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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연인

정호현 감독, 2010년

문화적 차이에 대한 심도 깊은 관찰

다큐멘터리 공부를 위해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정호현 감독은 우연히 여행 간 쿠바에 매혹돼 4개월 동안의 쿠바 생활을 시작했다. 춤, 음악, 낭만으로 상징되는 쿠바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생활은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인연을 통해 정호현 감독의 삶을 바꿔놓았다.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쿠바에서 만난 정호현 감독은 자신의 가장 사적인 연애담을 통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바로 <쿠바의 연인>이다.


<쿠바의 연인>은 2005년 처음 만난 정호현 감독과 그 연인 오리엘비스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2년 동안의 기록들을 찬찬히 담는다. 일상의 편린처럼 기록한 많은 장면들이 두 사람의 연애를 통해 한 편의 영화로 구성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기록을 담았음에도 영화는 단순히 연애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의 연애는 자연스럽게 쿠바와 한국이라는 상이한 문화적 차이를 그려나간다.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상대방 나라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두 나라의 단면을 심도 깊게 관찰하고 있다.

정호현 감독은 쿠바에 대한 낭만을 벗기고 그 안에 감춰진 속살을 바라본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만들어낸 춤과 음악의 나라라는 쿠바에 대한 동경, 혹은 체 게바라로 상징되는 혁명의 이미지를 버리고 진짜 쿠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목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정호현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쿠바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뛰어든다.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사회주의의 모순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쿠바 사람들의 낙천성이다. 정호현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쿠바 사람들은 “사람들은 일하는 척하고, 정부는 돈을 주는 척한다”며 국민에게 무관심한 비효율적인 관료 체계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공산주의는 질투주의”라며 국가 체제에 대한 냉소를 털어놓는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만 경제적 빈곤만을 공유하게 된 쿠바 사회의 모습은 낭만적인 쿠바에 감춰진 또 다른 쿠바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정호현 감독은 쿠바에 대한 매혹을 포기하지 못한다. 버스 안에서도 타인에 대한 경계 없이 노래하고 대화를 나누며, 집안에 초대한 손님과 어울려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쿠바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삶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깊은 매혹이 정호현 감독으로 하여금 음악과 디자인에 재능을 지닌 쿠바 청년 오리엘비스와의 사랑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오리엘비스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은 쿠바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 태어나서 처음 쿠바를 떠나 외국에 온 오리엘비스의 눈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오리엘비스에게 한국은 속도에 질식당한 공간이자, 소비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한 사회다. 오리엘비스는 도심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아찔함을 느끼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오리엘비스는 자신이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디를 가도 외국인을 반갑게 맞이해주던 쿠바 사람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를 한 오리엘비스에게 한국 사람들은 호감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독실한 기독교 신자 할머니는 오리엘비스의 머리를 보며 “지구 멸망의 징조”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말한다. 기독교 집안인 정호현 감독의 가족들도 두 사람의 결혼이 마냥 못마땅할 뿐이다. 오리엘비스에게 한국은 모든 것이 빠르고 편하지만, 다른 것에 대한 인정은 부족한 사회로 비춰진다.

<쿠바의 연인>은 이러한 쿠바와 한국의 대비되는 모습을 어떠한 의도 없이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사회주의의 모순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그럼에도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적은 쿠바의 풍경과, 발전이라는 속도에 짓눌린 채 살아가며 타인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한국의 풍경을 영화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배치된 상이한 풍경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생겨나는 충돌은 관객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다름에 대한 인정, 문화적 차이에 대한 관용적 태도, 이해의 문제 등을 고민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기록에서 출발해 사적이고 은밀한 연애 이야기를 거쳐 문화적 차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관객 스스로 영화의 문제의식을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정호현 감독의 태도 역시 영화를 더욱 공감가게 하는 요소다.


연애 이야기를 기대하고 영화를 봤다면 적잖이 불만스러울지도 모른다. 연애하면 흔히 생각하게 되는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없기 때문이다. 정호현 감독도 실제로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연애에 집중하느라 촬영을 많이 못했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쿠바의 연인>은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두 사람의 만남이 빚어내는 변화가 곧 연애이기 때문이다. 쿠바와 한국 사회의 심층 탐색으로 흘러온 <쿠바의 연인>은 결국 두 사람의 연애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 정호현 감독과 결혼한 오리엘비스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인간이 만든 국가라는 경계,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차이도 인간 본연의 감정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흥미로운 커플의 앞으로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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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인생의별 트랙백 0 :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