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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Unbowed)
정지영 감독, 2011년

“법은 수학과 같습니다. 법은 모순이 없어요.” 대학 입시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교수직에서 해임된 김경호(안성기)는 “법은 쓰레기”라는 변호사 박준(박원상)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완벽한 법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사법부가 정의를 잃은 채 권력화됐기 때문이다. ‘순진한 다윗’ 김경호와 ‘야만적인 골리앗’ 사법부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된다.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 제작 아우라픽처스)은 개봉과 동시에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작품이다. 2007년 세간을 들썩이게 만든 ‘석궁 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은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 사법부의 부조리한 모습을 통해 법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현실을 고발한다.


최근 개봉한 법정 배경의 영화 ‘의뢰인’과 ‘도가니’가 각각 이야기의 기교와 자극적인 연출을 활용했다면 ‘부러진 화살’은 법정 공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진중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면서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통한 위트와 재치는 ‘법정 드라마는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속설을 배반하며 기대 이상의 재미와 통쾌함을 선사하고 있다.

실제 사건의 공판 기록을 바탕으로 한 동명 르포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스크린에 담는데 초점을 맞춘다. 인물들의 이름도 실제 인물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만을 바꿔 사실감을 더했다. 사건을 바라보는 정지영 감독의 묵직한 시선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법 정의가 붕괴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그러면서도 ‘부러진 화살’은 현실 고발이라는 취지에만 치우치지 않고 영화적 재미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웰메이드 법정 드라마’라고 부를 만하다. 스스로를 ‘꼴통 보수’라고 부르는 김경호 교수와 노동자가 찾지 않는 노동변호사 박준의 캐릭터는 영화를 한층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들 중 하나다.


잘못된 것은 지적하고 고쳐야만 하는 원리주의자 김경호 교수가 재판장에서 법 조항을 일일이 따져가며 판사를 난처하게 만드는 장면은 통쾌함을 넘어 사회 현실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회의 원칙을 지키는 게 보수”라고 말하는 김경호 교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합리적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원칙이 무시당하는 세상에 반기를 들었고, 그 원칙이 법으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재판에서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원칙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판사들은 김경호의 논리적인 항변과 무죄 주장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다.

또한 2001년 인천 부평 해고 노동자 시위를 이끈 박준 변호사는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법부에 깊은 회의를 지닌 인물이다. 시위 당시 변호사라는 이유로 자신만 피의 폭력에서 제외된 것에 큰 상처를 입은 박준 변호사는 세상의 원칙을 믿으며 사법부와 홀로 싸움을 벌이는 김경호 교수를 처음에는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김경호 교수의 싸움에 동참하면서 박준 변호사 또한 다시 한 번 정의가 사라진 사법부를 향한 답답함과 분노를 표출한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깐깐한 교수로 변신한 안성기와 이미 여러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박원상의 연기 호흡은 세상을 향한 김경호 교수와 박준 변호사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들을 묵묵히 응원하는 김경호 교수 아내 역의 나영희와 사회부 기자 장은서 역의 김지호의 안정적인 연기도 영화를 한층 탄탄하게 만든다.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 구성과 긴장감을 잘 살린 짜임새 있는 편집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19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정지영 감독은 100여 년 전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아프고 슬프다”고 전했다. 2007년에 일어난 이 웃지 못 할 사건은 안타깝게도 2011년 현재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인 ‘부러진 화살’은 김경호 교수는의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다. 누군가의 조작에 의해 사라진 ‘부러진 화살’로 김경호 교수는 결국 재판에서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그 사라진 화살은 이렇게 영화로 태어나 다시 한 번 부조리한 사법부를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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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인생의별 트랙백 2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