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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구로키 히토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영화관/긴 영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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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怪談)
나카다 히데오 감독, 2007년

<괴담>은 <링>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공포영화의 대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5년 만에 일본에서 메가폰을 잡고 만든 영화다. 2002년의 <라스트 씬> 이후로 나카다 히데오는 헐리우드로 건너가 헐리우드 판 <링 2>를 감독했다. <괴담>은 ‘신케이카사네카후치’라는 이름으로 옛날부터 일본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괴담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사무라이였던 아버지가 죽인 한 남자의 저주를 받고 태어난 신키치(오노에 키쿠노스케)가, 그 남자의 딸 토요시가(구로키 히토미)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운명과도 같은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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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다 히데오가 <괴담>의 무서움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저주’와 ‘원한’이다. 최근의 공포영화들이 비주얼적인 방법들을 통해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다른 매우 고전적인 방법인데, 이는 <괴담>의 원작 자체가 고전적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신키치와 토요시가의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위험한 사랑은 결국 깨어지고, 토요시가는 신키치에게 “당신이 재혼을 한다면 그녀를 죽을 때까지 쫓아갈 거야”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그 뒤 영화는 신키치에게 내려진 저주가 어떻게 그를 쫓아가는지에 초점을 두며 영화의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신키치는 토요시가의 저주에도 마치 운명이라도 되는 듯 여자들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관객들은 신키치의 새로운 사랑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자연스레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저주를 품고 끝까지 신키치를 쫓아다니는 토요시가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토요시가를 연기한 배우 구로키 히토미의 능력이다. 과연 그녀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의 공포스러움이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괴담>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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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키 히토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일본에서 지낼 때에 일이다. TV를 통해 처음 본 그녀의 모습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젊은 여자들 못지않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그녀에게 빠져버렸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아함을 간직한 그녀의 매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하의 남자에게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는 그녀가 <도쿄타워>에서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성을 연기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구로키 히토미는 1960년생이다.)

그런 그녀의 매력은 <괴담>에도 잘 나타난다. 그녀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신키치가 처음으로 토요시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남자에게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토요시가에게 신키치는 어렵게 마음을 이야기한다. 처음엔 완고하게 거절하는 토요시가. 그렇지만 나이 어린 신키치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더니 그의 등 뒤로 가서 조용히 그를 껴안는다. 맺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이 시작되는 한편 앞으로 일어날 모든 비극적인 사건들의 발단이 되는 순간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구로키 히토미의 매력 때문에 이 비극적인 순간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사랑은 집착이 되고 끝내 저주가 되어 남자의 운명을 옭아맨다. 세상을 떠난 토요시가가 악령이 되어 신키치의 곁을 머무를 때, 구로키 히토미의 우아함은 오히려 공포가 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움과 우아함 속에 숨겨진 공포. <괴담>이 전하는 원한과 저주의 공포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결국 구로키 히토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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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촬영이나 편집에서 굉장히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인데, 그래서인지 왠지 고풍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원래는 8시간에 달하는 만담인 원작을 2시간 정도의 상영시간 안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이야기들이 너무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공포스럽게 시작해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끝나는 느낌. 그러나 원래 옛날이야기가 그런 걸 생각해보면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링> 시리즈처럼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공포를 기대한다면 그것과는 다른 공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망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 공포스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지를 정확하게 아는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연출력만큼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덧]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막에 오역과 오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오이사라는, 신키치를 좋아하는 다른 여자가 “한유로 떠날 거예요”라고 말할 때 분명 신키치는 “멀리 떠나는구나”라고 말을 하는데 자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네”라고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라 몇몇 부분에서는 아예 번역이 안 되어 있어서, 원작 자체를 알지 못하는 관객으로서는 더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원작을 바탕으로 한 만큼 번역에 있어서도 신경을 더 써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