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NATION

전 세계 영화를 아우른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영화관/특별한 영화글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영화 축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PIFF)는 15회를 맞은 올해에도 한국, 아시아, 영미권을 아우르는 전 세계 67개국 총 307편의 상영작으로 해운대와 남포동을 영화의 물결로 적실 예정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회 행사가 열린 1996년부터 지금까지 영화제를 이끌어 온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퇴임과 2011년으로 예정된 영상센터 두레라움의 완공 등 또 다른 변화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영화제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 및 주목할 작품들을 소개한다.

영화제로 먼저 만난다! 주목할 한국영화 신작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 신작들이 가장 먼저 첫 선을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도 박찬옥 감독의 <파주>, 이송희일 감독의 <탈주>,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 이상우 감독의 <작은 연못> 등이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돼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올해에도 여러 편의 한국영화 신작이 부산에서 그 모습을 공개한다. 그 중 주목할 작품으로는 김태용 감독의 <만추>,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김수현 감독의 <창피해>가 있다.

<색, 계>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배우 탕웨이가 현빈과 호흡을 맞춰 촬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만추>는 한국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김태용 감독은 영화의 배경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 자신만의 감성으로 원작을 재구성한다. 남편을 살해한 뒤 감옥에 갔던 여자가 7년 만에 얻은 외출에서 우연히 한국인 사내를 만나 그에게 버스비를 빌려주면서 일어나는 두 남녀의 교감을 그린다. 미국 사회 안에서 소수인종의 현실을 대변하는 두 남녀의 멜로영화로 탈바꿈한 <만추>는 무엇보다도 <가족의 탄생>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김태용 감독의 장편 극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기대를 증폭시킨다. 김태용 감독 특유의 감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전작들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또한 현재 탕웨이가 영화제 기간 동안 바쁜 스케줄을 쪼개 한국을 찾는다고 하니 그녀의 팬들에게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낙원> <올 가을의 트렌드> 등 여러 단편영화를 통해 순간의 애틋함과 섬세한 감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김종관 감독은 데뷔 이후 첫 장편인 <조금만 더 가까이>로 부산을 찾는다. 한국 멜로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감독으로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김종관 감독은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살려 애잔한 멜로영화로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로테르담에서 연인을 찾던 남자의 이야기로 막을 여는 영화는 이제 막 사랑에 눈뜬 커플, 오래된 사랑에 지친 게이 커플, 헤어진 후에도 쉽게 이별하지 못하는 커플,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관련된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주연을 맡았던 정유미를 비롯해 윤계상, 요조, 윤희석 등 청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조금만 더 가까이>가 그려낼 은밀하면서도 과감한 사랑의 감성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여자 때문에 콩가루가 돼버린 한 가족의 이야기를 독특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낸 <귀여워>로 주목 받았던 김수현 감독은 6년 만의 신작 <창피해>로 부산을 찾는다. <귀여워>를 통해 남다른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봤던 김수현 감독은 <창피해>에서 여성의 이야기로 시선을 돌린다. 김효진을 비롯해 <똥파리>의 김꽃비, 구혜선 감독의 <요술>로 이름을 알린 서현진이 ‘지우’라는 같은 이름을 지닌 세 여성을 연기한다. <창피해>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언어와 여성의 육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감성을 다룬다. 이를 통해 김수현 감독은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사랑의 상처와 기억을 어루만지고 있다. 개성 넘치는 데뷔작으로 주목 받은 김수현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영화의 미래를 책임진다! 새로운 아시아영화

부산국제영화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제이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이기도 하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 나아가 아랍 문화권이 형성된 중동아시아까지 부산국제영화제는 끊임없는 관심과 함께 각 지역의 다채로운 영화들을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해왔다. 올해 영화제에도 앞으로의 영화계를 책임질 새로운 아시아영화들이 대거 포진했다. 그중 일본 이상일 감독의 <악인>, 태국 위시트 사사나티엥 감독의 <레드 이글>, 인도 마니 라트남 감독의 <라아바난> <라아반>이 주목된다.

