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NATION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후일담',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음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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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미치도록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언니네 이발관의 4년만의 새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에 붙어 있는 조그만 스티커에 쓰여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음반은 한 마디로, 더 이상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이의 뒤늦은 노래들, 혹은 ‘후일담’들이다. 그래서 이 음반은 자꾸만 <후일담>을 떠올리게 만든다.

설마 이런 음악이 담겨 있을 줄은 꿈에도 미처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음반 <순간을 믿어요>부터 나는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버렸었다. 그 음반은 언니네 이발관답지 않게 너무 ‘밝은’ 음반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 동안 언니네 이발관과 동고동락해온 이상문의 죽음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라고 노래 부를 때 나는 그런 긍정적인 태도가 왠지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느꼈다. 내가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했던 것은 그들의 음악에서 어떤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처럼 나도 슬프고 힘들어’라고 말하듯이. 하지만 <순간을 믿어요>를 듣고 난 뒤, 나는 이들이 더 이상 <후일담>처럼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할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멜로디 좋은 노래들은 만들겠지만 말이다.

취소한다. 그때 지레짐작했던 모든 것들을. <가장 보통의 존재>는 정확히 <후일담>의 정서를 재현한다. 첫 곡 ‘가장 보통의 존재’부터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요동치게 한다. 다음 곡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는 요동치는 마음에 긴장감을 불러 넣더니, 결국 세 번째 곡 ‘아름다운 것’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꼭꼭 숨겨놓은 감정들을 건드리고야 만다. “사랑했었나요 살아있나요 잊어버릴까 얼마 만에 / 넌 말이 없는 나에게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후일담>이 첫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라면, <가장 보통의 존재>는 숱한 사랑을 겪으며 상처에도 익숙해진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이야기다. <후일담>의 ‘실락원’ ‘청승고백’처럼 긴 여운의 노래보다는, 짧지만 강한 여운을 가진 노래들이 <가장 보통의 존재>에 더 많은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가 음악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일담>이 내 인생의 음반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엔 그 무렵에 겪었던 여러 일들 때문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인생은 금물’이 가장 좋았다(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것’이 더 좋다. 물론 이 목록은 계속 바뀔 것이다).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준다 했나요”라는 가사가 왠지 ‘인생의 별’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음반에서도 가장 밝은 편에 속하는 노래인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음반을 듣고 있다. 나오기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한 것도 오랜만이고, 씨디가 도착하자마자 정성스레 북클릿을 읽으며 가사를 음미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고 말이다. 음반 재킷도 참 좋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나는 새 한 마리.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런 존재. 그리고 사운드도 정말 맘에 든다. <순간을 믿어요>의 사운드는 언니네 이발관에 어울리지 않게 좀 ‘포장’이 많이 된 듯했는데, 이번엔 최소한의 악기만을 사용해 담백한 사운드를 선보이다. 특히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베이스 소리가 좋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당분간 <후일담>과 함께 내 인생의 음반에 자리할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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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85540&section=sectio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