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객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영화제에 참여하는 것도 그렇고, 수많은 상영작 중 독립장편영화를 모아놓은
‘한국 영화의 흐름’ 상영작들을 보며 독립영화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 말이다. 10편의 상영작들을 보면서 정말
놀랐던 것은 10편 모두가 정말 다채로운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 영화가 어렵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독립영화에서는 여러 감독들이 새로운 형식적 실험 등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편을 뽑아 관객평론상을 주는 것은 너무 어려웠고, 솔직히 모든 영화가 일반 관객들을 만날 더 많은 기회를 가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고양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10편 중 내 마음을 흔든 몇 편의 작품이 있었다.안건형 감독의<고양이가 있었다>는 단연 이번 상영작들 중 나만의 베스트 영화다. 부산 해운대 근처 미포항구의 어느 횟집을 배경으로 어느 가족의 일상을 담은 이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워나가고 있다. 일반적인 극영화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허구의 세계를 만들지만 이 영화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더 현실 같은 세계를 만들고 있다. 얼핏 보면 단조로운 일상만이 담긴 지루한 영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나아가 삶과 죽음, 사라지는 것들과 지나간 것들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영화의 후반, 삶이 허무하다는 이야기를 툭 꺼낼 때와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어느 터널에 올라가는 장면의 충격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인터뷰 자리에서 일상과 일상의 재연에 대해 질문을 던지던 감독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낮술>
노영석 감독의<낮술>은
이번 상영작 중 가장 유머가 넘치는 영화였다. 여자친구와의 이별에 아파하는 어느 청년이 무턱대고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남성의 욕망을 대변하는 온갖 판타지들로 가득 차 있다. 그 판타지가 철저하게 무너지면서 유머를 자아내는
방식은 마치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듯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만큼 철학적이지는 않다. 또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매우
매끄러운데, 여태껏 단편도 하나 찍지 않은 완전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천만 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독립영화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 덕분에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과 JJ-St★r 상을 독차지하였다. 곧 있을 인디포럼에서도 상영예정이라니 앞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서 일반
상영관에서도 정식개봉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멋진 작품으로 감독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감독님과 인터뷰를 마친 다음
같이 낮술을 마신 기억도 아마 잊지 못할 듯싶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여태껏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울어본 적은 없었다. <송환>을 보면서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던 게 전부였다. 그러나안해룡 감독의 다큐멘터리<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면서 나는 끝내 울음을 멈추지 못하였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송신도 할머니의 힘이었다. 16세라는 나이에 위안부로
중국에 강제 징용되었던 송신도 할머니는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 정부에 대한 사죄를 받아내기 위한 재판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는 그 동안 굳게 닫아온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그런 상처에도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긍정적인 모습, 그리고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에서
나아가 전쟁 자체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모습들이다. 늦어도 올 하반기에는 개봉을 추진한다고 하니 꼭 많은 사람들이 송신도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에는 한국에서 직접 할머니를 만나 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외로움과 소통의 문제를 다룬서원태 감독의<SYNCHING BLUE>와 고시원을 배경으로 한국사회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환멸을 그려낸김동주 감독의<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형식적인 실험이 매우 돋보이는 영화들이었다. 네팔의 어느 장례식장 근처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네팔과 같은 제3세계에 대한 환상을 깨고 그 속의 진실을 담아내려고 했던이승준 감독의<신의 아이들>과, 소록도의 한센인들의 이야기를 다룬임은희 감독의<섬이 되다>도 매우 인상적인 다큐멘터리였다.김백준 감독과정성욱 감독이 함께 만든<내 마음에 불꽃이 있어>는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단면을 잡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였고, 한효주가 주연을 맡은임성운 감독의<달려라 자전거>는 첫 사랑의 설렘과 첫 이별의 아픔을 파스텔 톤의 예쁜 영상 속에 담아냈다. 그리고김아론 감독의<라라 선샤인>은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소재로만 다룬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매끄러운 편집과 같은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예전에 비하면 한국 독립영화를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인디스페이스와 같은 독립영화 전용관도 생겼고 상상마당 같은 곳에서도 자주 상영회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은 미약하고 그럼에도 많은 새로운 감독들이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있음을 이번 ‘한국 영화의 흐름’ 상영작을 보는 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한낱 관객에 불과한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여러 감독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고, 앞으로 또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영화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에도 10편 중 내 마음을 흔든 몇 편의 작품이 있었다.안건형 감독의<고양이가 있었다>는 단연 이번 상영작들 중 나만의 베스트 영화다. 부산 해운대 근처 미포항구의 어느 횟집을 배경으로 어느 가족의 일상을 담은 이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워나가고 있다. 일반적인 극영화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허구의 세계를 만들지만 이 영화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더 현실 같은 세계를 만들고 있다. 얼핏 보면 단조로운 일상만이 담긴 지루한 영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나아가 삶과 죽음, 사라지는 것들과 지나간 것들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영화의 후반, 삶이 허무하다는 이야기를 툭 꺼낼 때와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어느 터널에 올라가는 장면의 충격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인터뷰 자리에서 일상과 일상의 재연에 대해 질문을 던지던 감독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로움과 소통의 문제를 다룬서원태 감독의<SYNCHING BLUE>와 고시원을 배경으로 한국사회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환멸을 그려낸김동주 감독의<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형식적인 실험이 매우 돋보이는 영화들이었다. 네팔의 어느 장례식장 근처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네팔과 같은 제3세계에 대한 환상을 깨고 그 속의 진실을 담아내려고 했던이승준 감독의<신의 아이들>과, 소록도의 한센인들의 이야기를 다룬임은희 감독의<섬이 되다>도 매우 인상적인 다큐멘터리였다.김백준 감독과정성욱 감독이 함께 만든<내 마음에 불꽃이 있어>는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단면을 잡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였고, 한효주가 주연을 맡은임성운 감독의<달려라 자전거>는 첫 사랑의 설렘과 첫 이별의 아픔을 파스텔 톤의 예쁜 영상 속에 담아냈다. 그리고김아론 감독의<라라 선샤인>은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소재로만 다룬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매끄러운 편집과 같은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예전에 비하면 한국 독립영화를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인디스페이스와 같은 독립영화 전용관도 생겼고 상상마당 같은 곳에서도 자주 상영회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은 미약하고 그럼에도 많은 새로운 감독들이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있음을 이번 ‘한국 영화의 흐름’ 상영작을 보는 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한낱 관객에 불과한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여러 감독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고, 앞으로 또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영화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영화관 > 영화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CinDi 2008] 지아 장커의 신작 <24시티> 짧은 감상 (4) | 2008/08/21 |
|---|---|
| [JIFF 2008] 어수선하게 정리하는 나머지 관람 영화들 (0) | 2008/05/12 |
| [JIFF 2008]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힘이 되길 - ‘한국 영화의 흐름’ 섹션 상영작 (0) | 2008/05/11 |
| [JIFF 2008] 고통과도 같은 구원 - 라라 선샤인 (0) | 2008/05/11 |
| [JIFF 2008] 지루한 일상에 대한 보고서 - 고양이가 있었다 (0) | 200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