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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긴 영화글 2009/04/17 19:24[노잉] ‘왜?’라는 질문이 필요한 블록버스터
노잉 (Knowing)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 2009년
불편한 영화라고 나쁜 영화는 아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노잉>을 재난을 소재로 한 여타의 블록버스터들과 같은 종류의 영화로 생각했다면 큰코다칠 일이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지하철이 전복되는 재난의 스펙터클과 인류의 재앙을 암시하는 미스터리한 단서, 그리고 갖가지 음모론 등 대중의 흥미를 자극할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정작 <노잉>의 진지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오락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다크 시티>가 그랬던 것처럼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익숙한 설정과 요소들을 끌고 와 자신만의 색깔이 가득한 독특한 블록버스터로 <노잉>을 완성시켰다.
시작은 영락없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다. 50년 전 매사추세츠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타임캡슐을 파묻기로 한다. 모든 학생들이 타임캡슐에 넣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유독 한 소녀만이 알 수 없는 숫자만을 종이 가득 적는다. 타임캡슐을 묻는 날 실종된 소녀의 이야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는 머지않아 소녀가 쓴 숫자들이 인류에게 닥칠 재앙을 암시하는 단서임을 밝힘으로써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숫자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어지는 재난의 스펙터클은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노잉>은 재난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까지도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영화적 쾌감보다는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잉>은 재난의 스펙터클을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볼거리가 아닌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재난을 암시하는 정체불명의 숫자가 <노잉>의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단서라면, 주인공 존(니콜라스 케이지)이 우주학 강의에서 설명하는 무작위론과 결정론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요소다. 여러 우연이 겹쳐 우주가 탄생하고, 지구에 생명체가 살게 됐다는 무작위론과 지구에 생명체가 살게 된 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고 바라보는 결정론 사이의 대립은 정체불명의 숫자와 함께 <노잉>의 서스펜스를 지탱한다. 신을 믿지 않고 천국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물론자 존은 무작위론 신봉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러나 존은 인류 역사의 크고 작은 재난들을 정확히 예언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숫자들을 마주하게 되면서부터 무작위론에 회의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노잉>은 인류에게 닥친 재난 앞에서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한때 무작위론을 믿었던 한 인간이 결정론을 믿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노잉>은 기존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가올 재난을 이겨낼 영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결국 세상은 그렇게 예정된 대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분명 <노잉>은 불편한 영화다. 스크린을 통해 인류가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울 리 없고, 거기에 외계인이 신이라는 설정은 충격을 넘어서 허황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편한 영화라고 해서 나쁜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노잉>은 내러티브를 불편한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언정, 적어도 그 진행에 있어서 매끄러운 호흡과 연출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허투루 볼 영화가 아니다. 심지어 <노잉>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결정돼있다는 결정론을 따름으로써 우연의 일치로만 보이는 내러티브의 허점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영리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잉>이 왜 결정론을 택했냐는 질문일 것이다.
<노잉>은 120분 남짓한 시간동안 스크린에 펼쳐지는 인류 멸망의 스펙터클에 대해 인간은 결국 나약한 존재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이를 통해 오만한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노잉>이 그려내는 재난의 스펙터클이 그토록 사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를 보는 동안 짐짓 당황했다면 그것은 영화가 생각 없이 보는 블록버스터의 외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교묘하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모순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 역시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해보면 영화의 흠이라기보다는 감독만의 개성으로 보는 게 옳다.
충격적인 결말에 있어서는 <미스트>만큼이나 논란을 불러일으킬 <노잉>은 영화가 전하는 불편함을 어디까지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영화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영화를 보고 난 뒤 한 번이라도 인류의 멸망과 우주적인 시각에서의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노잉>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인 것과 다름없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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