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Rolling Home With A Bull)
임순례 감독, 2010년
임순례 감독의 농익은 연출력
여행은 우연히 시작된다. 시를 쓰겠다며 귀향한 선호(영필)는 시는커녕 매일 쇠똥만 치우는 단조로운 삶에 지겨움을 느낀다. 시인들의 모임에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선호는 그 설움과 울분을 끝내 견디지 못한다. 모든 것은 자신을 쇠똥이나 치우는 사람으로 만든 소의 탓이다. 그렇게 선호는 소를 팔겠다는 명목으로 충동적인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 선호의 여정도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다. 가까스로 도착한 우시장에서는 원하는 가격에 소를 팔 수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만을 알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럭에 갇혀 지내느라 스트레스를 받은 소는 코에서 피를 흘리기까지 한다. 소를 쉬게 하려고 우연히 들른 절에서 선호는 스님과 탁주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휴게소에서는 아이를 소에 태우고 싶다는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와중에 7년 만에 전화를 걸어 온 옛 연인 현수(공효진)는 자신의 남편이자 선호의 친구인 남편 민규의 죽음을 알린다. 그렇게 여행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임순례 감독의 신작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평범하게 출발해 의외의 목적지에서 끝맺는 로드무비다. 7박 8일의 여정 동안 선호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겪는다. 변변치 않은 삶에서의 일탈처럼 보이던 선호의 이야기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과의 교감을 지나 아직 감정이 채 아물지 않은 연인과의 이야기로 유유히 흘러간다. 영화는 친절한 설명 대신 추측의 여지를 곳곳에 새겨둔다. 7년 전 선호와 현수, 그리고 현수의 남편 민규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선호는 지금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된 건지, 영화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선호의 마음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남긴 앙금이 있다는 것, 그것이 자꾸만 선호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무작정 소를 팔겠다며 떠난 선호의 여행은 어느 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영월, 원주, 문경, 함양을 거쳐 서울까지 이어지는 여정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은 그런 선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마법을 발휘하며 관객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동물과의 교감, 옛 연인과의 추억,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이야기하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사뭇 낯선 분위기로 선호는 물론 관객까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다다른 의외의 종착점은 바로 불교의 세계다. 잠시 쉬어간 절에서 본 ‘심우도’와 아들을 소에 태우고 싶어 하던 아버지로 불교적 색깔을 넌지시 드러냈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불교 사상을 영화에 덧칠한다. 현실은 꿈이 되고, 꿈은 현실이 된다.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선호의 꿈에 나타나 소를 빼앗아 가는가 하면,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서울에서는 친구들로부터 홀대와 뭇매를 맞을 뿐이다. 반복적으로 배열되는 꿈과 현실의 병치는 때로 혼란스러울 정도지만, 그 혼란의 끝에서 선호는 비로소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그 순간 선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선호가 자신의 삶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마음의 태도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소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는다.
임순례 감독은 그동안 남들처럼 잘 살고 싶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왔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도 그러한 시선은 여전하다. 아름다운 자연이 빚어내는 영상미와 노영심 음악감독이 선사한 서정적인 음악의 조화 역시 눈부실 정도다. 다만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몽환적인 정서는 임순례 감독의 전작과는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그 변화가 마냥 낯설게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또 다른 미덕이다. 임순례 감독은 다양한 주제를 하나의 이야기에 녹여낸 가운데 이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포장해내는 농익은 연출력으로 자신의 다섯 번째 장편을 완성한다. 그렇게 임순례 감독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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