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탓인지 언젠가부터 연기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고요.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죠."


지난 3월 영화 '널 기다리며'의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만난 심은경(22)은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나 다시 만난 심은경의 표정은 그때보다 더 밝고 여유가 느껴졌다. 그 편안함은 그동안 찍은 영화에서 받은 좋은 기운 때문이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걷기왕'(감독 백승화)이 바로 그 영화다.



'걷기왕'은 선천적 멀미 증후군으로 학교까지 2시간 동안을 걸어 다니며 통학하는 고등학생 소녀 만복이 경보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청춘영화다. 심은경이 주인공 만복을 연기했다. '널 기다리며'에서 다소 무거운 캐릭터를 소화했던 심은경은 '걷기왕'에서 '써니'의 나미와 '수상한 그녀'의 오두리를 연상시키는 편안한 캐릭터로 자신만의 매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올해 초까지 고민의 시기를 거치면서 심은경은 "내가 연기를 즐겨야 그 진심이 오롯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걷기왕'이 찾아왔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메시지도 공감갔고요. 이 영화는 꼭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숨에 결정했어요." 선택은 옳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이전에 갖고 있던 강박과 고민을 많이 내려놓게 됐어요. 처음 연기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줬고요. 그만큼 저에게는 소중한 작품이에요."



만복은 평범한 10대 소녀다. 꿈도 목표도 없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고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여고생이다. 그런 만복은 "너는 걷는 걸 잘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 한 마디로 경보를 시작한다. 물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무작정 꿈과 열정을 심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무작정 경보 선수가 된 만복은 점점 자신이 진짜 경보를 하고 싶어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아역 시절부터 연기를 해온 만큼 심은경은 극중 만복과는 다른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심은경은 "저도 만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릴 때 좋아서 연기를 했지만 끝까지 계속 연기를 할지는 잘 몰랐어요. 일단은 학생이라는 본분에 충실했죠. 그런 와중에 연기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어요. 그래서 만복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갔어요."


심은경은 만복을 최대한 자연스러운 캐릭터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스러움을 콘셉트로 잡았어요. 그래서 제가 여태까지 찍은 작품 중 가장 고민을 하지 않고 한 작품이기도 해요. 고민을 했다면 구토하는 장면이었어요. 그것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실감나게 할 수 있을지를 염두에 뒀죠. 딱 그 정도랄까요? (웃음)" 극중 중국집 배달부 효길(이재진)의 오토바이를 타고 벌어지는 코믹한 에피소드, 그리고 멀미약을 너무 많이 붙인 나머지 해롱거리는 모습 등에서 심은경이 얼마나 현장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연기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영화는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강화도와 파주 등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7살 터울인 박주희, 그리고 동갑내기인 윤지원, 안승균 등 또래 배우들 함께 한 현장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다시 교복을 입고 10대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촬영하면서 오히려 20대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10대 학생의 캐릭터를 더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됐다.


영화는 만복을 통해 무작정 꿈과 열정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비록 그것이 남들보다 늦더라도 괜찮다는 작은 위로도 함께 담겨 있다. 심은경에게 '걷기왕'이 소중한 것은 그 스스로도 영화를 통해 힐링을 얻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경보 장면을 보면서 제가 출연한 영화인데도 이상하게 뭉클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나온 영화를 보며 우는 건 민망해서 눈물을 꾹 참고 영화를 봤죠. 영화가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어요. 빨리 가지 말고 조급해 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천천히 너의 길을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리고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면서 위로해주는 느낌도 있었고요."



영화는 엔딩 크레딧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짤막하게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뒷이야기가 소소한 웃음을 전한다. 그러나 주인공 만복의 뒷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아 의문을 남긴다. 심은경은 "만복은 걸어서 전국일주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면서 평범하게 지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걷기왕'을 마친 심은경도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며 여유롭게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도 고민은 있어요. 연기에 대한 고민도 있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하지만 한 편 두 편 작품을 하고 나이도 들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바뀌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고민들도 조금은 편안하게 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다. 유해진(46)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품어온 배우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는 끝없는 훈련과 연습을 하며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견뎌냈다. 그리고 배우가 된 지금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연기의 재미와 고통을 모두 감내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유해진의 사람 좋은 웃음 뒤에는 그런 성장의 과정이 있었다.


