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주 저예산으로 알차게 만들어진 두 편의 한국영화가 동시에 개봉한다. '족구왕'의 광화문시네마가 선보이는 신작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 그리고 서촌과 남산을 무대로 한 로맨스 '최악의 하루'(감독 김종관)다.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한 아이디어와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 평범한 아줌마의 특별한 이야기


양미경(박지영)은 평범한 아줌마다. 시골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야매'로 동네 아줌마들에게 보톡스 시술을 해주는 일 정도다. 그녀는 사법고시를 준비 중인 아들을 끔찍이 생각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양미경은 "수도요금으로 120만원이 나왔다"는 아들의 전화에 무작정 상경한다. 곱게 차려 입고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서는 순간 양미경은 평범한 삶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범죄의 여왕'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스릴러 장르를 차용한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를 이끌어가는 사건의 발단이 독특하다. 바로 '수도요금 120만원'이 영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스릴러 장르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은 일상적이면서도 엉뚱한 설정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이요섭 감독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이요섭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6~7년 전쯤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에 살고 있을 때 수도요금이 50만원이 나온 적 있다"며 "그때 어머니가 오셔서 관리사무소에 가서 직접 이야기를 해 잘 무마했다. 그때 어머니의 다른 부분을 봤다"고 설명했다. '범죄의 여왕'의 매력은 엉뚱한 설정에서 시작해 설득력 있게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보기와는 다르게 '끝장 보는 성격'인 양미경은 근성으로 수도요금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 나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상도 못한 사건이 숨겨져 있다. 영화는 여기에 신림동 고시촌에서 살아가는 고시생들의 일상을 담는다. 스릴러 장르와 고시생의 애환이 묘한 시너지 효과를 자아내면서 영화를 더욱 독특한 분위기로 이끈다.


무엇보다도 '범죄의 여왕'은 캐릭터의 매력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작품이다. 특히 박지영이 연기하는 양미경은 억척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을 모두 간직한 희대의 '아줌마' 캐릭터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조복래, 허정도, 김대현, 백수장 등 젊은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장르적인 매력과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현실적인 이야기의 매력을 고루 갖춘 아기자기한 영화다.



◆ 일상에 깃든 마법 같은 힘


자신의 첫 소설집 출간 기념회를 위해 서울을 찾은 작가 료헤이(이와세 료)는 곤경에 처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출판사 직원과의 약속 장소를 찾지 못해 서촌을 배회하던 료헤이는 우연히 만난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의 도움으로 약속 장소를 찾는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료헤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은희는 남자친구이자 배우인 현오(권율)를 만나기 위해 남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 과거에 잠시 만났던 남자 운철(이희철)이 나타나면서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된다.


'최악의 하루'는 이런 짧은 줄거리 요약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영화다. 이야기보다는 영화 속 공간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감정이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종관 감독의 전작을 눈여겨 본 이라면 영화의 이런 분위기가 무척 반가울 것이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이후 선보인 여러 편의 단편영화, 그리고 첫 장편인 '조금만 더 가까이'까지 김종관 감독은 인물들의 감정,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로 감정의 섬세한 결을 스크린에 담아왔다.



'최악의 하루'는 은희라는 한 여성이 하루 동안 세 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겪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그린다. 이를 통해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말이 통하지 않는 료헤이와는 긴장감이 있는 관계의 모습을, 지금 만나고 있는 현오와는 투닥거리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는 현재의 사랑을, 그리고 과거에 만난 운철과는 모든 것이 이미 끝나버렸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척거리는 사랑의 단면을 보여준다. 극중에서 은희는 "연극이란 게 할 때는 진짜인데 끝나면 다 거짓말이 돼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서 '연극'을 '연애'로 바꾼다면 '최악의 하루'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 될 것이다.


김종관 감독은 서촌에 머물면서 오랫동안 상업영화를 구상해왔다. 그러나 영화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다른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의 '최악의 하루'로 완성됐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소설가인 료헤이는 김종관 감독이 투영된 인물처럼 다가온다. 기대를 안고 간 출간 기념회에서 실망만을 얻은 료헤이는 다시 은희를 만난 자리에서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 작은 한 마디가 보는 이에게 작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일상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잇는 마법 같은 힘을 만나고 싶다면 '최악의 하루'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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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병맛 코미디다.'


'쥬랜더 리턴즈'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딱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더 이상의 설명을 더하는 것은 '쥬랜더 리턴즈'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 영화는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쥬랜더 리턴즈'가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쥬랜더 리턴즈'는 2001년에 개봉한 '쥬랜더'의 속편이다. 패션계에서 벗어나 은둔의 삶을 살고 있던 모델 데릭 쥬랜더(벤 스틸러)와 핸젤(오웬 윌슨)이 팝스타의 연이은 죽음 뒤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쥬랜더 리턴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쥬랜더'가 어떤 영화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쥬랜더'는 벤 스틸러 특유의 코믹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인기의 중심에는 바로 데릭 쥬랜더라는 희대의 캐릭터가 있다.


영화는 알고 보면 한 가지 표정 밖에 지을 줄 모르는 쥬랜더를 세계 최정상의 패션모델로 그려냈다. 패션계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호화 카메오 군단도 '쥬랜더'만의 독특한 재미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스타들을 통해 셀러브리티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를 더했다.


'쥬랜더 리턴즈'도 '쥬랜더'의 이러한 요소를 그대로 이어간다. '쥬랜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쥬랜더 리턴즈'의 첫 장면부터 웃음을 참기 힘들 것이다. 영화의 막을 여는 것은 팝스타 저스틴 비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쫓기던 저스틴 비버는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셀피(셀카 사진)'를 찍어 SNS에 올린다. 이 짧은 오프닝은 '쥬랜더 리턴즈'가 추구하는 코미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전작에서 데릭 쥬랜더는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그러나 '쥬랜더 리턴즈'는 시작과 동시에 행복하게 끝난 쥬랜더의 일상을 깡그리 무너뜨린다. 허무맹랑한 사건들 속에서 폐인이 되고 은둔자가 돼가는 쥬랜더의 모습은 그야말로 '병맛'스럽다.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쥬랜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의 외면을 받던 쥬랜더가 헨젤과 함께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악을 물리치며 또 한 번 세계 최정상의 모델로 거듭나는 과정이 기상천외한 사건과 함께 펼쳐진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패션계의 이야기였던 '쥬랜더'와 달리 '쥬랜더 리턴즈'는 첩보 장르에 가깝다. 패션계에 대한 패러디로 색다른 웃음을 선사했던 '쥬랜더'와 달리 '쥬랜더 리턴즈'는 평범한 코미디처럼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1편의 코믹한 요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쥬랜더'가 그랬듯 '쥬랜더 리턴즈'는 짜임새 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가 아니다. 개연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영화 내내 펼쳐진다. 하지만 '쥬랜더 리턴즈'의 진짜 매력은 여기에 있다. 영화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만의 색깔로 내달리는 패기가 그 매력이다.


생각해보라. 눈썹을 밀고 패션모델로 변신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15시간이나 섹스를 할 수 있다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스팅, 그리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안나 윈투어, 마크 제이콥스, 토미 힐피거의 모습을 어떤 영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쥬랜더 리턴즈'는 이 엉뚱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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