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소나타 (トウキョウソナタ)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2008년
고통스럽더라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실직을 당한다. 평생을 바쳐 일한 직장은 회사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냐는 한 마디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하지만 그는 가장이라는 권위 때문에 실직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든 가족들이 각자의 비밀을 감추고 있다. 막내아들은 급식비를 몰래 빼돌려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고,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큰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미군에 지원하겠다며 가족들과 상의도 없이 집을 나가버린다. 오로지 어머니만이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이들 가족을 어떻게든 따뜻하게 보살피려하지만, 그럴수록 우울증도 함께 커져만 간다. 하지만 그들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심지어 온가족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함께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현실 세계에서도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도쿄 소나타>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가족영화다. 그동안 주로 공포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가족영화의 조합은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도쿄 소나타>를 통해 굳이 공포영화가 아니어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물론 <도쿄 소나타>에는 현대인이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불안한 심리를 그려냈던 <큐어>나 <회로>에서와 같은 간담을 서늘케 하는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외면하고픈 현실을 직시해온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세계관만큼은 <도쿄 소나타>에서도 변함이 없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 소리 소문도 없이 비바람이 몰아치듯, 사사키 집안에도 아무런 예고 없이 불안이 닥친다. 불안은 곧 가족들 내부에 소통의 단절과 균열의 조짐을 낳고 끝내 이들을 파국으로까지 치닫게 만든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작정이라도 한 듯 사사키 가족의 이야기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담아내는데 온힘을 쏟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까발린다. 일자리를 잃은 가장 류헤이의 일상에는 하루하루를 고용센터와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실직자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집밖에서는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도 정작 집안에서는 실직 사실을 숨긴 채 권위를 내세우는 류헤이의 행동은 그 부조리함으로 인해 쓴웃음을 짓게 한다. 물론 그것은 공감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애써 웃음으로 외면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한편, 전형적인 ‘프리타’인 큰아들 타카시는 현실 감각이 무뎌져가는 일본 젊은이들의 표상이다. 자신이 이 나라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냐며 평화를 위해 미군에 지원하겠다는 타카시의 이야기에는 현실에 무감각한 일본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막내아들 켄지로 대변되는 다음 세대는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너무 빨리 현실을 직시한 켄지는 남에게 상처만 주기에 말하기 싫다는 조숙한 말을 되뇔 따름이다. 이들과 부모 세대 사이의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켄지와 타카시의 방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국경선’은 점점 심각해져가는 세대 간의 격차를 실감케 한다. 오직 류헤이의 아내이자 타카시와 켄지의 엄마인 메구미만이 가족 내의 불안과 균열의 조짐을 감싸 안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내면은 누군가가 일으켜주기를 바라는 공허함과 답답함으로 가득 찰뿐이다.
<도쿄 소나타>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다운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간 순서로 진행되던 영화는 쇼핑몰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한 류헤이가 그곳에서 메구미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순간, ‘3시간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마침내 파국에 달한 사사키 가족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집안에 들이닥친 어눌한 도둑과 함께 메구미는 악몽과도 같았던 집을 떠나 한 순간의 일탈을 만끽하고, 쇼핑몰 화장실에서 돈 봉투를 발견한 류헤이는 우연히 마주친 메구미를 외면한 채 어디론가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하며,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울 수 없게 된 켄지는 가출한 친구처럼 버스에 무임승차를 시도하다 들키고 만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마냥 이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도둑과 함께 어딘지 알 수 없는 해변까지 오게 된 메구미는 “지금까지의 생이 전부 꿈이고 눈을 떴을 때는 지금과는 다른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반문하고, 그 사이 류헤이는 어떻게든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 마지막 발악처럼 현실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플 정도로 파고든다. 외면하고픈 현실을 스크린으로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도쿄 소나타>는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을 마주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고민케 한다.
다만 <도쿄 소나타>가 기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절망적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던 영화는 4개월 뒤의 후일담을 통해 일말의 희망을 내비친다. 음악 중학교 실기시험을 보러 간 켄지가 피아노 연주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 동안의 모든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려는 듯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창가로 스며드는 햇빛을 통해 너무나도 따스하게 묘사된다. 물론 구로사와 기요시가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토록 애매모호한 희망이야말로 진정 구로사와 기요시다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도쿄 소나타>가 놀라운 것은 공포영화를 빌리지 않고서도 변함없이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다. 영화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마치 이웃집 이야기를 무관심하게 바라보듯 덤덤한 태도로 그려내고 있다. 그 무관심하고 무덤담한 태도야말로 <도쿄 소나타>의 진정한 공포일지도 모른다. 더욱 무서운 것은 영화 속 가족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잔인한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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