치열한 예매전쟁에서 일본영화는 항상 매진행렬을 이루는 인기작 중 하나다. 올해는 특히 아오이 유우, 오카다 마사키, 미야자키 아오이 등 청춘스타들이 신작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작품이 바로 <악인>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인기 소설을 <훌라걸스>의 이상일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긴 <악인>은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노처녀 미츠요가 채팅을 통해 살인범 유이치를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도주극을 이상일 감독은 절제되고 리얼한 연출로 담아내고 있다. 그동안의 선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금발로 염색해 악인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한 츠마부키 사토시와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후카츠 에리의 연기 호흡이 더욱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두 주연배우의 내한도 예정돼 있어 일본영화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태국영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은 바 있다. 올해에는 태국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엥이 4년 만의 신작 <레드 이글>로 한국을 찾는다. 키치적인 느낌의 느와르 <검은 호랑이의 눈물>과 현대 도시인의 단면을 우화적으로 그린 <시티즌 독>으로 남다른 감성과 개성 넘치는 색채 감각을 선보였던 위시트 사사나티엥 감독은 60년대 태국의 인기시리즈 영화를 현대식으로 리메이크한 <레드 이글>을 선보인다. 40년 만에 다시 부활한 <레드 이글>은 1,400컷에 달하는 CG 숏과 이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액션 신으로 또 다른 히어로의 탄생을 알린다. 태국을 대표하는 배우 아난다 에버링헴이 주연을 맡아 열연을 선보인다. 위시트 사사나티엥 감독은 <레드 이글>뿐만 아니라 폐막작 <카멜리아>에서도 여자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한 <아이언 푸쉬>를 연출해 자신만의 상상력을 부산에서 맘껏 펼쳐 보일 예정이다.

할리우드 못지않은 제작환경과 규모로 ‘발리우드’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인도영화에서도 주목할 만한 신작이 부산에 온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작품을 상영한 적 있는 마니 라트남 감독의 <라아바난><라아반>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두 편의 영화는 각각 타밀어 버전과 힌디어 버전으로 만들어진, 동일한 내용을 캐스팅만 바꿔 제작한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경찰서장의 아내가 납치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를 그린 두 편의 영화에서 마니 라트남 감독은 이야기꾼다운 재능을 137분의 러닝타임 가득 펼쳐낸다. 또한 인도영화다운 화려한 영상과 강한 비트의 음악, 정열적인 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다. 두 편의 영화에서 모두 주연을 맡은 아이쉬와리아 라이를 비롯해 아비셱 바흐찬, 비크람 등이 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을 찾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같은 내용을 다른 배우의 연기로 만날 수 있는 독특하고 신기한 경험이 될 것이다.

거장과 신인이 한자리에! 보고 싶은 영미권영화

한국과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수준 높은 영미권영화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월드 시네마’ 부문은 칸영화제를 비롯해 해외 영화제를 통해 호평 받은 작품을 한국에서 가장 처음 만날 수 있는 기회이자 전 세계 영화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올해에도 ‘월드 시네마’ 부문은 미국, 캐나다 등 북미권을 대표하는 작품들과 서유럽과 동유럽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까지 총 75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그 중 선댄스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타인의 뒤뜰>, 칸영화제 화제작인 <신과 인간>과 <순회공연>을 소개한다.

할리우드 주류영화의 대안으로 시작된 선댄스영화제는 미국 인디영화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징표와도 같은 영화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에릭 멘델스존의 <타인의 뒤뜰>이 상영된다. 완벽하게 보이는 어느 가을날을 배경으로 영화는 교외 주택가에 사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결혼 생활의 문제를 안고 있는 기업인, 어머니의 보석을 훔친 한 소녀, 이웃에 사는 유명 스타를 차로 태워주는 가정주부를 주인공으로 영화는 평온한 일상에 내재한 불안의 기운을 슬그머니 쳐다본다. 에릭 멘델스존 감독은 20년 이상 뉴욕 영화계를 중심으로 일해 온 감독으로 데뷔작 <주디 베를린>에 이어 <타인의 뒤뜰>로 유일하게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두 번 받은 감독이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타인의 뒤뜰>은 미국 인디영화의 새로운 기수로 기억될 것이다.

칸영화제 수상작 중에는 배우를 겸하는 연출자의 작품 두 편이 상영된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신과 인간>은 배우 겸 각본가인 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다섯 번째 연출작이다. 1990년대 말 알제리 산골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프랑스 신부의 순교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로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이상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종교적인 의미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자비에 보부아 감독은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수도원은 모로코에 다시 건축된 곳으로 주변의 풍경과 함께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라붐 2>와 <매트릭스> 시리즈 등에 출연한 배우 랑베르 윌슨이 열연을 선보이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의 칸영화제 수상작은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배우가 연출한 작품이다. <뮌헨> <잠수종과 나비> <퀀텀 오브 솔러스>로 널리 알려진 배우 마티유 아말릭의 감독 데뷔작인 <순회공연>이 다.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던 TV 프로듀서가 새로운 쇼 공연단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와 환상적이고 기발한 쇼를 선보인다. 그러나 파리 공연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주인공의 고민은 조금씩 커져 나간다. 실패한 프로듀서와 한물 간 스트립 걸이 만들어내는 2류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순회공연>은 예술에 대한 오마주이자 삶의 이면을 성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연출은 물론 주연까지 함께 한 마티유 아말릭 감독은 이 한 편의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며 연출자로서의 재능까지 단번에 인정받았다. 그의 다재다능함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