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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짧은 영화글 2009/02/26 03:33

왓치맨 (Watchmen / 잭 스나이더 감독, 2009)


앨런 무어 원작의 그래픽 노블 '왓치맨'은 사실 영화화하기 만만한 텍스트가 절대 아니다. 거기에는 30년대부터 80년대까지에 미국이 겪어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 기저에는 슈퍼맨으로 대변되는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고 돌발적인 태도가 감춰져 있다. 또한 냉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냉소와 허무도 존재한다. '왓치맨'이 걸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그것이 이토록 많은 함의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이야기들과 함께 2권으로 출간된 '왓치맨'은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봐서는 절대 안되는 텍스트인 것이다.

'왓치맨'이 끝내 영화로 만들어졌다. 잭 스나이더 감독에게 <왓치맨>은 분명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원작 그대로 방대한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다면 시간적인 제약이 너무 크고, 그렇다고 섣부르게 각색을 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잭 스나이더 감독은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를 완성하고자 했다. 물론 끝까지 영화화에 반대한 앨런 무어의 이름은 크레딧에서 제외된 채 말이다.

원작을 큰 변형 없이 영화로 재구성한 <왓치맨>을 놓고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것은 원작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고, 오히려 원작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와 원작은 엔딩에서 작은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놓고 봤을 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관심은 <왓치맨>이 어떻게 원작을 영화로 재현하고 있는가에 갈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왓치맨>은 원작의 비주얼 재현에는 성공했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함의까지 담아내는 데는 실패한 모양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비주얼적인 측면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코미디언과 그를 습격한 정체 불명의 사나이와의 액션 신으로 시작되는 오프닝부터 그렇다. 슬로우 모션으로 시각성을 극대화시킨 액션 시퀀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많은 시퀀스들이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충실하고 있다.

그러나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원작에서 액션신이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는가라는 의문 말이다. 특히 로어셰크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그가 원작보다 더욱 냉혹한 캐릭터로 묘사되는 것은 영화의 자극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처럼 보여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다. 원작보다 더 강하게 나갈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묘사한 것은 잭 스나이더 감독이 비주얼의 재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 충실한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러닝타임에 쫓기듯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인상을 주는 것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결말이 이토록 큰 임팩트 없이 이어지다니, 조금은 허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원작을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왓치맨>은 불친절한 영화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화려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음에도 정작 영화가 풍기는 진지하고 숙연한 분위기는 일반적인 블록버스터를 상상한 관객들에게는 당혹스럽게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 <왓치맨>은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원작 만큼의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원작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만큼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왓치맨>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만 본 관객이라면 시간을 내서 꼭 원작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영화보다는 원작이 더 재밌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절대 화려한 시각효과로만 재미를 느껴서는 안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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