무명 시절 유해진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하다면 13일 개봉하는 영화 '럭키'(감독 이계벽)가 그 답이 될 것이다. 극중에서 배우 지망생으로 연기 연습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연극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연기법을 벽에 붙여 놓는가 하면 볼펜을 입술 위에 올려놓고 '간장공장공장장'을 읊는 그의 모습이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유해진은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좋았다.


"무명 배우 역할이 있어서 편했던 것 같아요. 제가 다 겪은 것들이니까요. 연극 무대에서 활동할 때 영화처럼 생활을 했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트레이닝도 하고 발성 연습도 했고요. 그래서 촬영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제가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도 했고요."



그러나 '럭키'는 무명의 배우 지망생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유해진이 맡은 역할 또한 배우 지망생이 아니다. 영화는 냉혹한 킬러 형욱(유해진)이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기억을 잃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난한 현실에 삶의 의욕을 상실한 무명 배우 재성(이준)이 그런 형욱의 목욕탕 키를 바꿔가고, 형욱은 자신을 재성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제목인 '럭키'는 행운이라는 뜻의 '럭키(lucky)'이자 운을 바꾸는 열쇠라는 뜻의 '럭-키(luck-key)'를 모두 뜻한다.


유해진은 "영화를 잘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툭 던져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에 끌려 '럭키'에 출연을 결심했다. 코미디로 홍보되고 있지만 굳이 그런 방향으로 작품에 접근하지는 않았다. "저는 그냥 상황에서 생겨나는 재미를 좋아해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매번 오버하면서 연기하지는 않았거든요. 코미디는 코미디로 접근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원칙이죠. 영화는 개인기의 장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영화를 보면서 크고 작은 웃음이 나온다면 그것은 형욱에서 재성이 됐다 다시 형욱으로 돌아온 유해진의 편안한 연기 때문일 것이다. 유해진이 의도한 것 또한 킬러로서의 경직된 모습에서 형욱으로 릴렉스한 모습으로의 변화를 서서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좀처럼 웃지 않던 형욱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여기에 형욱의 입장이 된 재성의 이야기, 그리고 형욱에게 호감을 느끼는 소방대원 리나(조윤희)의 이야기가 엮이면서 영화는 소소한 재미로 관객의 마음에 편안한 웃음을 전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재성으로 살게 된 형욱은 단역 배우를 시작으로 연기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촬영장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겨우 몇 장면을 찍고 돌아오는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형욱의 표정은 나날이 밝아진다. 그런 형욱이 리나에게 "배우를 하면서 꿈이 생겼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유해진이 말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툭 던져주는" 장면이다.


유해진도 배우를 통해 처음으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고(故) 추송웅의 연극을 본 뒤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정말 집중해서 봤어요. 어린 나이였는데도 너무 쏙 빠져들었죠. 많은 사람들이 추송웅 선생님만 바라보던 그때가 지금도 생각이 나요. 그 순간 저게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보다 싶었어요."



물론 꿈을 이루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길이니까 반대가 심하셨어요. 군대에 가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거니?'라고 물으시면 '저 연기한다니까요'라고 얘기했거든요. 결국 나중에는 '그럼 열심히 해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됐어요." 그렇게 부모님의 응원 속에서 마침내 배우로 무대에 섰을 때 더없이 큰 희열을 느꼈다. 그 희열이 유해진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기하게 만들고 있다.


'럭키'의 형욱은 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꿈을 이룬 유해진은 이제는 배우로서의 삶을 마냥 즐기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유해진은 "연기하는 게 어떨 때는 재미있지만 어떨 때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연기가 왜 이렇게 갈수록 힘이 드는 건가 싶을 때도 있어요. 무언가 막혀 있는데 자꾸 더 재미있는 걸 요구하면 정말 외롭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유해진은 "계속 해나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모든 걸 던지고 있다. 그 속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잘 안 풀리던 게 풀리면 기분 좋죠. 그래서 맨날 열탕에 들어갔다 냉탕에 들어갔다 하는 것 같아요. 열탕과 냉탕 사이죠! (웃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