 치과 의사인 페리(키아누 리브스)로부터 자신의 버릇이 잠재의식의 문제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페리는 저스틴에게 최면을 통해 버릇을 고쳐주려고 한다. 하지만 페리의 최면은 저스틴의 버릇을 고치지는 못하고 단지 저스틴이 손가락을 빨 때마다 쓴 맛을 느끼게 만드는데 그친다. 저스틴은 손가락을 빨 때마다 느끼게 되는 쓴 맛 때문에 괴로워한다. 결국 저스틴은 충동적인 행동으로 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정신과 의사로부터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약물치료를 받게 된다.

약물치료를 받게 되면서 저스틴은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된다. 넘치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적극적인 자신감에 뛰어난 화술까지 갖추게 된 저스틴은 학교 토론클럽의 대표가 되어 토론대회에 나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다. 하지만 저스틴은 자신의 행동 변화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단지 약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미 약에 익숙해져버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저스틴은 그동안 만나지 않던 페리를 만난다. 오랜만에 저스틴을 만난 페리는 그 동안 자신이 저스틴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고 말하며 저스틴에게 사과한다. 손가락을 빠는 행위가 사실은 심리적·의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페리는 저스틴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해준다. 자신이 정상이라는 페리의 말에 저스틴은 비로소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게 된다.
 
'엄지손가락을 빠는 아이'라는 뜻을 지닌 제목의 영화 <썸석커>는 성격문제를 극복해나가는 일종의 성장영화다. <썸석커>를 보고 <굿 윌 헌팅>을 생각했다. 천재적인 지능을 가졌지만 성격문제로 인해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윌 헌팅이 성격문제를 극복해간다는 내용이 <썸석커>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썸석커>와 <굿 윌 헌팅>에는 영화 속에서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디에서 활동하던 엘리엇 스미스는 <굿 윌 헌팅>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는 <썸석커>를 통해 죽기 전에 녹음해 둔 미발표 곡들을 들려준다. (이는 감독인 마이크 밀즈와의 친분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썸석커>는 <굿 윌 헌팅>만큼 썩 훌륭한 영화는 아니다. <썸석커>는 <굿 윌 헌팅>과 같은 벅찬 감동을 전해주지는 못한다. 저스틴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또한 <굿 윌 헌팅>과 같은 미적인 영상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스틴이 우여곡절 끝에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소박한 감동을 느낄 수는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페리는 저스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넌 지극히 정상이야. 네가 네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를 몰라서 그래. 문제를 치유하려고 사방을 찾아 헤매지만 정작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냐. 스스로 극복할 수 있지만 다들 억측하고 시험하고 갈구하지. 저스틴, 당부하는데 해법을 찾으리란 기대는 버리길 바란다. 그건 허튼짓에 불과해. 비결이라면 해법 없이 사는 거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다 정상이면서 섣불리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페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 역시 그동안 지나칠 정도의 우울함에 빠진 나머지 나 스스로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간주해버린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정상이라고 깨닫는다고 하여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새 다가온 불안이 스스로로 하여금 걱정과 고민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할 지 모르니까. 그렇지만 그 걱정과 고민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내가 <썸석커>를 통해 얻은 희망이다.
 
영화를 통해 얻은 이 가느다란 희망의 끝은 부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