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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더 뮤지컬] 아메리칸 드림을 난도질하는 B급 웨스턴영화

영화관/긴 영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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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더 뮤지컬 (Cannibal the Musical)
트레이 파커 감독, 1996년
         
<사우스 파크> 연출자 트레이 파커의 ‘바보 같은’ 데뷔작     

“이 영화는 정말 바보 같아!” 영화 <카니발 더 뮤지컬>에서 일본계(?) 인디언을 연기한 단역배우가 일본어로 말한다. 혼잣말마냥 중얼거린 이 말은 심지어 자막으로도 번역되지 않고 그냥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도대체 어떤 감독이기에 이런 장면을 가만히 놔둔 것일까? 그는 바로 <사우스 파크>를 연출했던 트레이 파커 감독이다. <카니발 더 뮤지컬>은 트레이 파커의 ‘바보 같은’ 데뷔작이다.

<사우스 파크>는 정말 경악스러운 애니메이션이었다.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소년들이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을 퍼부으며 온갖 폭력적인 행동들을 일삼는 모습에 어떤 이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어떤 이들은 비난과 야유를 보냈다. <사우스 파크>는 조롱과 풍자로 가득한 유머극이었다. 트레이 파커는 미국의 온갖 편견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들을 비틀며 웃음을 선사했다. 2004년에 발표한 퍼펫(인형극) 애니메이션 <팀 아메리카: 세계경찰>에서도 그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하게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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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 파커의 조롱과 풍자는 데뷔작 <카니발 더 뮤지컬>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카니발 더 뮤지컬>은 식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로 풀려난 ‘알프레드 파커 사건’을 트레이 파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영화다. 1883년 미국 콜로라도, 황금을 찾아 서부까지 온 알프레드 파커(트레이 파커)는 함께 황금광을 찾던 동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먹은 죄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이 결백함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직 단 한 사람, 여기자 폴리 프라이(토디 월터스)만이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영화는 알프레드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의 진실에 점점 접근해간다. 온갖 어처구니없는 설정을 통해 계속해서 웃음을 자극하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비꼬는 것은 바로 서부 개척시대의 상징인 ‘아메리칸 드림’이다.

아메리칸 드림, 그것은 곧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명제였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청교도들의 소망이기도 했다. ‘신대륙’에서의 꿈을 키워나가던 미국인들은 더 넓은 세계를 찾기 위해 서부로 눈을 돌렸다. 서부의 광활한 대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인 동시에,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 모든 것들을 신화로 구체화한 것이 바로 웨스턴이다. 그런 점에서 <카니발 더 뮤지컬>에는 웨스턴의 흔적이 존재한다. 황금을 찾아 서부까지 온 알프레드와 그의 동료야말로 열렬한 아메리칸 드림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황금광을 향한 그들의 여정은 웨스턴의 개척정신과도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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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니발 더 뮤지컬>은 웨스턴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신화화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숨겨진 모습들을 까발리고, 조롱한다. 동료의 한 사람인 목사는 자신의 교회를 위해서라면 살인과 식인을 서슴지 않는다. 황금광을 찾아야한다는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친 알프레드는 알고 보면 동물을 사랑하는 이상성욕자다. <카니발 더 뮤지컬>의 주인공들은 모두 서부의 신화인 아메리칸 드림의 가장 중심에 놓여있는 인물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모든 것들이 우리의 예상을 깨트리는 것들이다. 알프레드와 그의 동료들이 맞이하게 된 끔찍한 결말은 결국 아메리칸 드림이 얼마나 헛된 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은 밝혀졌어도 알프레드의 사형집행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마을 사람들은 사형집행 장면을 보기 위해 모여 설렘을 감추지 못한 채 춤추며 노래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축제처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믿고 있는 이들의 어리석은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어리석음이 자꾸만 킥킥거리게 만든다. 그러니까 <카니발 더 뮤지컬>은 웨스턴이 다루지 않았던 서부 시대의 야사(野史) 같은 영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트레이 파커의 조롱과 풍자에 정치적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기 보다는, 그냥 한번 웃어보자는 가벼운 생각이 담겨 있을 뿐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마구 비틀어서 비뚤어진 웃음을 선사하는 <카니발 더 뮤지컬>은 진정한 B급영화다. (주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주류의 정서로 가득한 영화. B급영화를 가장 넓은 의미에서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93년에 영화를 완성한 트레이 파커는 3년 동안 적당한 영화사를 만나지 못해 배급을 하지 못했고, 미국 B급영화의 산실인 트로마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영화를 대중들에게 공개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가 정말 B급스럽다. 그러니까 <카니발 더 뮤지컬>은 다른 B급영화처럼 그냥 가볍게 보면 되는 영화다. 우스꽝스러운 율동을 추며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또는 가짜인 게 너무 티가 나는 고어 장면을 보며, 그냥 한바탕 웃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조롱과 풍자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이 영화의 유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말이다. (★★★)

* 이 글은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http://www.joycine.com/service/article/review/review.asp?id=12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