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The Weird)
김지운 감독, 2008년
예상했던 대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은 개봉하자마자 여러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바람에 자의든 타의든 간에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된 탓도 있을 것이고, 최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영화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될 만한 영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영화 자체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놈놈놈>은 볼거리 하나만은 확실한 영화다. 세 주인공의 서로 쫓고 쫓기는 장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스릴이 넘친다.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었던 화려한 액션 장면과 총격 신, 그리고 거대한 폭파 장면까지 <놈놈놈>은 쉬지 않고 관객들을 전율하게 만드는데 온힘을 쏟는다. 게다가 여성 관객들은 정우성, 이병헌이라는 양대 스타들의 그야말로 ‘간지’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그에 질세라 송강호는 특유의 코믹 연기를 선보이니 누구 하나 빠질 것이 없다. 문제는 이야기다. 도대체 그들에게는 쫓고 쫓기는 이유가 없다. 왜 보물지도에 그렇게 집착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세 사람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도 <놈놈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대부분 이런 빈약한 내러티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언젠가부터 스타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장화, 홍련>이 개봉하였을 때는 그걸 못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에 대한 집착은 시작한 것 같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반칙왕>과 <장화, 홍련> 사이에 명확한 어떤 선이 그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선의 기준은 ‘코미디’가 아니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은 분명 이야기가 살아있는 영화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내러티브가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장화, 홍련>부터 그의 영화에서 내러티브는 점점 빈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빈틈을 채운 것은 화려한 미장센이나 다채로운 편집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장화, 홍련>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 자매의 슬픈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들이었다. <달콤한 인생>도 결국엔 마지막의 그 화려한 총격 신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했다(아니라면 굳이 에릭이 그 장면에 나올 이유도 없다).
김지운 감독이 자꾸만 스타일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 다시 말해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 <놈놈놈>이 각각 호러, 느와르, 웨스턴이라는 장르의 겉모습을 지니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지운 감독이 장르에서 느끼는 매력은 장르가 지닌 관습적인 내러티브라기보다는, 각각의 장르만이 지닌 독특한 스타일인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장르 자체를 따르기보다는 그 장르 안에서 각각의 스타일만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이 장르의 외부에서 장르의 관습을 비틀면서 장르를 파괴하였다면, <장화, 홍련> 이후의 작품들은 장르의 내부에서 장르의 스타일을 극대화하여 장르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장르에 대한 취향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장르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감독의 태도가 점점 스타일에 초점을 둔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놈놈놈>은 감독의 취향이 뻔뻔스러울 정도로 그대로 반영된 영화다. 영화의 빈약한 내러티브는 연출의 실수가 아니라 오히려 의도된 연출로 보인다. 김지운 감독은 온갖 액션과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현란한 총격 장면과 추격 장면을 보고 싶었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그대로 필름에 담았다. 적어도 그 장면들에서만큼은 순도 100퍼센트의 오락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놈놈놈>은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오락성은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독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어쩐지 <놈놈놈>을 보고 난 뒤 김지운 감독에게 “왜 이렇게 영화의 내러티브가 빈약한 겁니까?”라고 물으면 “그건 제 취향입니다”라고 답할 것만 같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지만, 막상 영화가 끝난 뒤에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느껴진 것은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본 영화가 결국 자아도취에 빠진 감독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뻔뻔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김지운 감독의 강점이라면, 자꾸만 취향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적 완성도를 잃어가는 것은 그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놈놈놈>의 영화적 쾌감이 단지 유원지에서 탄 롤러코스터처럼 순간적으로만 남는 것은 그래서이다. 가끔씩은 그런 짧은 쾌감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은 결국 마음속에 오래 남지 못하는 법이다.
[덧] <놈놈놈>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영화를 찍다 유명을 달리한 고(故) 지중현 감독을 추모하는 자막이 등장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인기상을 받은 정병길 감독의 <우린 액션배우다>를 보면 고 지중현 무술감독과 <놈놈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다. 온몸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액션 배우들의 고된 삶, 그리고 독립영화는 넘을 수 없는 상업영화의 ‘거대한’ 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종일관 유쾌한 영화 속에서 단 한 순간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다. 비슷한 시기에 <우린 액션배우다>가 개봉을 하였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고 지중현 무술감독을 추모하고 또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놈놈놈>의 현란한 액션 장면들이 어쩐지 슬프게 느껴진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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