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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긴 영화글 2009/01/15 14:26[해피 고 럭키] 행복과 사회의 상관관계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마이크 리 감독, 2008년
‘해피 고 럭키’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그리고 포스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샐리 호킨스의 얼굴을 봤을 때, 이 영화에 기대했던 것은 러닝타임 내내 입가에 지을 수 있는 한 웅큼의 미소였다. 그러나 <해피 고 럭키>는 그런 기대와 살짝 어긋나 있는 영화였다. 마이크 리 감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었다면 애초부터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을 노릇이다. 뒤늦게 찾아본 마이크 리 감독에 대한 소개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바로 켄 로치 감독과 함께 영국 좌파영화를 대표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해피 고 럭키>에 대해 가졌던 기대가 어리석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해피 고 럭키>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닌, 사람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포피(샐리 호킨스)는 시작부터 자전거를 탄 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주하게 될)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등장한다. 오프닝 크레딧이 지나간 뒤 등장하는 서점 신은 그녀의 성격을 가장 잘 규정해주고 있다. 처음 온 서점에서 그녀는 먼저 책 한 권을 꺼내본다. ‘현실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책을 본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말한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걸?” 만약, 영화를 보는 동안 포피라는 인물에 도저히 감정이입을 할 수 없다면 그건 그녀가 우리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서점 주인은 그런 그녀를 그저 시큰둥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점 안을 마음껏 활보한다. 서점 밖에 나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자전거를 도둑맞았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실망하거나 짜증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작별인사를 못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자유’다. 그녀의 행복은 그녀가 추구하는 자유에서 비롯된다. 자유란 곧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포피는 다른 사람들, 나아가 사회가 규정해놓은 규칙들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플라멩코를 처음 배우러 갔을 때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부츠를 신은 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춤을 따라한다. 친구들과 클럽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자유분방함 그 자체다.
마이크 리 감독은 이토록 자유분방한 포피의 일상적인 삶을 따라가면서 그녀를 통해 행복에 대해 반문하고 있다.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포피의 삶이,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과 충돌하는 모습들을 통해서 말이다. 포피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운전강사 스콧(에디 마산)이다. 스콧은 포피와 달리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도로연수를 위해 포피와 처음 만난 날부터 스콧은 자신만의 룰을 늘어놓는데 정신이 없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가리키며 ‘엔라하’라는 자신만의 이름을 붙이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갖게 만드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나름의 교육관을 설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처음부터 잘 어울릴 리가 만무하다. 포피는 스콧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고, 스콧 역시 그런 포피가 좋게만 보일 리 없다. 두 사람의 계속되는 도로연수는 행복에 대한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계의 충돌을 보여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 내내 환하게 웃고 있는 포피보다는, 항상 찡그린 얼굴의 스콧에게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된 것이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란 결국 우리가 속한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자유롭다고 한들, 우리의 삶은 사회가 정한 룰에서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스콧이야말로 오히려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렇다면 마이크 리 감독이 포피와 스콧의 갈등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온갖 규칙들로 우리의 삶을 제약하려는 사회에 속한 이상,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해피 고 럭키>를 보면서 자유분방한 포피보다는 규칙에 얽매인 스콧에 더 마음이 간다면, 그래서 마지막에 절규하는 스콧을 보면서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의 쓰라림을 느꼈다면, 그것은 영화가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한계를 실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포피와 스콧의 관계에 있어서 흥미로운 또 한 가지는 바로 다문화주의에 대한 언급이다. 언제나 불만으로 가득한 스콧은 어느 날 다문화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다문화주의의 질병으로 가득 차 있어. 다문화주의가 뭐냐고? 다문화주의는 문화가 없다는 말이야. 그럼 왜 문화가 없는 걸 원하는데? 그건 공동체로서의 의지를 없애고 싶기 때문이지.” 반면, 포피는 친구와 함께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다.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포피는 다문화주의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인물이다. 영화가 포피가 자유의지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지만,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지점이 있다. 결국 다문화주의를 둘러싼 이 둘의 갈등은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영화가 끝내 포피와 스콧의 갈등을 해소시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스콧으로서는 자신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포피를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다.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남들에게 조금이나마 행복을 주기 위해 엉뚱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던 포피의 행동들을 자신을 유혹하기 위한 행동으로 스콧이 받아들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두 세계의 충돌. 그것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하게 되는 사회의 풍경들이다. <해피 고 럭키>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결국 ‘현실의 풍경’이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통해 현실의 단면을 그려내는 방식을 통해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 한 달 전 쯤에 쓴 글인데 뒤늦게 올림. 샐리 호킨스의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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