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NATION

[걷기왕] 포기해도 괜찮아! 청춘이니까

영화관/긴 영화글

만복(심은경)은 '꿈' '열정'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고등학생 소녀다. 차든 배든 무엇이든 타기만 하면 멀미가 나는 선천적 멀미 증후군 때문에 만복은 무려 2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 기진맥진한 채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한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기에 무언가에 욕심을 내본 적도 없다. 장래에 대한 고민도 딱히 없다. 꿈과 열정을 요구하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던 소녀가 육상 종목인 경보를 통해 처음 세상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청춘영화다. 음악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 1편과 2편으로 재기발랄한 연출력을 뽐냈던 백승화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하는 장편 극영화다. 심은경의 첫 독립영화 출연작으로 화제가 됐던 작품으로 박주희, 김새벽, 허정도 등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에서 주목 받고 있는 신예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영화는 강화도에서 2시간 동안의 통학 시간만을 제외하면 평범한 삶을 살던 소녀 만복이 담임 선생님(김새벽)의 권유로 경보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가다. 만복은 '걷는 걸 제일 잘 한다'는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난생 처음 꿈을 갖게 된다. 그리고 "무엇이든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육상부 선배 수지(박주희)를 만나면서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진다.


언뜻 '걷기왕'은 꿈과 열정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수 있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지향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청춘에게 무턱대고 꿈과 열정을 강요하는 것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극중 담임 선생님이 이를 잘 보여준다. 비록 코믹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저 꿈과 열정만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성과와 능력, 노력 등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를 체화한 인물이다. 그런 선생님의 말만 듣고 무턱대고 경보에 뛰어든 만복 또한 시련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체전에 나선 만복은 그제야 자신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달리고 있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경보를 시작한 만복이 마음에 들지 않던 수지는 "경보를 하지 않으면 무섭다"는 만복의 말에 마음을 연다. 육상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지 또한 육상을 그만두는 것이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서움'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걷기왕'은 이제 겨우 세상과 마주한 청춘들에게 무작정 꿈과 열정을 강요하는 세상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지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온몸으로 달려들다가도 힘이 들면 포기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청춘이 아니냐고 묻는다. 이것은 비단 청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이토록 힘들게 살면서도 삶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는 힘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기왕'은 청춘이 아닌 관객에게도 무언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재치 있는 이야기 구성과 소소한 감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자극한다. 심은경은 간만에 제 몸에 딱 맞는 배역을 맡아 특유의 매력을 마음껏 펼쳐보인다.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영화는 재기발랄한 연출과 배우들의 유쾌한 연기로 싱그럽게 담아낸다. 그 싱그러움이 청춘을 꼭 빼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